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造船史] ③정주영 “불황은 경제구조 재편과정이다”
우리는 제법 잘난 척도 하고 큰 소리도 쳤지만 이불 속 활개짓에 불과했다. 히드로 공항 가는 길의 큰 현판에는 한국 고아를 돕자는 그림이 있었다. 미국 군인들이 시골길을 행진하고 있었고 그들의 발길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뒤집어 쓴 새카맣게 때에 절은 어린 아이가 길가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한국은 동족상잔의 전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난과 질병의 나라로 그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대의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VLCC 12척을 수주한 것이다.
제2차 오일쇼크가 왔다. 천년 만년 계속될 것 같던 VLCC주문이 하루아침에 딱 끊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아까운 외화를 들여 지어놓은 조선소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비난성 걱정을 하였다. 정주영 회장도 속으로는 걱정했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태연했다. “불황이라는 것은 단지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이야. 약한 자는 도태되겠지만 충분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회야”라며 밀고 나갔다.
정말 그랬다. 오일쇼크라는 것은 세계의 돈이 중동 산유국으로 몰린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 시장이 있었던 것이다. 기름을 사는 쪽 시장은 위축되었지만 중동 산유국은 넘쳐나는 돈을 써야 했다. 중동의 건설시장이 한국경제를 살렸다. 우리의 조선공업도 거기서부터 살아났다. 우리는 그것을 알라신의 축복이라고 불렀다.
아랍 6개국이 합작해서 설립한 UASC는 작지만 여러 척의 비싼 선박을 짧은 기간 동안 필요로 했다. 현대의 No.3 도크에는 2만1000톤짜리 선박 9척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었다. 마치 통조림에 작은 정어리를 차곡차곡 재어놓듯이 배들을 지어 나갔다.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만1000톤짜리 배를 20척 넘게 짓고 나니 그들과 친해져서 발주가 계속되고 또 다른 선주들도 줄을 지어 찾아왔다. 멋진 위기의 극복이었다.
중동산유국의 프로젝트는 하늘에서 떨어진 은총 같은 것이었지만 비슷한 시절에 진행된 나이지리아 프로젝트는 우리의 피와 땀을 흠뻑 적신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의 결과였다. 석유값이 폭등해서 갑자기 부자가 된 나이지리아는 돈 쓸 곳을 찾아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중의 하나가 1만6000톤급 다목적 운반선이었다. 온 세계의 조선소가 모두 필사적인 경쟁을 벌였다.
처음 우리가 결정권자인 교통부차관을 찾아갔을 때 그는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미스터 황,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가 우리를 야만인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이지리아를 위해 가장 좋은 배를 지어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한참을 말없이 건너다보더니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이었다. “미스터 황, 당신들에게 배를 짓게 하느니 내가 짓겠소.”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다.
한국은 나이지리아보다 한참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나라로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입찰에 참여하였고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 계약서는 그들의 영국변호사와 우리 영국변호사 간에 협상이 진행되었다. 기술적인 문제도 어렵게 어렵게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켓 리스트(Maker List)에 대한 협상을 하면서 우리는 뚫을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 기술이사라는 사람이 Stern Frame, Rudder 등은 물론이고 중요한 부분의 철판까지 모두 영국제품을 사서 한국으로 가지고 와 우리는 조립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큰 모험을 하였다. 2년 가까이 공들여 협상을 벌였던 스펙을 닫고 비장한 선언을 하였다. “이것으로 우리의 협상은 끝내는 것이 좋겠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우리가 양보해서 계약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 쌍방은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부터 당신들은 자유롭게 다른 조선소와 협상을 해도 좋다.” 그는 우리가 자진해서 물러난다니까 오히려 큰 짐을 내려놓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날 작별 점심에 그들을 초청하였다. 선주들과 우리측 협상팀들은 침울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편안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기술이사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나이지리아는 비동맹국, 특히 개발도상국의 지도국으로서 그들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이지. 우리가 개발도상국가이고 제국주의에 큰 피해를 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번 협상을 통해 느낀 것은 나이지리아는 이미 제국주의자가 되어 버렸구나 하는 거야.”
그의 검은 얼굴은 갑자기 험악해졌다. “아니 우리가 제국주의자라니?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라는 것을 모르나.” “좋아 당신들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 그러나 실제로 한번 들여다 보자구. 당신은 Stern Frame을 영국으로부터 사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품의 질을 논하기 전에, 단지 한국이 개발도상국가라는 이유로 제작비의 몇 배나 드는 수송비를 들여 가며 그런 선박 부품을 영국으로부터 사서 쓰라는 것이다. 세계의 어떤 제국주의 국가가 이처럼 제국주의적 횡포를 부린 적이 있었던가.” 그는 갑자기 말을 잃었다.
점심을 끝낼 때까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점심이 끝나고 모두 헤어질 준비를 할 때 그는 모두를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모두 회의실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끝마칠 일이 좀 남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모든 기술사양을 종결시켰다. 대부분의 영국제 제품은 한국제로 바뀌었다. 일본제품까지도 삭제되고 한국제품으로 교환되었다. 선주의 경멸은 존경으로 바뀌었다. 세계에 한국조선의 자립을 알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고 우리는 또 한번의 위기를 극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