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 속에서 우연히 400년 전 한 선비의 수필을 보았다. ‘유쾌한 한때’라는 제목으로 서른세 가지의 즐거움을 나열했다. 고매한 선비답게 봄날 저녁 로맨틱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는
Author: 엄상익
[엄상익 칼럼] ‘휴식과 일’의 조화, 젊은이들만의 특권 아니다
내가 사는 동해바닷가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독특한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진을 찍는 남편과 글을 쓰는 아내가 전 세계를 흐르다가 동해에 정착했다. 그들은
[엄상익 칼럼] 돈 잘 쓰는 법
실버타운의 80대 부부가 밥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은행에서 우리 돈을 컨설팅해주는 사람이 그러는데 이제부터 돈을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 부부는 일생 개미같이 일만 하고
[엄상익의 시선] 백합조개 줍는 노인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잠시 멈춘 오전에 해변으로 나갔다. 밀려오는 파도가 물러나는 파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조수가 빠져나간 평평하고 고운 모래 위를
[엄상익 칼럼]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빨간 작은 등대와 항구 그리고 바닷가의 푸른 숲이 어우러진 곳에 나만의 수행처를 구했다. 앞으로는 그곳에서 기도하고 글 쓰고 공부할 예정이다. 며칠 동안 그곳에 가서 청소를
[엄상익의 시선] ‘이카루스의 날개’와 ‘중용’
동해의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자주 들리는 음식점이 있다. 막국수와 육계장을 잘하는 집이다. 도시에 살던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오전 10시반에 가게 문을 열고
[엄상익의 시선] 노년의 수행처
류영모 선생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사업을 접고 북한산 자락에 집을 마련해 그곳에서 경전을 읽는 생활을 했다. 그는 매일의 명상을 일지 형식으로 적었다. 그게 책으로 나온
[엄상익의 시선] “나는 이런 사람이 좋더라”
밤중의 실버타운은 적막하다. 창은 농도 짙은 어둠에 물들어 검은 거울이 된다. 거기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다. 책상 앞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간의 벽을 두드리고
[엄상익의 시선] 함경도 보따리장사 할아버지의 추억
50년 된 무덤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뼈 조각들이 흙속에 묻혀 있었다. 다리뼈와 발뼈를 찾았다. 평생 길을 걷던 할아버지를 받쳐 주던 중심축이었다. 갈비뼈와 머리뼈를 찾아가지고 상자에 담았다.
[엄상익의 시선] 노후 생활 ‘명품’으로 만들려면
중학교 3학년인 손녀는 빈 시간이 거의 없다. 내가 보고 싶어 하니까 손녀는 학원 근처의 치킨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치킨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녀는 손에 수첩을
[엄상익 칼럼] 실버타운 노인들의 수다..’어떻게 죽을까?’
2년째 되니까 깨끗한 천국 같은 실버타운의 은밀한 속살이 보인다. 어떤 노인은 “실버타운은 저승을 가는 대합실”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노인들의
[엄상익 칼럼] 재벌 회장은 행복할까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회장을 20여년간 개인비서로 수행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총명하고 자물쇠를 채운 듯 입이 무거운 엘리트였다. 신중하고 빈틈이 없었다. 야망이나 욕심도 스스로 자제할
[엄상익의 시선] 늙은 군인의 노래
꿈결에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산 옆에 암자같은 집들이 있고 그 안에서 염불을 하며 수행하는
[엄상익의 시선] “나는 위선자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무장이 변호사실로 들어와 내게 말했다. “권투선수 출신이 나를 찾아와 두들겨 패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분노하면서 변호사님도 위선자라고 욕을 해요.” 나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엄상익의 시선] 벌거벗고 약점을 드러내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내 스스로 지옥에 빠져들어 허우적 거렸다. 왜 나라는 인간은 그랬을까. 군검사로 있을 때였다. 한 변호사를 볼 때마다 내 심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