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조선삼국지] 조선산업 ‘거인’ 한·중·일의 명암

세계시장 90% 거머쥔 3국 각개약진

중국은 21세기 세계경제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1991년 4000억 달러였던 중국 GDP는 2000년 1조2000억 달러로 올라섰고, 매년 두자리수 성장을 거듭하면서 2010년 5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세계 해운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자원과 에너지 수출국이던 중국이 수입국으로 바뀐 것이다. 해상물동량이 늘어나고 수송거리가 늘어나면서 선박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평균 2000만~3000만 GT(총톤)이던 선박건조량은 2002년 3500만 GT로 늘더니 증가세에 가속이 붙어 2008년 7000만 GT까지 폭증했다.

2000년대 호황, ‘조선산업’ 판도 재편

조선시장은 일정기간 호황을 지나면 한동안 불황을 거치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부침 주기가 있다. 대체로 2년 넘는 호황은 없었고, 불황은 언제나 호황보다 더 긴 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시작된 호황은 사상 유례 없이 장기간 지속됐다. 해운회사들은 선복량 증가에 사운을 걸었다. 세계 금융시장은 넘치는 돈을 선박건조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선대(船臺)잡기에 혈안이 되었다. 배만 한 척 잡으면 떼돈을 버는 것으로 인식됐고, 조선소는 선대가 없어 주문을 다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불어 닥친 호황은 한중일 조선(造船) 삼국의 판도 재편에 중요한 변수가 됐다. 특히 한국 조선소는 선주들에게 최고의 표적이었다. 한국 선대는 큰 웃돈을 주고도 잡기가 어려웠다. 4000만~5000만 달러 하던 17만t 크기의 일반화물선(bulk carrier)을 한국 조선소는 1억 달러까지 받아 냈다. 조선소에 블록(Block, 선체의 한 부분)을 납품하던 공장들은 어느새 조선소로 발전했다. 건선거(乾船渠, dry dock)도 없이, 심지어 의장안벽(艤裝岸壁)도 없이 주문을 받았다. 땅에서 배를 건조한 뒤 바다에 띄워 의장 마무리를 할 정도였다. 수리조선업이 모두 신규조선소로 탈바꿈했고, 준비된 조선소들은 쉽게 큰 이익을 올렸다.

1600개 정도의 조선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양적으로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주로 단순 선종인 일반화물선을 건조했다. 1995년 160만DWT(Dead Weight Tonnage, 재화중량)의 선박을 지어 세계시장 점유율의 5%였던 중국은 2008년 2880만DWT를 건조해 29.5% 지분을 확보했다. 2010년에는 5080만DWT을 건조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40.4%로 늘렸다.

쇠퇴일로를 걷던 일본 조선산업도 호황 덕을 봤지만 한국이나 중국만은 못했다. 일본국적 선사들이 지속적으로 발주한 덕분에 세계 건조량의 15% 정도 지분을 유지했다. 엔고에 따른 해외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변명했지만, 조선산업 참여자들의 사기저하, 기술력 답보 등이 사상 초유 호황의 물결에서 뒤떨어진 요인이었다.

7년간 거침없이 고공행진하던 시장은 2008년 여름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하루 아침에 지상으로 추락했다. 선박 가격은 폭락했다. 1억6000만 달러였던 초대형 유조선은 9000만 달러대로, 17만톤급 벌커(bulker)가 1억 달러에서 5000만 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큰 웃돈을 주고 계약한 배를 인도받는다는 것은 파산을 의미하는 시절이 됐다.

한국 주요 조선소들은 세계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즉각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수요가 증가하던 석유가스 시추선, 해양 원유 및 저장가공시설, 가스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 수주를 독점해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그러나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조선소들은 도태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대형 조선소들은 일반화물선이나 유조선 등 저부가가치선들의 저가 수주를 통해 양적으로는 세계 최대 지분을 누렸지만 중국 조선소의 30%는 지난 4년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해 문을 닫아야 했다. 일본은 기술 개발과 선가경쟁력 모두 뒤쳐지면서 조선산업 위축에 속수무책이었고, 조선소 숫자도 줄어만 갔다.

한국,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독주

올 들어 조선해운시장은 지난 5년간의 혼돈을 지나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선박금융시장이 위축돼 재정상황이 열악한 선주들은 최악의 위기였지만, 현금보유 수준이 양호하거나 선박금융을 일으킬 만큼 신용이 확실한 선주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선가가 바닥을 쳐 곧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선주를 유혹했다. 연료비 상승은 연료소모율을 단 1%라도 낮출 수 있는 경제성 있는 새로운 설계를 요구했고, 친환경 설계 적용은 필수였다. 이러한 요구조건을 맞춰 싼값에 지은 선박을 가진 선주는 구형선박에 매달린 선주보다 확실한 경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올 상반기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은 749척-4800만DWT(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4% 증가)-369억 달러를 기록하며 시장회복 기대를 반영했다. 전 세계 90%를 차지하는 조선 삼국의 수주량을 보면 중국이 347척-2120만DWT-105억 달러, 한국 184척-1660만DWT-185억 달러, 일본 94척-670만DWT-38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수량은 압도적일지 모르나 한국은 선가에 있어 중국과 일본을 합친 금액보다 높다. 즉 한국은 고부가가치선을 독점적으로 수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 올 들어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렸지만 단순히 엔저에 따른 가격하락 덕을 본 것이다. 수주선박들도 일반화물선 위주여서 중국시장을 잠식한 것이지 한국이 독점하고 있는 고부가가치선 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6월 말 현재 수주보유량(order book)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중국 18억4400만DWT-698억 달러, 한국 7억6900만DWT-1068억 달러, 일본 7억1600만DWT-286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상반기를 기점으로 급한 선대를 거의 채웠다. 2016년 초까지 작업량은 확보한 셈이다. 또한 선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수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조선 관계자들은 “지금처럼 신규선박을 수주하는 것은 독이 든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배고픈 조선소들이 최소한의 배를 채우면서 계약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일본은 엔저를 무기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를 등한시 하고 기술인력 양성을 외면한 지난 20년의 잃어버린 세월이 큰 짐이다.

세계 조선시황 개선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14년 말이면 시장상황이 개선되리라 전망했지만, 올 상반기 활발한 수주는 공급을 늘려 오히려 시장 수급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조선시장의 건강한 회복은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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