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식 칼럼] 성직자가 돈을 대하는 태도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윤평중 교수는 이를 자유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위기로 진단하고 한국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통치불가능성의 구조화 △적과 동지의 생사투쟁 △권력에 포획된 시민운동이 초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 △진영전쟁으로 타락한 언론과 전자공론장의 붕괴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되는 사회심리적 전쟁 즉 총체적 아노미 상태로 진단하였다. 크게 공감이 간다.

서울대 함규진 교수는 1980년대까지 통치권자에 대항하는 야당·재야 세력이 줄곧 억눌려 있었기 때문에 ‘일원적 정치’에 가까웠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와 반민주’ ‘종북과 애국’ 같은 대립이 중첩하면서 ‘끝없는 갈등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함 교수는 “자기 진영에 불리한 정보는 ‘가짜뉴스’로 무시하는 ‘확증 편향’, 선거에서 활용하기 쉬운 단기적 의제에만 주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과도한 이분법, 상대 진영을 타협보다는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는 태도, 참여·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화, 언론자유와 법치주의에 대한 의심 등을 들었다. 그는 “공동체가 진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상대 진영의 핵심적 공통 정감(情感)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않으려 한다면 대화와 교류는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이러한 담론은 사회 병리적 현상을 잘 진단해 주었다. 거창한 담론을 제외하고 속된 표현을 빌리면 결국은 끝닿는 데가 종교의 타락과 돈을 둘러싼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종교인이 돈에 대한 태도를 빗대어 살펴보면 가짜가 판을 치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결국 사회문제는 본질적으로 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전투구나 이익을 탐하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종교인이 종교인답지 못하는데 일반 민중은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종교인이 돈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그 사회는 건전한가 병들었는가를 알 수 있다. 가짜를 몰아내는 첫걸음은 종교인이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고 돈에 대해 깨끗해지는 것이다.”(본문 가운데) 

대표적인 종교가 기독교 불교 천주교이다. 종교계에 가짜 종교인들인가 진짜 종교인들인가를 들여다 보면 확연하다. 한국사회는 종교로 사기 치는 게 가장 쉽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관념적이기도 한 민족이지만, 그만큼 자기만 옳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발벗고 나서는 민족이다. 지난해 여름 잼버리 대회에 위기가 닥치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발벗고 나섰다. 또 지도자만 잘 만나면 폭발력있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항간에 종교인이 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진짜 종교인인지 가짜 종교인인지 구분이 된다고 한다. 헌금을 빌미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성직자도 많다. 그래서 불전과 헌금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면 가짜가 판을 치는 이유가 드러난다.

세명의 종교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서 헌금과 불전을 어떻게 처리합니까하는 대화가 논의되었다. 먼저 불교계 승려에게 목사가 물었다. “스님은 부처님에게 들어온 불전을 어떻게 처리합니까?”하고 묻자 승려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1미터 직경의 원을 그리고 불전함에 들어온 돈을 2미터 상공으로 뿌립니다. 원안에 들어간 돈은 부처님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원밖의 돈은 제가 씁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스님이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은 헌금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저는 1미터 직경 원안에 들어간 돈은 제가 쓰고 밖으로 나간 돈은 하나님을 위해 씁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헌금을 어떻게 합니까? “저는 일단 들어온 헌금을 하늘로 던집니다. 하늘로 올라간 돈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땅으로 떨어진 돈은 전부 제가 씁니다”라고 답했다. 아마 다른 곳도 그러하지만 한국기독교회의 진짜 목사다운 목사들이 그만큼 많지않다는 것을 꼬집은 말일 것이다.

누가 한국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기 위하여 지어낸 말일 것이다.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말아먹고, 불교는 부패한 승려들이 망치고 있다는 질타가 많다. 절에 가는 것은 스님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보고 간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스님을 통해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불교의 타락은 일반 사대부중의 손가락질을 받는 수준이 되었다.

전광훈 목사는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화를 저지하고 병드는 것을 막기위해 광화문광장에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그러한 전 목사를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하면서 배척했다. 이단의 기준은 내가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정통이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내게 맞추면 이단이다.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종교인이 종교인답지 못하는데 일반 민중은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종교인이 돈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그 사회는 건전한가 병들었는가를 알 수 있다.

가짜를 몰아내는 첫걸음은 종교인이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고 돈에 대해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게 사회가 정화되는 출발점이자 견인차 역할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본 종교인들 특히 목사님들이 화를 많이 내실 지 모르겠다. 종교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되는 줄 알지만 사회문제의 근원을 짚어보았다. 사회갈등을 치유해야할 종교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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