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조선삼국지] 1세기 전 ‘세계 조선산업’ 예측한 日 문예비평가
한·중·일이?21세기?조선산업 주름잡는 이유···線·形·色의 조화
20세기 초 일본의 문예비평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중국, 일본, 한국의 예술의 특징을 형태(形態), 색채(色彩), 선(線)으로 정의하였다. 방대함과 다양함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산과 들, 강과 골짜기, 강한 힘과 역사로 이루어진 나라에 알맞은 장엄한 형태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예술이라고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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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일본의 예술은 맑은 강, 초록 언덕, 꽃으로 뒤덮인 정원, 온화한 기후는 외침이 없던 평화로운 역사와 더불어 정답고 다양한 섬나라의 섬세한 색채로 표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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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닌 반도 한국은 척박한 토양과 혹독한 기후, 그리고 끊임없는 외침 등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생존을 위하여 틈새를 지키고 절묘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선(線)으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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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화폭에 가득 그려넣은 중국의 빈틈없는 산수화, 맑고 밝은 화려한 색깔로 가득 찬 일본의 채색화에 비해 한국의 화폭은 때로는 난초 한 줄기가 화폭을 가로질러 텅빈 것 같은 공간에 신비스런 균형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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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조선산업이 극동 삼국으로 집중되면서 야나기의 문예비평을 생각하게 된다. 조선산업이란 적당한 가격에 적절한 납기를 맞춰 확실한 품질의 배를 선주에게 인도하는 절차이다. 하지만 그 조선산업을 이끌고 있는 극동 삼국의 모습을 보면, 야나기가 정의한 각자의 문화적 확고한 개성을 지니고 그 개성을 기반으로 앞으로 세계 조선산업의 발전에 각자 특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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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60년대에 유럽이 석권하고 있던 조선산업을 극동으로 가져왔다. 특히 리베트 공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유럽의 조선공법에 비하여 일본은 용접을 선각 제작에 전면 채택함으로써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고 원가도 대폭 절감시켰다. 1960년대 필자가 대학 다닐 때 일본 조선 관련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경영을 가장 못한 조선소도 연말에 1200%의 보너스를 준다.” 연봉의 두배를 보너스로 준다는 것이었다. 수백년간 융성했던 조선산업이 유럽에서 사양화되어 가고 있을 때 일본은 그것을 가져와 그들의 토양에서 그들의 색채로 찬란하게 꽃피웠던 것이다. 일본은 조선산업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땅이다. 천연자원이 적었던 일본은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실어 나를 강력한 선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팽창하던 해운산업은 자체의 조선공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탄탄한 국내 수요를 바탕으로 수출이 시작되었고 세계 조선시장은 순식간에 일본이 석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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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한국은 현대적인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고 조선공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조선공업은 그 시작부터가 일본과 달랐다. 국내수요가 미미한 상태에서 처음부터 수출 위주로, 사양화하던 유럽의 조선해운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시장은 유럽, 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 다양했다. 표준설계를 내세울 겨를도 없이 시장이 요구하는 다양한 선종에 따라 다녀야 했고, 다양한 고객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어 나갔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정적인 실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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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에서 지은 초대형 유조선이 대양에서 운항중 절반으로 꺾어지는 사고가 났고, 또 다른 조선소에서는 초대형 골라이어스 크레인이 무너져 내리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그런 결정적인 실수는 없었다. 결의에 찬 최고 경영권자의 일사불란한 투지와 리더십, 잘 교육된 중간 관리층, 일에 대해 헌신적인 일꾼들이 어우러져 계획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고객들 입맛에 맞아 떨어지는 조선산업이 착근하게 되었다. 소규모 자본이 발 붙이기 어려운 속성상 몇 개의 대형 조선소들이 산업을 이끌게 되어 기술의 개발이나 정보의 소통에 큰 혼란이 없었던 것도 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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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은 각각 솥의 세 다리
그 뒤를 중국이 따라왔다. 낙후된 산업을 일시에 현대화 하려는 당국의 야심찬 정책에 발맞추어 조선공업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시작되었다. 국내 해운시장을 확장 현대화 시켜 조선공업의 기반을 만들고, 동시에 해외 시장개척도 활발해졌다. 기존에 있던 중소형 조선소의 현대화에 추가하여 새로운 대형조선소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조선소의 숫자는 1600곳에 이르게 되었다. 당장의 원가에 구애되지 않고 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물량 위주의 중국식 시장개척이 이루어졌다. 중국의 압도적인 국력은 조선산업의 획기적인 팽창에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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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화물은 자국선대로”라는 국책으로 우선 기본수요를 확보하였다. 자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외국 선주에게는 좋은 조건의 금융을 제공하고 심지어 선주를 유치하기 위해 화물도 나누어 주었다. 기술의 일관성과 잡다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정부 주도 하의 설계회사와 기술 용역회사가 조선소를 이끌었다. 한편 중앙집중식 기술과 설계개발은 개별 조선소의 경영상의 책임을 느슨하게 했다. 제조 원가의 산정이나 그를 맞추어 내는 관리, 선박의 질과 성능, 선박의 납기를 맞추는 일이 남의 일처럼 되어 경영상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은 양적으로 세계 최대 조선국이 되었다. 세계 조선해운산업을 이끌어 나갈 중심에 이미 자리 잡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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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조선공업은 한중일 삼국이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약간 퇴색된 듯하지만 아직도 밝은 색깔을 자랑하는 일본과, 방대한 양적 우위를 토대로 미래를 위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중국의 조선공업, 그리고 세계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시장의 수요를 창출해 가며 시장의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할 한국, 이 세 나라의 조화에 의해 이 산업은 오랫동안 번영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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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솥을 지탱하는데는 다리 세개가 가장 안정적이다. 세계 조선산업은 한중일 세 나라가 버티어 주는 솥과 같다. 오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 다리도 상해서는 안 된다. 한 다리가 부러지면 솥 전체가 엎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특색을 존중하며 균형 잡힌 번영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