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실족을 막기 위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포용을 가슴에 담고 나로 인해 내 이웃, 이방인이 실족치 않도록 올바른 믿음을 가집시다. 예수님은 어떤 포용을 보여주셨을까요. 복음의 순례자로
Author: 김서권
아첨하는 말로 양심을 팔 것인가, 담대하게 증거할 것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의 언약 안에서 복음의 여정 안에 있는 나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언젠가는
바울은 어떻게 바리새인과 서기관 음해에도 살아남았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의 언약 안에서 복음의 여정 안에 있는 나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언젠가는
‘시대’와 ‘세대’를 보는 ‘분별력’
시대와 세대를 보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시대란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전체적인 시간표이고, 세대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개인적인 시간표입니다. 종교사상에 빠져 육신적 표적만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전도하면 알게 되는 것들
전도는 은사가 아닙니다. 전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돈만 쌓아놓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녀들에게 돈만 남겨주면 동물처럼 먹고 입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 시스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선택…광야에 서있는 삶, 연회장에 앉아있는 삶
예수님과 함께 빈들에 있겠습니까. 혹은 세례요한의 목을 쟁반에 올려놓고 살인의 광기 속에서 먹고 마시는 헤롯왕의 연회장에 앉아있겠습니까. 차라리 빈들에 서서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질문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신지
지금 나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지금 나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현주소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이면 염려도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바울은 핍박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상한 갈대도 일으켜 세우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살리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환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아 평안을 소유하십시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매인 것을 풀어버리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예수님은 유대인의 율법보다 생명을 더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비난하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언약의 여정을 따라 순례자의 길을 걷다
내 삶에 대하여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절대 해답도 없이 인생을 살면 문제 앞에서 염려하거나 쓸데없이 덤벙대고 맙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중심으로 내
“온유하고 겸손한 그 이름 예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쉽고 가볍게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는 곧, 그리스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리스도 부르기를 부끄러워하고 어색해합니다. 사탄의 일을
“내 평생의 사역은 예수 부활 이후 메시지”
내 평생의 사역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메시지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 하셨으니 창녀든 수녀든, 가난하던 부자이던 원죄적 근원이 똑 같은 수준임을 인식하고 복음을 전해야
예배와 부활···”다시 시작하고 살아나는 생명”
예배는 기분 따라,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드리기 싫으면 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예배는 내 운명을 바꾸는 절대이며 ·‘다시’ 시작하고 살아나는 생명입니다. 예배를 풍속으로 착각하면 착하고 성실하고
초대교회 정신으로 고난과 핍박을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고난이나 핍박을 개의치 않고 두려움 없이 당당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습니다.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마십시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악의 세력으로 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 아침에 나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녁에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