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北, 핵·미사일 대신 ‘장사정포’ 공격할 수도

북한이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초대형 방사포 등 장사정포 <연합뉴스>

<손자병법>의 모공(謨功)편 말미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적과 나를 알아야 하는 것(知彼知己)이다. 둘째는 모든 싸움에서 위태로움을 없애는 것(百戰不殆)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백전백승(百戰百勝), 즉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내용은 없다.

을지훈련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는 북한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실질적인 민방위 대피훈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러 이유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었던 터라 이번 훈련이 가뭄에 단비처럼 다가온다.

전쟁이 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낫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의 틈을 찾아야 할 것이고, 전쟁을 피하려면 우리의 틈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핵·미사일 위협에 가리어 우리가 놓치는 틈을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북한이 핵·미사일이 아닌 장사정포를 통해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군사행위 가운데 양동작전(陽動作戰, Feint Operation)이 있다. 상대방에게 나의 의도를 오인시킬 목적으로 수행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식 기만행위를 뜻한다. 한국전쟁에서 장사상륙작전을 통해 인천상륙작전을 기만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대를 기만하는 것은 공간 외에도 시간, 수단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북한은 핵·미사일로 우리에게 충분히 위협을 고조시킨 상태이다. 하지만, 170밀리 자주포, 240·300밀리 방사포로 일시에 화력전을 감행할 수 있다. MDL(Military Demarcation Line, 군사분계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는 핵·미사일, 특작부대와 함께 북한의 3대 전력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170밀리 자주포 6개 대대, 240밀리 방사포 10개 대대에 편제된 330여 문의 장사정포가 사정거리 내에 있는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남북한의 전력 및 대비태세를 고려할 때 북한군이 기만은 핵·미사일로, 도발은 장사정포로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창 전력, 즉 3K(Kill Chain, KAMD, KMPR)로 북한군 장사정포를 손쉽게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우왕좌왕할 여유가 없다. 수백 문의 장사정포에서 출발한 포탄이나 로켓이 미사일보다 더 빨리 수도권에 떨어질 수도 있다. 대피에 필요한 대응시간은 더 부족할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아닌 장사정포에 대한 실전적 대피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두 번째로 북한은 핵·미사일이 아닌 화생무기를 통해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 미 육군에서 발표하는 ‘북한 전술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약 20종의 화생무기 약 2,500∼5,000여 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탄저균 1kg이 서울시민 5만여 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한편 관(官)·군(軍)과 달리 민(民)의 대비태세는 다소 우려스럽다. 민방위기본법 제15조 및 동법시행규칙 제15조에 따르면 ‘건축법 제53조(지하층)에 의거 설치된 민간 기타 공공기관 소유의 시설 중 대피기능을 갖추고 방송청취가 가능한 지하층으로 건축규모가 60평방미터(18평) 이상인 건축물’은 대피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 주변의 지하철 역사, 건물 지하층이 민방위 대피시설로 지정되어 운용될 수 있는 근거이다.

공습경보가 울려 대피하더라도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대다수 대피시설이 화생무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화생무기 효과로부터 보호기능을 갖추지 못하면 더 이상 대피시설이 아닌 집단무덤이 될 소지가 있다. 대피시설은 양적 허세가 아니라 실질적 보호기능이 작동되도록 핀란드, 이스라엘 등과 같은 수준의 질적 제고가 필요하다.

끝으로, 북한군의 사이버전 수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사이버 전문기관인 ‘테크놀리틱스(Technolytics)’는 북한군에는 약 7,000여 명의 사이버 전사들이 있으며, 이들의 사이버전 수행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ICT 분야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 만큼 디지털 의존성이 커서 사이버 침해 가능성이 높다. 국가기관, 연구소, 산업시설 등이 북한 소행의 해킹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이버 상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서로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한다면, 북한군은 물리적 무력 도발을 감행하기 이전에 조기경보체계의 오작동, 혹은 먹통 등을 먼저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긴급재난문자 발송이 북한군의 사이버공격으로부터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도 미지수다.

대피시설, 경보체계 및 대피훈련이 제대로 구비, 운용 및 실시된다면 핵 공격에 따른 피해의 95%까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핵·미사일 위협에 가려 우리가 놓치는 부분을 대피훈련, 대피시설, 경보체계 측면에서 살펴보니 취약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전쟁에는 규칙이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로만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 공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장사정포, 화생무기, 사이버전 등 ‘사이드 도발’이 함께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공격 이전에 사이드 도발에 의해 대피시설, 경보체계, 대피훈련 등의 대비태세가 무력화된다면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은 국가 총력전이다. 경제·군사 등 제 분야를 결집시킨 국력 측면에서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맞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떠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는 무언가는 잃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백전백승보다 백전불태가 먼저인 이유이다.    

북한이 감행할 위협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허술한 대비태세보다 우리의 대응능력에 대한 낙관적 시각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북한의 능력을 정확하게 직시하자. 그리고 압도적인 대비태세를 통해 북한의 도발 야욕 자체를 무력화시키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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