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국가안보’엔 ‘바나나’보다 ‘사과’가 낫다

핀란드의 공공도서관 지하주차장. 이 나라는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방공호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10인 이상의 작업장 역시 마찬가지다.


‘사과'(APPLE, Absolutely Profitable Protection Legal Enlargement)…절대적인 수익형 방호시설 법적 허용 확대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가 일상이 된 듯합니다. 많은 외국인은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험이 큰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우리 인식은 안보불감증에 걸린 탓인지, 아니면 배짱이 큰 탓인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여기저기서 방공호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러시아의 핵 위협을 받는 북유럽, 동유럽 국가에 가 보신 적이 있으세요? 마을 곳곳에, 건물지하마다 방공호가 갖춰진 것을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방공호 구축이 법적으로 의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법과 제도는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와 공감 덕분이겠지요.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규제들 때문에 방공호를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방공호는 그냥 단순한 방공호가 아닙니다. 전시에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만, 평시에는 국민의 재산과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시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삽을 뜨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BANANA’,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어디서든 누구도 아무 것도 지을 수 없는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마이클 헬러 교수는 각종 규제의 중첩으로 인해 새로운 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을 경고하면서 ‘바나나'(BANANA,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어디서든 누구도 아무 것도 지을 수 없는)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습니다. 이 바나나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경제활동 보장과 생명을 보호하는 방공호 사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빅테크 시장에서 기술 발전에 따른 특허는 날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특허가 기술 보호를 위한 약이 아닌 기술 규제를 위한 독으로 작용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분쟁, AI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특허분쟁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연히 특허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부동산시장에서도 곧잘 나타납니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나 도로, 철도 등의 공로사업에서 토지 등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요구한 나머지 사업 자체가 지연 혹은 포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한 궁극적인 피해를 조합원, 지역민 등이 입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소위 알박기를 사회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토지주가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여 사익을 극대화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그리드락'(Gridlock)이라고 일컫습니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큰 들판이 있습니다. 들판은 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다수가 공유하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들판에 모인 양치기들이 황폐해진 들판을 격자(Grid)의 형태로 구역을 나눕니다. 그리고 저마다 구역을 맡아 주인처럼 관리하면서 다시금 들판에는 양에게 먹일 풀이 무성하게 자라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잘게 나뉘어진 구역에서 양치기들이 저마다 재산권을 과도하게 행사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정작 양에게는 풍성하게 자란 풀을 먹일 수 없게 되고, 종래에는 들판에서 양을 키우던 양치기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마이클 헬러 교수는 그의 저서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에서 개인의 파이는 커졌지만, 공동체 전체의 파이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경제 상황을 지적합니다.

이와 같은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지나친 주장으로 인해 공동체 발전이 멈춰지는 현상을 그리드락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드락은 경제현상에 대한 용어에서 출발했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용어로도 곧잘 사용됩니다. 비정상적인 사회활동 차단을 위한 보호장치인 정부 규제들이 되레 정상적인 사회활동마저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방공호 구축사업도 심각한 그리드락에 걸려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철도 역사 등은 대부분 (준)국유지입니다. 기재부에서는 국유지에 방공호가 들어서더라도 수익사업은 어렵다고 합니다. 방공호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을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방공호만 구축하는 것은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수익형 민자사업 형태로 대국민 방공호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방공호 사업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애매합니다. 행안부인가요? 지자체인가요? 아니면 국토부인가요? 기재부, 행안부, 국토부, 지자체 등을 모두 방문해야 합니다. 방문할 때마다 풀어야 할 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배고픈 자식을 보고 끼니 해결이 절실한 흥부에게 밥 대신 주걱뺨을 때린 놀부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방공호 공간은 건축물의 총 연면적에서 제외시켜준다고 합니다. 싱가폴에서는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구축된 방공호에 대해서는 경제활동에 따른 부가세 감면을 해준다고 합니다. 핀란드 등에서는 방호사업만을 전담하는 정부부처, 전문연구기관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호사업을 위한 법적 지원 시스템, 원패스 행정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바나나보다는 ‘사과'(APPLE, Absolutely Profitable Protection Legal Enlargement, 절대적인 수익형 방호시설 법적 허용 확대)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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