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국민통합 시금석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기념관

세계사를 읽노라면 반도(半島) 국가의 흥망성쇠는 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남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력이 충돌하는 그리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인구가 1,100만이 채 되지 않지만,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문화유산 덕분에 2015년에는 인구의 4배가 넘는 방문객이 그리스를 찾았다고 한다.

반도국가들은 주변 정세에 따른 문명의 충돌과 융합만큼이나 국민성도 매우 역동적인 측면이 있다. 그리스는 헤아릴 수 없는 관광객이 찾는 나라지만, 세계경제에서 존재감이 그리 크질 않다. 역동적 국민성 때문에 문화유산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크기 때문이다. 땅을 파면 나오는 유물 때문에 개발하려는 자와 문화를 보호하려는 자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곤 한다.

우리나라 역시 반도국가다. 지정학적 특성에 따른 역동적 국민성 때문인지 내부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반면 최빈국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크다. 역동적인 국민이 있었고, 역동적 국민을 이끈 훌륭한 지도자 덕분이다. 이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의 공(功)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대양, 대륙 세력이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이승만 대통령의 국제정치 감각과 혜안은 절대적이었다.

국제정세를 꿰뚫는 감각 덕분에 우리는 주로 대양세력과 가까울 수 있었고, 이후 산업화, 민주화의 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대륙세력과 연대한 북한의 처참한 현실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독일의 사회학자 라이너 지텔만은 저서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에서 남과 북 차이를 별도로 장(章)에서 다룰 정도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는 극명한 차이를 떠올리면,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국제정치 감각이 빛을 발한 시기는 한국전쟁 때다.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이 없던 우리나라를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도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군이 밴 플리트 장군을 통해 싸울 수 있는 군대로 재탄생하게 된 것은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여준 온 국민의 간절함이 읽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을 이끈 펑더화이는 미군보다 전쟁 경험이나 전투 의지가 부족한 한국군을 주로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중공군 5차 공세에서 유재흥 장군이 이끈 국군 3군단의 처참한 후퇴는 한국전쟁 최대의 치욕으로 남는다. 한국전쟁 초기 한국군의 모습이었다.

이 패배를 바라본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 중에 FTC(Field Training Command, 야전훈련사령부)를 창설한다. 강원도 양양에서 국군 3사단을 시작으로 각 사단별로 사단장에서부터 사병이 한 몸이 되어 9주간의 혹독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진다. 훈련을 마친 사단에는 최신 무기와 장비가 지급되었다. 한국군 10개 사단은 이 과정을 거쳐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가 진해에서 다시금 개교를 하였고, 350명의 한국군 장교들이 미국의 포트 배닝과 포트 실에서 고급 군사교육을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밴 플리트 장군이 나온 사진에는 어김없이 이 대통령이 함께 있다. 구국을 위한 이 대통령의 절심함과 노력이 밴 플리트 장군을 움직인 것이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극명히 대조되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강군의 초석을 닦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전쟁 전후 우리나라의 존재감은 분명 지금과 달랐다. 극동의 힘없고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부국강병의 모범국이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시작은 이 대통령 덕분이다.

매일경제 김세형 기자가 <대한민국, 선진국의 조건>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역대 경제 수장들에게 우리나라의 역대 정책 가운데 대표적 성공사례 제시를 부탁했다고 한다. 안보가 아닌 경제 관료들은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직후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꼽았다고 한다. 안보위기가 높은 한반도에서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3% 미만으로 제한하였기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토대가 된 것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등소평은 모택동으로부터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갖은 고초를 겪는다. 하지만, 등소평은 집권 후 모택동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하며 모택동의 업적을 세워주었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여 우물을 판 사람의 은혜를 잊지 않듯, 중국을 건국한 모택동의 공(功)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이 모택동에 의한 건국 덕분에 등소평에 의한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분명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명(明)도 있고, 암(暗)도 있다. 하지만, 건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시기에 이 대통령이 보여준 국제정치 감각과 반도국이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든 혜안은 분명 우리나라의 큰 축복이었다.
  

2023년 6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이 대통령 아들 이인수 박사의 배우자인 조혜자 여사,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안병훈 기파랑 사장,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추진위원장, 전 국무총리), 이영일 대한민국역사와미래 고문,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이윤생 오성회계법인 대표, 김군기 영남대 교수,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황성욱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복거일 소설가, 주대환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 조보현 배재학당 이사장, 이진만 변호사.<사진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제공>

최근 역대 대통령의 자제들이 이 대통령 기념과 건립을 위해 힘을 모은다는 뉴스를 접했다.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대립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선대들의 공을 지켜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키고, 아울러 온 나라가 갈등을 딛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면 좋겠다. May God Bles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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