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군사시설 주변지역에서의 갈등과 협상
1938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뮌헨협정’이 체결된다. 이 협정의 핵심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계 인구가 가장 많았던 주테텐란트 지역을 독일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놀라운 재건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독일 팽창을 우려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국가들 간에 맺은 최악의 협상이다. 종국에는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993년 소손녕이 이끈 거란군이 고려를 침공한다. 이 때 거란의 철군과 함께 잃었던 강동 6주까지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명재상 서희 덕분이다. 서희는 송나라 중심의 국제정세와 이에 따른 거란군의 침공목표와 수준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길 수 있는 협상이었기에 적진에서의 담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북송으로 가서 단절된 국교를 회복한 공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송나라 태조가 외교관이던 서희의 무인(武人)같은 기상에 탄복하여 국방부장관 격인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라는 명예직을 내린다.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맙시다.” 협상에 대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이다. 뮌헨협정에서 보듯이 협상은 결코 적당한 타협이어서는 안 된다. 또 서희의 기상에서 보듯이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상대방과 담대히 맞서야 한다.
필자는 몇몇 협상에 임하면서 협상에 관한 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직?간접 경험을 통해 협상은 전문 분야이며, 원칙이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협상의 원칙들이 목표, 사기, 공세, 정보우위, 기습 등 전쟁의 원칙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했다. 폭력행위가 수반되는 최후의 협상이 전쟁인 것을 달리 표현한 듯하다. 손자도 <모공>(謨攻)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으며, 싸우는 것이 가장 나쁜 수단이다”라고 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군사전문가의 가르침을 고려할 때, 협상과 전쟁이 동일한 원칙을 공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군의 협상은 나라 밖이 아닌 나라 안에서도 숱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민군 간의 갈등이 큰 지역에서는 한 차원 높은 협상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등장한 군사용 드론은 게임 체인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버금가는 핵심병기임에 분명하다. 우리 국방부가 지난 4월말 드론작전사령부(이하 ‘사령부’)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합동참모본부는 경기도 포천 일대를 사령부 부지로 선정하였다.
한편, 이번 사령부 창설을 위한 협상에서 군은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드론이 갖는 산업적 가치는 상당하다. 포천이 아니더라도 사령부 유치를 희망한 지자체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비단 지자체의 요구가 없었더라도, 사령부 창설은 군 공항 등과 같은 군사시설 이전사업과 패키지로 더 나은 협상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포천은 준(準)전방지역으로 군사시설 주둔에 따른 피해가 적지 않은 곳이다.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ies) 사례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군사시설 주변주역이다. 로드리게스 사격장, 승진 훈련장, 다락대 훈련장 등 대형 훈련장이 군데군데 있다. 헬기장 소음, 기계화 부대 이동이 일상인 지역이다. 민군의 골이 깊은 지역이지만, 포천시가 앞장서서 사령부 창설을 지지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만을 놓고 보면 군의 이번 협상은 아쉬운 점이 많다. 처음부터 지역사회와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준비했다고 한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지나치게 저자세였던 것이다. 협상이 곧 전투라고 하지만, 전사다운 기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Negotiation'(협상)은 라틴어 ‘Negotium’에서 유래한 것으로, ‘Neg(부정)’와 ‘Otium(여유)의 합성어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서로가 여유롭지 않은 조건들을 살펴보는 행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의미를 따르면 포천시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보인 군은 애초부터 협상을 회피하거나 혹은 두려워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
경기도 안양시는 30년 넘게 관내의 탄약대대 이전을 군에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군은 ‘스마트 탄약고’로 극적 합의를 이끌어내었다. 강원도 양구군 초입에는 전차사격장이 있다. 지역사회가 반세기 이상 사격장 이전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첩첩산중에서 전차가 기동할 수 있는 대토(代土)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협상이 거듭되었고, 끝내 ‘GIS’를 활용한 과학적 방법으로 이전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안양과 양구에서의 두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군사시설과 협상에 관한 전문가들이 군을 대표하여 참여한 덕분이다.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물론이거니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성공적 협상의 모범적 사례이다.
지금 우리 군은 국방개혁의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미국, 일본 등에서 군사시설 이전은 국방개혁의 성패를 가른 핵심과제였다. 아마도 국방개혁 추진에서 군사시설 문제로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서 지자체 혹은 개발사업자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군에는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상대와 협상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위례신도시 사례처럼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우를 반복하지 않는 수성(守城)만이 전문성이 아니다.
이번 드론작전사령부와 같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지역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부대를 활용하는 공성(攻城) 측면의 전문성도 필요하다. 국방개혁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군에 협상을 위한 전력(戰力) 보강을 제안한다.
협상이 전투라면, 협상에 임하기 전에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선승구전 수사불패(先勝求戰 雖死不敗)라고 했다.
항상 재밌는 칼럼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