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성우 ‘미국의 전략문화와 한반도 개입정책’
[아시아엔=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하지만 세계의 경찰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를 시험이라도 하듯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간에도 전쟁이 한창이다.
많은 이들이 다음은 어딘가 하고 걱정한다.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양안 사태에 이어 두 개의 대규모 전쟁을 감당할 역량이 제한된다는 전제 하에 북한의 남침 공격을 우려하는 분이 많다.
태평양전쟁 직후 일제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한반도를 해방하고 군정을 실시하였던 미군은 한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6.25전쟁 발발 직전 주한미군 철수를 중지해 달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간곡한 호소, 군정사령관 하지 장군의 미군 철수 반대, 그리고 현지 조사를 수행했던 웨드마이어 장군의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한국군의 무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 건의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멈출 수 없었다.
뒤이은 극동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다는 애치슨의 발표는 안 그래도 호시탐탐 적화를 노렸던 스탈린과 김일성에게 공교롭게도 남침의 초대장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감군과 동원해제를 단행했던 미국이 6.25전쟁을 기회로 재무장을 시도한 게 아닌가, 혹은 미국이 6.25전쟁을 유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많은 문헌을 보아왔다. 일각에서는 NSC-68이 미국의 재무장을 위한 남침유도설의 확실한 증거라고 오해도 해왔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인데 이를 해석하는 방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이런 다양한 의견에 비추어 진실을 밝히는 귀한 저서가 출간되었다. 왜 미국은 6.25전쟁 직전에 한국의 간곡한 군사력지원 호소를 뿌리쳤던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넘어갔던 부분에 대하여 그 배경을 미국의 전략문화를 통해 명쾌한 시각으로 정리한 명저가 본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은 유일한 핵보유국으로서 소련이 유럽에서 팽창정책을 펼치고 위성국을 확장해 나가는 시도에 대하여 장차 전쟁은 핵으로 봉쇄하겠다는 전략과 방침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전략문화와 한반도 개입정책> 저자 하정우 박사는 이러한 소련에 대하여 미국이 대소련 작전계획으로 PINCHER, MOONRISE, GUNPOWDER, OFFTACKLE 등으로 대응하고자 하였음을 밝히고 각 계획이 가진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계획이 있었음에도 한반도를 소홀히 다룬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배경을 구체적으로 논증했다.
이 책은 미국의 전략문화인 예외주의, 해양국가와 더불어 ‘정치와 군사의 분절’을 결정적 영향요인으로 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자 트루먼독트린과 마셜플랜으로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보호하고 원조했던 미국은 동아시아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생각하였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지 못한 최악의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극동방어선을 38도선으로 올리지 못한 것은 또 하나의 정책 실패로 분석한다.
각 군 간의 이해조절을 위하여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미 합참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생겨나 확고한 역할과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하지만 역대 미국의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미 국무부가 갖고 있었으며 정치와 군사의 분절이 초래한 정치의 실패로서 군의 독자적 영역 인정이라는 전략문화가 6.25전쟁 발발 전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 과정에 연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을 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문화가 생성된 바탕에는 미국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 그리고 문민 우위와 평시 강한 군대보유를 거부하는 미국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부분은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문화 탓이라고 주장하고 이유를 밝혔다. 38도선과 극동방위선 간 상당한 간격이 발생한 것도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자원의 불균형’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 하정우 박사는 이 간격과 약점을 김일성과 스탈린이 정확하게 치고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보유국이었다가 1949년 소련이 핵을 보유하자 상호억제가 이루어진 가운데 미국은 6.25전쟁 당시 핵 사용의 유혹을 4차례에 걸쳐 받았다.
최초에 지연전 과정, 중공군 대규모 개입 시, 장진호 철수작전 간, 그리고 휴전협상이 지지부진했을 때였다. 북한군의 공격 후 개입과 반격 과정에서 최초 미군은 해군과 공군력만으로도 반격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맥아더의 한강방어선 시찰 후 지상군 파견을 결정하고 증원군을 보내고 지원을 위해 수백회의 국가안보회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과정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여태껏 나온 한국전쟁 발발 전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정책에 관한 주장을 미국의 전략문화라는 시각과 기준으로 정리한 종합 결정판으로 보아도 충분한 명저다. 6.25전쟁의 정치적 차원과 정책적 차원에서 숨막히게 전개되었던 과정을 이렇게 알기 쉽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뛰어난 통찰력과 종합적인 시각으로 이를 규명하고 저술했다. 장차 한반도에서 전쟁의 창이 다시 열리려고 할 때 전략문화에 기초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정책을 가늠하고 적실하게 대응하는 데 이바지하리라 생각한다.
저자 하성우 박사는 육사 생도시절부터 알았던 기갑병과 장교다. 육군대학 전술학처장 시절에 교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명확한 개념과 혜안으로 교범을 작성할 때도 기동전의 진수를 잘 포착하여 교리를 잘 정리하였고 <지략>이라는 저서도 편찬한 바 있다.
이번에 학위논문을 책으로 펼쳐내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6.25전쟁 시 미국의 한국전 개입과정과 정책에 대하여 이토록 잘 정리된 책자를 세상에 내놓은 노고에 감사하고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