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서초동 타운하우스와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방호, ‘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정책이 함께 해야
지난 5월 31일 6시 28분경, 북한이 정찰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를 서해상으로 발사했다. 서울특별시는 4분이 경과된 6시 32분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우주발사체는 1시간에 29,000킬로미터를 날아간다고 한다. 이 정도 속력이라면 발사체는 1분 내에 서울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핵무기를 탑재한 발사체가 서울을 지향했다면, 경계경보가 울리기도 전에 서울은 초토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경계경보가 발령되면 모든 대응 태세는 5분 내에 완료되어야 한다. 경보 접수에서부터 대피 준비까지 1분, 대피소 도착 후 방폭문 폐쇄 등까지 1분이 소요된다. 따라서 대피를 위한 이동 시간은 3분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문득 서초동 T 타운하우스와 함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rich Beck)이 떠올랐다.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는 “부(富)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동일하게 맞게 될 재난 앞에서 생사의 여부가 돈에 의해서 갈릴 수 있다고 한다. 서글프지만, 그의 생각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T 타운하우스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재벌 회장, 연예인, 운동선수 등이 거주하여 유명세를 탄 고급주택이다. 우리나라에서 185억원이라는 최고가 매매기록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주택이 자랑하는 몇 가지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지하 4층에 마련된 방공호이다.
외부에서는 1톤이 넘는 두께 80센티미터의 방폭문을 2개씩이나 열어야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서는 외부의 물자 조달이 없어도 최장 2개월을 버틸 수 있도록 공기 조화 시설, 전기 공급 장치 등까지 완비되어 있다고 한다.
세간에 ‘하이엔드’라는 용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품질과 가격의 상관관계에서 가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가리킬 때 사용되곤 한다.
주택산업 역시 ‘하이엔드’라 불리울 정도의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다. 헬스케어, 컨시어지 등을 통한 고급화가 대표적인 전략이다. T 타운하우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방공호를 보유한 고급화는 하이엔드 주택시장의 새로운 전략임에 분명하다.
H 건설사에서는 반포 재건축 단지에 지하방공호 설치를 제안했다고 한다. 화장실, 샤워시설, 생필품 저장고는 물론이거니와 화학전을 대비하기 위한 외부공기 차단시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경쟁 건설사인 P社, D社 등에서도 아파트 단지에 방공호 제안을 하이엔드 전략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사업성과 공간 확보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스라엘은 공동주택에서 각 세대별 일부 공간은 방공호로서 기능 수행이 가능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방공호 공간 설치는 건축비 상승에 따른 사업성과 건축물의 계획·구조·설비 등에 따른 공간확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스라엘은 방공호의 건축바닥면적을 전체 용적률에서 제외해주는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인센티브 정책은 고급 주택보다는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에게 더 절실한 정책적 지원일 것이다. 대다수의 서민주택은 고급 주택과 달리 사업비와 공간활용에 대한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의 하이엔드 전략으로 방공호 설치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온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호시설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울리히 벡의 경고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방호 모범국인 이스라엘, 싱가폴, 핀란드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듯, 방호가 주택산업의 하이엔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는 시점에서 온 국민이 안전할 수 있는 방호시설의 보편화를 위해 정부의 든든한 정책적 지원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