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휴식과 일’의 조화, 젊은이들만의 특권 아니다
내가 사는 동해바닷가에는 서울에서 내려와 독특한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진을 찍는 남편과 글을 쓰는 아내가 전 세계를 흐르다가 동해에 정착했다. 그들은 작은 서점을 하면서 살고 있다. 가게 안에서 남편은 향기로운 커피를 만들고, 아내는 실로 책을 꿰매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나가다가 그들 부부의 책방을 보면 삶에 걱정이 없는 한적한 다른 세계인 것 같다. 가게 안의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다.
거기서 <미니멀라이프>라는 책을 샀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동해에서 원룸 하나를 얻어서 사는 젊은 부부의 소박한 삶을 담은 내용이었다.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그들의 시각에서 풀어낸 글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더러 들리는 파도 치는 해변 끝에 미니레스트랑이 있다. 대여섯 사람 앉을 정도의 스탠드가 있는 스테이크 집이다. 스탠드 안쪽 참나무가 타고 있는 화덕에서 스테이크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다. 공기밥 한 그릇과 된장국이 곁들여 나온다. 젊은 셰프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가게 문을 열고 싶으면 열고 닫고 싶으면 닫는 것 같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을 때도 많다. 내 눈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동해의 숨겨진 아름다운 해변이 보이는 언덕 위에 내가 자주가는 식당이 있다. 젊은 부부가 동치미 막국수와 육개장을 잘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이면 가게에 손님들이 꽉 찬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장사를 하는 시간이 아침 10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와도 가게 문을 닫고 가버린다. 저녁 때가 되면 분명 손님이 많이 찾아올 것 같은데도 그 젊은 부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이미 구세대가 된 나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왜 일을 하지 않는지 들어오는 돈을 마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와 같은 세월은 산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일에 대한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한다. 아파트 경비원이 되기도 하고, 택시기사가 되기도 한다.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서울 아파트를 팔고 바닷가의 작은 집을 싸게 사서 노년의 한적과 여백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서울아파트를 판 차액이면 노년의 생활이 그런대로 무난하다고 한다. 큰 병원 근처에 있으면서 아등바등 살기 싫다고 한다. 아쉬운 듯할 때 내 집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생활비라는 것도, 가난도 상대적인 것 같다.
내 세대는 일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걸 명예스럽게 생각했다. 교사는 교단에서 가르치다가 죽고, 의사는 치료하다가 죽는 모습이었다. 일은 자기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압구정동의 안과가 있다. 80대 노의사는 경력이 화려했다. 서울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경대학교 의대에 가서 또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지냈고 퇴직을 하고서 안과를 차렸다. 돈도 많이 번 것 같았다. 강남에 빌딩을 몇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는 하루 종일 적막한 진료실에 정물같이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를 보고 좀 놀라고 했다. 그는 논다는 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여든이 넘었어도 새벽 5시면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는 선배가 있다. 일이 없어도 아침이면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신문이라도 봐야 마음이 안정된다는 분도 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이 되고, 책상이 되고, 의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80대 노인 변호사가 지팡이 짚고 중풍으로 다리를 끌면서 법정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곤궁하면 저 나이에도 일을 하나 하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 늙은 변호사가 죽은 후 남긴 통장에 들어있는 수억원으로 자식이 스포츠카를 사서 타고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노인은 논다는 걸 알았을까? 그 일들은 소명의식이었을까? 우리 세대는 삶이 일이고 일이 삶 자체였다. 일이 없다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이고, 소외를 의미했다. 바닷가에 와서 작은 가게를 하면서 사는 젊은 사람들의 미니멀라이프를 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죽도록 일만하고 끝내 논다는 것을 잊어버리고마는 관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자연계의 생물들은 먹기 위해 최소한 활동만 하고 노는 데 유독 인간만 일을 하는 것 같다. 바닷가의 갈매기는 느긋하게 쉬면서 점심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개들도 머리를 땅에 박고 대낮에도 잠 자고 있을 때가 많다.
요즈음은 일을 하는 소도 거의 볼 수 없다. 일이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잘 산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