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국방 문민화’에 필수적인 조건들

“필자는 국방 문민화를 지지한다. 다만, 맹목적 문민화보다는 군무에 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춘 문민에 의한’ 문민화를 바란다. 아울러, 군무에 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춘 문민이 사회 저변에 많이 육성될 수 있는 여건 형성을 제안한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2003년 1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국방부 청사로 사용된 건물. 현재는 대통령실로 활용되고 있다. 

4월 초 더그 벡 애플 부사장이 미 국방부 국방혁신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방혁신단은 군 밖에서 개발된 기술을 군사 분야에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설립된 미 국방부 산하 조직이다. 이 조직의 수장인 국방혁신단장이 국방장관에게 기술 전략에 대한 직접 조언을 수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직접적 조언이 가능한 배경에서 ‘군무에 대한 준비된 전문성’이라는 국방 관료가 가져야 하는 핵심적 자질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방 문민화’는 소위 ‘문민통제’ 혹은 ‘문민우위’라고 불리운다. 문민 혹은 시민에 의한 군의 통제를 뜻하며, 민주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다. 국방 문민화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수준을 벗어난다. 다만, 국방 문민화에 있어 ‘군무에 대한 준비된 전문성’이 자칫 ‘문민화’의 그늘에서 가려지는 듯한 아쉬움은 밝히고 싶다.

문민통제의 모범적 사례로 군사대국인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건국부터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중요시했다. 국방장관에 군인 출신이 오르려면 전역 후 7년(초기에는 10년)이 지나야 한다. 조지 마셜, 제임스 매티스, 로이드 오스틴 장관 등 일부 예외는 있으나, 이러한 예외의 경우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에 특례로 인정받은 경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6명의 미 국방장관들 가운데 앞서 언급한 장성 출신 3명 외에 영관 장교 출신 6명, 위관 장교 출신 8명, 병 출신이 1명이며, 나머지 8명만 군복무 경력이 없다고 한다. 다만 계급의 고하, 복무의 여부와 무관하게 미 국방장관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이들은 군무에 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추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임명된 더그 벡 국방혁신단장 또한 해군 대위 출신이다. 미국은 사관학교 혹은 ROTC 등의 과정을 통해 장교로 복무한 사람들이 전역 후에도 교육, 연구, 사업, 공직 등에서 군 관련 활동을 꾸준히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군무에 대한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특히 이는 육사의 교육목표에서도 이런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육사의 경우 ‘정예장교 양성’이 교육목표인 반면, 미 육사의 경우 ‘건전한 시민 육성’이 교육목표다.

즉, 사관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오직 군에서만 봉직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년 도래 이전에 전역하는 이들이 많고, 따라서 전역 후에도 여러 자리에서 군무에 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출 기회가 많다. 따라서 미국의 국방 문민화는 단순한 문민이 아닌 군무에 전문성을 갖춘 문민에 의한 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

국방에서의 문민이 군무에 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군사제도의 근간은 제승방략체제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진관체제였다. 군사력이 필요하면 지역별로 거진에 수령들이 군사를 모아서 운용했다.

시간이 흘러 군역 기피자가 많아지자, 군사력 유지가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호남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적은 수의 병력으로 넓은 면의 해안을 완전히 감당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에 진법, 즉 기습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용병을 통해 경계의 효율성으로 유지했다. 한편, 이 시기에 <징비록>, <선조수정실록> 등은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사론(士論)은 성하지만 나라의 근간이 무너졌다고 기록한다. 즉, 명분만 강했고, 실체가 존중을 받지 못한 시대였다.

많은 장수들이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이었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어느 문관 출신 장수는 기습, 즉 적의 뒤통수를 치는 기습에 기반한 진법은 선비가 할 바가 아니기에 철폐를 지시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무지가 을묘왜변 등 왜구의 침략에 호남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 파탄이 핵심적 원인이었음을 많은 역사서가 기록하고 있다.

군 복무 여부와 무관하게 군무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고 의무다. 우리나라는 국방 문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방부 근무 비(非)군인 공무원은 현역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복지혜택을 누린다. 서울 용산에서 근무하는 것도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한편, 문민우위를 잘못 이해하여 군인을 하대하고, 군무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정쟁에서 빚어진 맹목적인 ‘국방 문민화’가 ‘무인천시사상’으로 옮겨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군무는 국가의 최후 보루로서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다. 특유의 사명감과 애국 및 애군 정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극소수겠지만, 군부대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공무원도 있다고 하니, 군이 그들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필자는 국방 문민화를 지지한다. 다만, 맹목적 문민화보다는 군무에 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춘 문민에 의한’ 문민화를 바란다. 아울러, 군무에 관한 준비된 전문성을 갖춘 문민이 사회 저변에 많이 육성될 수 있는 여건 형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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