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고요히 가을은 고요히 햇살은 고요히 씨앗처럼 고요히 산맥처럼 고요히 고요히 고요히 상처는 고요히 성숙은 고요히 별들처럼 고요히 희망처럼 고요히 고요히 고요히 여행은 고요히 길들은
Author: 박노해
[오늘의 시] ‘가을 햇살에’ 박노해
나의 날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의 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의 벗들은 다 어디에 있나 즐거운 만남도 설레는 여행길도 함께 모여 담소하고 슬퍼하고 격려하던 우리
[오늘의 시] ‘9월의 붉은 잎’ 박노해
이른 아침 9월의 푸른 숲에서 역광에 빛나는 붉은 잎 하나 너는 너무 일찍 물들었구나 흰 원고지 위에 각혈하는 시인처럼 시절을 너무 앞서 갔구나 너무 민감하게
[오늘의 시] ‘바람이 불어오면’ 박노해
에티오피아 고원에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어디로든,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초원을 달리고 흙길을 달리고 밀밭을 달린다 허기를 채우려는지 온기를 찾는 것인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친구는 친구를
[오늘의 시] ‘길’ 박노해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오늘의 시] ‘신발 깔창’ 박노해
신발 끈을 묶고 정원 일을 나서는데 어라, 새로 산 신발 깔창이 반항한다 깔창을 꺼내 보니 날 빤히 바라보며 밟히기 싫다구, 나 밟히기 싫다구요 그래, 안다
[오늘의 시] ‘이런 날, 할머니 말씀’ 박노해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있어도 별일 아닌 걸 가지고 무슨 대단한 사태인 양 호들갑을 떨고 악소문을 퍼뜨리고 불안과 불신과 공포의 공기를 전하며 동네와 장터를 흉흉하게
[오늘의 시] ‘홍수가 쓸고 간 학교’ 박노해
마을에 큰 홍수가 있었다 아직 다 복구하지 못한 학교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모여 수업을 한다 무슨 사연일까, 자꾸만 문밖을 바라보는 소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고 만 걸까
[오늘의 시] ‘한계선’ 박노해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오늘의 시] ‘자화상 그리기’ 박노해 “고난도 비난도 치욕도 다 받아 사르며 가라고”
광야의 봉쇄수도원 수녀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모습이라며 몽당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보냈는데 이게 나야, 웬 이쁜 외계인, 혼자 웃다가 번쩍 다시 보니
[오늘의 시] ‘뒤를 돌아보면서’ 박노해
나이가 드니 안녕이 참 많군요 안녕이란 말이 참 무서워지는군요 가면 갈수록 사랑이 오기보다 이별이 더 많이 걸어오는군요 나이가 드니 뒤를 돌아보는 일이 많군요 가야 할
[오늘의 시] ‘날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박노해
아침이면 목 마른 꽃들에게 물을 준다 저녁이면 속 타는 나무에게 물을 준다 너희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구나 서로를 경계하지도 멀어지지도 않았구나 벌들은 꽃과 꽃을 입맞춰주고 바람은
[오늘의 시] ‘나랑 함께 놀래?’ 박노해
어린 날 나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니었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거였네 세 살 많은 영기가
[오늘의 시] ‘꽃이 온다’ 박노해
날이 가물어 땅이 마른다 나도 마른다 코로나 검은 손에 만남도 가물어지고 살림도 말라간다 한줄기 단비가 오시고 서늘한 밤비가 내리자 6월의 귀인이 걸어온다 꽃이 온다 꽃이
[오늘의 시] ‘진보한 세대 앞에 머리를 숙여라’ 박노해
여린 새싹 앞에서 허리를 숙인다 눈부신 신록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진보한 젊은이 앞에서 머리를 숙인다 내 가난한 젊은 날은 이렇게 살았다고 총칼 앞에 온몸을 던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