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나랑 함께 놀래?’ 박노해
어린 날 나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니었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거였네
세 살 많은 영기가 우리 반에 편입한 뒤
동무들을 몰고 다니며 부하로 따르지 않는
나 하고는 누구도 함께 놀지 못하게 한
그 지옥에서 보낸 일 년이었네
동백꽃 핀 등굣길을 혼자 걸으며 울었고
오동잎 날리는 귀갓길을 혼자 걸으며 울었고
텅 빈 집 마루 모퉁이에 홀로 앉아 울었었네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기도를 해봐도
동무가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책갈피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곤 했었네
5학년이 되던 해 보슬비는 내리는데
자운영꽃이 붉게 핀 논길을 고개 숙여 걸어갈 때
나랑 함께 놀래?
뒤에서 수줍게 웃고 있던 아이
전학 온 민지의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의 젖은 길이 다 환한 꽃길이었네
돌아보니 멀고 험한 길을 걸어온 나에게
지옥은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홀로 걷는 길이었고
천국은 좋은 벗들과 함께 걷는 고난의 길이었네
나랑 함께 놀래?
그것이 내 인생의 모든 시이고
그것이 내 사랑의 모든 말이고
그것이 내 혁명의 모든 꿈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