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펄벅 여사 50주기, “그가 칭송한 대한민국 미풍양속 되찾자”
1960년대 경주의 한 시골 마을.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한 서양인 여성이 ‘지게를 지고 가는 농부’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황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농부가 소달구지를 타고 가지 않는 까닭이 궁금했던 것이다.
“어떻게 소달구지를 타고 가나요? 이 녀석도 저를 도와 온종일 밭일을 함께했습니다.”
한낱 미물까지 배려하는 농부의 따뜻한 마음에 큰 감동을 받는다. 이 서양인 여성이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동시에 받은 펄 벅(Pearl S. Buck) 여사다.
이후 펄 벅 여사는 ‘까치밥’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일평생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하다가 이 땅에서의 아름다운 생을 마감한다.
펄 벅 여사는 중국 전문가로서 美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사무국)에서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와 첫 인연을 맺는다. 인연은 계속되어 부천시 소사구(당시 부천군 소사읍)에 있던 유한양행의 옛 공장 건물과 터를 헐값에 사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바꾸어 ‘소사희망원’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2천여명 이상의 다문화 전쟁고아를 돌보았다고 한다.
올해는 펄 벅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되는 해다. ‘펄벅기념관’에서 많은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어느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이 떠올랐다.
‘보호 종료 아동’은 보호자가 없어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에서 지내다가 퇴소한 청소년을 일컫는다. 이렇게 보호가 끝나는 청소년이 한 해에만 2500여명이라고 한다. 이들에 추가하여 우리나라에는 여러 이유로 자립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 수가 한 해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충분한 직업훈련이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자리, 쉼터, 사회관계 등에서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국가 재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복지 부문에 편성하여 지출하면서도 놓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이다.
늦은 면이 있지만, 우리 정부는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개정된 ‘아동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이제는 만 18세까지의 ‘보호’에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만 24세까지 ‘자립’을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 고마우면서도 다행이다.
한편 이들에 대한 국가재정에 의한 자립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기부문화’ 확산을 통한 따뜻한 돌봄이 사회적 자립을 돕는 데 더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정 사회에서 계층에 따른 소득 불균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있다. ‘0’에 가까우면 사회 계층마다 균등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지고, 반대로 ‘1’에 가까우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이다.
지니계수는 ‘처분가능소득’과 ‘시장소득’을 구분하여 산출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전자에 따른 지니계수는 점점 낮아지지만, 후자에 따른 지니계수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한다. 조세 덕분에 소득 불균형이 많이 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지난해 말 기준으로 처분가능소득에 따른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31이다. OECD에 가입된 38개 회원국의 평균이 0.315인 점을 고려한다면, 평균을 웃도는 28위의 성적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득 불균형이 큰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주목할 사실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22.1%)은 여전히 OECD 가입국의 평균(25.0%)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비록 국민 사이에서는 우리나라가 공산주의라는 비아냥의 목소리가 더러 있지만, 수치상으로는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여유가 아직은 있다는 뜻이다.
조세에 관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경제철학은 필자의 수준을 벗어난다. 다만 조세를 통한 ‘분배 정의’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절묘한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이 조화는 수치만이 아닌 심리적 접점까지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조세부담에 대한 수치와 심리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좋은 해결책으로 ‘기부’를 제시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영국의 자선 구호단체 CAF(Charities Aid Foundation)에서 발표한 ‘2022 세계기부지수’에 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119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였고, 우리나라는 88위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기부지수 성적이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펄 벅 여사를 감동케 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정서를 고려하면 안타까운 면이 아닐 수 없다.
올해 고등학교 졸업자 수는 40만이 약간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산술적으로는 백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자립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국가재정이 아닌 기부를 통한 돌봄이 필요하다. 온 나라가 우리의 아름다운 민족성을 살려 이들을 응원하면 좋겠다. 우리 민족성이 기부문화 확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길 소망해 본다.
펄 벅 여사의 소설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사는 보석과 같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