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造船史] ①”이병철 정주영 박정희가 ’20-50클럽’ 가입 씨앗 뿌려”
지금 세계의 조선산업은 살아남느냐 영원히 문을 닫아야 하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이러한 때 한국 조선산업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법이 없다. 기적이 있다고도 하고 불가사의한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일은 일어나야 할 필연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고 그 일은 다음에 따라올 일들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불교에서의 인연 혹은 연기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종교라기보다 철학이나 과학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불교가 가르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우주의 생성, 팽창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불교의 해석도 최근의 우주에 대한 과학적 해석과 아주 흡사하다. 특히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세상의 다른 일들과 깊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르침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우주의 수천억 개의 별들이 서로 크고 작은 인력을 주고 받음으로써 대우주는 균형을 이룬다. 이는 인생만사와 이 세상의 수없이 많은 일들이 서로 인연을 가지면서 균형을 이루어 그 존재의 당위성을 나누고 있다는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필자가 불교의 인과관계를 거론하는 이유는 우리 조선업이 결코 기적의 산물이 아니며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안팎의 수많은 인과관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한국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룬 경제적 성과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또 잿더미 속에서 세계제일을 이룬 조선공업을 기적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6·25전쟁을 거친 한국은 그야말로 잿더미였다. 일본식민 체제에서 만들어졌던 미미한 종속적 생산기반마저 6·25전쟁으로 불타버렸다. 바깥에서 한국을 보는 눈은 처참했다. 동족상잔으로 스스로의 자산을 불태우고 미국의 구제품 원조로 나라를 꾸려나가는, 거지와 병자들이 거리를 메우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처칠 같은 사람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극언을 하였다. 한마디로 가망 없는 나라였다.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인식은 더 처참했다. 자조와 패배의식이 만연했다. “엽전은 어쩔 수 없어” “핫바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국이나 일본의 발치에도 이를 수 없어” “우리는 무엇 하나 번듯하게 만들어 낼 수가 없어. 마무리를 할 줄 모르는 민족이야”라고 자조하고 스스로 격하시켰다.
6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단 100달러였다. 한 사람이 일년에 10만원을 버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는 엄청나게 변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20-50클럽에 가입하였다. 즉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것을 이루어 낸 곳은 세계에 7개국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독재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 경제개발로 이룬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확고한 발판을 다져가며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니 기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전혀 기적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고 우리 민족은 그것을 성취할 뿐 아니라 향유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전환은 몇 명의 지도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다. 그는 우리의 궁핍을 타파하고, 일상생활을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 방법은 일본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오늘날 삼성전자가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과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있다. 그들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은 수출밖에 없다고 믿었다. 자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맨손으로 해외건설과 중공업의 건설에 뛰어들었고, 세계 제일을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일류로 이끌어냈다. 일단 한 단계 오른 산업은 스스로 굴러 갈 수 있는 가속도를 생성하기 마련이다. 이제 한국의 세계적인 지위를 위협할 요소는 없다. 있다면 우리들 스스로일 뿐이다. 우리가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선진국의 지위를 고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