[新난중일기] “‘퍼스트 무버’ 부산에 펼쳐질 미래도시를 주목하라”
1592년 임진년 5월, 왜군은 부산진에서 시작하여 파죽지세로 북진(北進)한다. 한편,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1592년 7월, 왜 수군은 남해 진출을 재차 시도하지만, 학익진을 펼치고 기다리던 조선 수군을 만나 참패한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조선 수군의 ‘한산도대첩’이다.
사기가 한껏 양양된 조선 수군은 두 달만에 전력을 크게 상승시킨다. 이윽고 왜군의 본영이 있는 부산포에 대한 공격 명령이 조정에서 하달된다. 때마침 뭍에서는 곽재우, 권율, 황진, 고경명 등이 이끄는 관군, 의병, 승병 등이 호남을 향해 서진(西進)하려던 왜군에 맞서 든든히 길목을 지켜주었다. 덕분에 조선 수군은 경상도 부산을 향한 먼 출진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여수에 있는 본진 공백의 우려를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1592년 9월, 드디어 이순신이 지휘하는 81척의 함대가 초량을 지나 부산포에 머물던 왜 수군을 수장시킨다. 적선 500여 척 가운데 130여 척이 파괴되었으니, 전과로는 한산도대첩을 능가한다. 특히 남해와 서해를 돌아 한강과 대동강으로 병참 물자를 실어 나를 보급선의 격침은 왜군에게 치명적 손실을 입혔다.
어느 순간부터 육지에서 거침없이 진격하던 왜군에게 길어진 병참선은 큰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호남의 곡창지대 확보가 돈좌되고, 병참기지 부산포가 초토화된 것이다. 더 이상 전황을 이어갈 수 없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부산으로 철군을 명한다.
한양을 지나 평양까지 진격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사는 1만 8,700명이었다. 하지만, 회군이 끝날 무렵에는 6,400명까지 줄어든다. 이 외에도 ‘부산포해전’이 왜군에 미친 파괴적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임진왜란 전세를 단번에 뒤집는 전투였다. 오늘날 ‘부산 시민의 날(양력 10월 5일)’은 이 해전을 기념하여 제정한 것이다.
임진왜란 외에도 한국전쟁 등에서 부산은 숱한 역전의 무대가 되었다. 해양세력의 전진기지, 대륙 진출의 교두보라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 8월 부산에서 미래 모빌리티와 에너지가 가져올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제안했다. 부산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UAM(Urban Air Mobility), 자율주행차, PBV(Purpose Based Vehicle), 하이퍼튜브, 로봇 등 미래의 첨단 모빌리티가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에서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아울러, 이러한 도시를 움직이는 힘, 즉 미래 에너지를 미래도시에 녹여 넣었다.
오셔닉스, 릴리패드 등 이전까지 제안된 다수의 해양도시는 물, 에너지,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이번 미래도시에서는 미래 모빌리티와 에너지 등이 도시와 도시를 서로 연결하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 등에 따른 미래도시에 닥칠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였다.
부산포해전에서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듯이, 미래 부산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H사가 일본의 T사를 역전하는 날도 머지않았음을 강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 여러 미개발 국가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성공신화인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워갔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부산이 펼칠 미래도시를 선진국에서 도입하는 감동의 드라마가 연출될 것이다.
미래도시 부산,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기대해 본다.
“우리가 내일을 실현하는 유일한 한계는 오늘에 대한 우리의 의심일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