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이 아닌 것을 꿈꾸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에 담았을 때 요셉이 머무는 자리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형통케 되는 축복을 누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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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꿈이 아닌 것을 꿈꾸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에 담았을 때 요셉이 머무는 자리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형통케 되는 축복을 누렸듯이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꼭 잡고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십시오.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우리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그리스도
머리가 나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간질 잔머리로 음모를 꾸미다가 스스로 멸망합니다. 로마의 속국인 이스라엘의 기득권 계층이면서 동시에 종교지도자였던 헤롯당원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음모을 꾸몄습니다.
코너스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면 교회는 변질되고, 성도는 변종이 되어 무속과 주술, 사이비 종교사상에 길들여져서 무질서 가운데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주, 예수가 나셨으니 곧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임하면 흑암과 공허, 혼돈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도 요한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으니 미혹의 영인지, 성삼위 하나님의 영인지를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영적인 혼란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 나무를 왜 예수님은 저주하셨을까 질문해 봅시다. 올바른 질문 안에는 회복도 있고 하나님의 계획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면 안되기 때문에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아는 자신의 의지로 절대 통제되지 않습니다. 오직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어둠에 잡힌 자아를 깨뜨려야만 자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아니하면 지위를
구원의 주, 호산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십시오. 맞은편 마을로 들어가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가져오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 예수님은 왜 이러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자녀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언약으로 자녀를 키우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자고 있을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므로 집안의 원수덩어리로 자라납니다.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소경 바디매오의 부름에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마음의 병, 육신의 병, 영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하면 소경 바디매오에게 임했던
예수님은 도시를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의 그 장면, 그 눈물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그들 앞에 계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