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육사 홍범도장군 흉상 이전에 내재한 ‘본질’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맨 왼쪽), 2018년 3월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독립운동가와 함께 제작, 설치됐다. <연합뉴스>

[아시아엔=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육사 36기, 제1기갑여단장 역임] 최근 언론에 육사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과 관련한 논박이 뜨거웠다. 수많은 전문역사가들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 가운데 일반인들이 갑론을박을 펼쳤고 그로 인하여 더 문제가 확산되었다.

노원구는 육사에서 개최하려던 음악회도 장소를 변경했다.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을 한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바 그 흉상을 육사교정에 두는 게 타당한가 아닌가를 두고 우리 사회는 양갈래로 나뉘어 졌다.

필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하여 2008년부터 관심을 가져오다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장 직무대리를 맡아 항일 독립운동 현장 답사를 하면서 더 관심 갖고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항일 무장 투쟁사를 연구하였다. 만주에 있는 청산리 전투 전적지와 봉오동 전투 전적지를 찾아보고 현장을 확인하는 등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에게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를 정리하여 답사 전 교육도 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그의 영웅적인 무장투쟁 활동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이 경신참변 이후 소련땅 스바보드니 고로드라는 자유시 참변으로 알려진 민족사적 비극을 둘러싼 책임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학자들 의견도 홍 장군을 옹호하는 그룹과 비난하는 그룹으로 갈라졌다. 그 때문에 전문역사가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고 본다.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비난을 듣게 되는 우리 학문 풍토 탓이리라.

그중에서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보고 연구했던 학자는 “1920년대 항일무장독립운동사”를 집필한 한국외대 반병률 교수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그리고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를 쓴 고려대 김준엽 전 총장과 김창순 박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14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을 때 일제 강점기 동포들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 추방되어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근처 부슈토베의 초기정착지를 답사하였고 홍범도 장군의 산소가 있던 크질오르다 묘소와 거주했던 자택을 방문하고 현지에 있던 동포들 의견도 들어보았다. 또 현지에서 발간되던 홍범도 관련 신문연재 전기 기사 등도 확인하였다.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는 홍 장군 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여러 독립투사들의 묘가 있었다.

필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국방부 현관 오른쪽에 설치되었을 때,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절 해군 잠수함 명칭에 홈범도함이라는 이름을 붙여 명예를 고양할 때, 상당히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국군의 뿌리와 정통성 문제를 앞세워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이회영, 지청천 등 다섯분의 흉상을 육사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세운다고 했을 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 유해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할 때도 과도한 의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에 대하여 다소나마 홍 장군의 입장을 변호하는 글을 썼다.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반론 형식으로 홍 장군의 행적을 소개했고 또 왜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크질오르다에 있었는가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둘러싼 작금의 문제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현재 논의되었던 문제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해군 잠수함에 명칭을 붙일 때 전부 논의되었던 문제들이다. 그런데 왜 새삼 다시 문제가 거론되는가 하는 부분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이념적 갈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한 문제는 체제 싸움이고 역사전쟁이며 사상전쟁이자 곧 이념전쟁이다. 그렇기에 역사문제가 정치문제로 변질되어 버린 사건으로 나는 본다. 박근혜 정부 당시만 해도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끝났고 ‘통일 대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국력에서 이미 북한은 붕괴 직전이라고 보고 우리 사회가 통일을 대비하고 북한을 포용해야 할 때라는 인식을 했다.

그리하여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계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우국지사들을 우리사회가 포용하고 예우하여 모셔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시의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나는 그 당시 한반도에서 북한의 정치심리전 문제와 이에 대응할 국방부 사이버전사령부가 댓글 문제로 무력화되고 사이버 공간이 무주공산이 되어 북한 사이버 심리전 공격에 속수무책이라는 글과 정치심리전의 문제는 역사문제이고 정통성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라는 글을 포스팅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정책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등 진보 성향 정부의 대북 경제지원에 힘입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노태우 정부 때부터 불었던 북방정책으로 이념보다 경제를 중시하는 분위기,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등… 이처럼 남북화해 분위기와 대립 등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며 일관성 없는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원인을 일부 찾을 수 있다.

국방부나 육사에서 흉상을 설치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의도적인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관여하여 육사에 6.25전쟁사를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꾸는 등 사관생도 교육에 관여한 자체에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의 학교장과 교수부장 등이 이를 막아내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홍범도 장군의 공적이 뛰어나다고 해도 홍법도 장군은 소련공산당에 가입하였고 그는 숨질 때까지 레닌이 준 권총을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녔다. 이는 비록 항일 무장 독립투쟁을 했지만 현재 남북으로 대치되어 있는 가운데 이념의 차이가 있고 6.25전쟁에서 수많은 동족이 피를 흘렸는데 생도들에게 공산당에 입당하였던 분을 본받고 배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육사 전통계승 및 시설물관리 위원회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독립기념관으로 이전 설치하고 다른 분들의 흉상은 적절한 곳에 재배치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그것은 사관학교의 교훈이 안중근 의사의 생질인 안춘생 장군이 초대 교장을 하면서 설정한 장교양성의 지표인 ‘지인용’ 교훈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고 하는 사관생도 신조를 4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암송하게 하는 교육방향과 지침에도 합당하다.

일제 강점기로 국가가 없었던 시절이라 해도 공산주의와 싸워 나라를 지키는 사관들에게 공산주의자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쟁과 문제는 ”전쟁은 피흘리는 정치고 정치는 피흘리지 않은 전쟁“이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 전쟁이 체제수호를 위한 사상전쟁이며 이념전쟁인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대한민국이 정통성을 지녔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사관학교가 체제를 수호하는 최후보루이며, 그 소임을 담당할 국가간성를 양성하는 곳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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