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꼰대’가 ‘빤대’를 만났을 때
군 초급간부 확보 관련 육사교수 출신 현대건설 임원의 제언
최근 학군단 후보생 지원율 급감, 사관학교 생도 도태율 증가 등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부사관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그 원인이 질 낮은 군 숙소, 낮은 급여 수준 등이 주요 원인인 듯 알려져 안타깝다. 심지어 군 초급간부(통상 중·소위, 중·하사)와 병사들의 급여 수준 및 복무기간을 비교하여 문제화하는 기사도 더러 있다. 일정 부분 맞는 내용이긴 하지만, 전부가 아니기에 군무의 신성한 가치를 폄하하고, 군의 단결을 저해하는 부정적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군 초급간부 확보문제가 간단해 보이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처우, 제도 개선이 아닌 의식과 문화의 변화를 요구한다. ‘꼰대’가 지켜온 군을 ‘빤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스토리가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참고로 빤질, 빤빤, 반(빤)대, 그리고 독립적이지 않고 부모에 기대어 ‘빨(빤)대’ 노릇을 하는 젊은이를 꼰대와 비교하여 ‘빤대’라고 한다.
빤대에 대해 살펴보자. 그들은 물질 보상보다는 개인시간 확보를 중시한다. 그래서 급여 차이에 그다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이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자기표현이다. 그래서 ‘일하는 곳’의 가치보다는 ‘일하는 것’의 가치를 중시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보편적 생각을 공유하고, 환경·윤리 등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도덕시간에 ‘애국심’, ‘반공정신’이라고 답을 쓰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던 주입식 교육의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빤대는 국가, 공동체, 이웃 및 친구들에 대한 사랑, 헌신, 동료애가 남다르다.
2000년 7월 14일. 가진 것이라곤 더플백 하나였지만, 자신감은 최고였던 날로 기억한다. 새로운 출발, 소대장으로서 첫날에 처음 여단장님을 뵈었다. 그 때 바라본 여단장님은 ‘하나님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계신 듯 높은 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필자의 동기들이 일선부대에서 한창 여단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끔씩 생각해 본다. 지금의 여단장과 소대장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비록 군을 떠나있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직원들을 보면 답은 ‘꼰대와 빤대’인 것은 확실하다.
‘북유럽 신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풍요롭고 흥미진진한 신들의 이야기 ‘그리스 신화’와 달리 북유럽 신화에서는 신이 몰락한다. 이러한 염세적 분위기 탓에 읽을거리가 못 되는지 추천은커녕 존재 자체도 생소할 것이다. 필자도 영화 <마블>에 열광하는 아이들 덕분에 북유럽 신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토르’ 등 <마블>에 등장하는 슈퍼 영웅들 가운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최고의 신은 단연 ‘오딘’이다. 그리스 신화에 비하자면 ‘제우스’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분위기 탓인지 최고의 신 오딘은 완벽한 지혜를 갖게 됨에 따라 아이러니하게 세상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우울증에 걸린다.
이러한 오딘이 등장하는 그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애꾸눈이라는 것이다. 오딘은 최고의 신이며 젊었을 때부터 지혜로움을 갖추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더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마침내 지혜의 샘에 도착하여 더욱 지혜롭게 되고자 샘물을 마시길 원한다. 하지만, 지혜의 샘물을 지키는 거인 미미르가 거절한다. 이후 오딘의 끈질긴 요구에 미미르는 지혜의 샘물을 허락하는 대신 오딘에게 한쪽 눈을 요구한다. 이에 오딘은 지혜를 얻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여 한쪽 눈을 내어놓게 되고, 이때부터 평생을 애꾸눈으로 살게 된다. 샘물을 마신 오딘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얻게 된다. 최고의 신이 완벽한 신이 된 것이다. 신화에서 이 부분이 흥미로운 것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얻은 신이 하필이면 한쪽 눈이 없다는 점이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지혜의 한계, 즉 완벽한 지혜가 아님을 완벽한 지혜를 통해 알게 된 탓인지 오딘은 우울증에 걸린다. 완벽한 지혜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군 초급간부의 수급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 꼰대들은 ‘최고의 헌신’을 통해 ‘조직의 성공’, 즉 강한 군대가 되길 바랄 것이다. 한편 군의 미래를 짊어질 초급 간부, 즉 빤대들은 ‘최고의 만족’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바랄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기존에는 관점의 차이가 주로 병사들이 대상이었다면, 이제 그동안 소외되었던 초급간부로 옮겨졌을 뿐이다.
병사들에게는 처우개선, 급여인상 등이 현실적 문제였다면, 초급간부들에게는 꼰대들이 바라는 최고의 헌신을 통한 조직의 성공과 빤대들이 바라는 최고의 만족을 통한 개인의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정책 발굴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전형적 스토리다. 뉴욕공항에서 처음 만나 남녀 주인공들은 상대를 별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전혀 연인이 될 수 없다고 설전까지 벌인 뒤 무심하게 헤어진다. 몇 년이 흘러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주인공들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연인으로 발전하여 그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시대가 바뀌었다. 군 초급간부 수급문제, 꼰대와 빤대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다름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들을 통해 <꼰대가 빤대를 만났을 때>의 스토리를 통해 해결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