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식 칼럼] 비상계엄에 동원됐던 장성들을 보는 안타까운 시선
국회 국방위 청문회를 보면서 군인들에게 공보와 언론에 대응하는 교육이 절실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묵비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 자기에게 유불리를 따져 불리하면 안하고 유리하면 적극적으로 한다면 그런 군인이 적과 대적했을 때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특히 지위가 높은 장군들은 더 하다. 영관이야 학습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임무분석과 추정과업 염출을 못하고 자기 임무수행과 관련된 지형연구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을 경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적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복장을 갖췄다든지, 현장에서 수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런 판단을 했으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지 누가 윽박지른다고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그 모습이 만약 조선인민군과 붙었으면 어찌할 뻔 했나? 그리고 저 부대가 참수작전으로 김정은 목을 따겠다는 특전부대인가 하는 실망감을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질책을 했다. 물론 폭동자들이 난동을 부릴 경우에 대비한 임무를 부여했다고 대통령이 밝혔기 때문에 명확히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몰랐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국방부가 과학기술군을 지향하는 사이 과학기술이 만능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업무든 어느 조직이든 사람을 키우는 데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인공위성, 드론, 인공지능 등 최첨단 기술에 집중하는 사이 교리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개혁에서 빠져버렸다. 교리에 기준하지 않은 개혁은 사상누각이고 교육으로 가르칠 게 없는 개혁은 허상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개혁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미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설리반 장군은 <장군과 경영>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희망은 방책이 아니다”였다. 우리 군에는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구비할 수단을 갖고 방책 토론을 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이것 저것 따져보기 전에 미군이 하고 있으니 그대로 수용하는 근거로 삼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군이 작전 형태에 공격, 방어, 후퇴작전을 공격, 방어, 안정화작전으로 바꾸자 우리도 그대로 따랐다. 미군의 화력과 압도적인 공군력과 우리의 사정이 다르다. 미군의 교리변경이 우리군이 변경하거나 따를 요인은 못 된다.
장수라는 자가 국회에서 질질 짜고 전혀 장군다운 태도를 볼 수 없다. 수사불패의 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고 밤낮으로 외쳤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허둥지둥 한다. 이것은 항재전장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복 입은 장교들과 장군들을 공개적으로 욕보이면 안되는 이유
사관학교 입교 시 훈육관이셨던 유경희 선배가 이런 말을 하셨다. 굉장히 인상적인 말이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인심을 얻으면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장군 한 명 양성에 30년 이상이 걸린다.” 이 말은 장군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도 국회의원은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라의 운명을 질머진 군인의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었다.
국회청문회에서 장군을 일어서라 앉아라 한다고 따라하는 한심한 상황을 본다. 그 짓을 정복을 입고 하고 있다. 그것이 국회의원의 위세로 군을 모욕하는 반역적 행위라고 대드는 장군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법정에서 진술로 가늠한다든지 묵비권을 행사하면 되는데 그것을 아는 군인이 없는 듯 했다. 그것을 문민통제로 착각하는 인간들이 국회국방위에 가득하다. 항의 한마디 못하고 따라하는 수준 이하 장군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