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조선삼국지] ‘한국 조선산업’ 생존 위한 제언
무노조·무설계실·무영업조직 ‘3무’로 조선불황 타개할 묘책 있다?
지난 11월 6일 제23차 세계주요조선국 JECKU(일본, 유럽, 중국, 한국, 미국) 최고경영자 회의가 파리에서 열렸다. 선박 과잉공급 문제가 재확인됐고, 노령선박 시장에서 조속히 철수할 것 등을 촉구했다. 시장왜곡을 초래하는 관행에 대한 경고 역시 회의에서 제기됐다. 과잉공급은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 되었으며 이를 해결할 수단은 찾지 못했다.
세계최고의 선박해운 브로커이며 시장연구기관인 H.Clarkson 집계에 따르면 금년 11월 전세계 신조선박 수주량은 46척, 12만8741 CGT에 그쳐, 리먼 브러더스 금융위기 다음해인 2009년 9월(53척, 76만5748 CGT) 이후 최저치로 집계되었다. 11월 한국은 12척, 58만6809 CGT, 중국은 11척, 26만7663 CGT를 기록하여 한국이 중국을 앞질렀으나 별 의미가 없는 수치다. 금년 들어 11월까지의 누계 수주실적에서 중국은 1458만CGT(281억달러)로 한국의 1020만 CGT(269억달러)보다 앞서고 있다.
중국정부의 자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노력은 전방위적이다. 특히 불황을 조기에 벗어나기 위한 금융지원 정책은 호화찬란하다. 노후선박을 에코쉽(eco-ship)으로 대체하기 위한 자금으로 해운 4사에 18억위안의 보조금을 지원했고, 중국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한 독일 해운업계에 11억달러 융자, 자국 Sino Pacific 조선이 건조한 해양지원선에 대한 프랑스 기업의 용선에 10억달러, LNG선 건조를 위해 4억달러의 선박금융을 제공했다. 지난 6월 리커창 총리의 그리스 공식 방문 때는 19건의 중국-그리스간 비지니스 계약이 체결되었다. 거기에 중국이 48억달러를 제공키로 약속했는데 그 대부분이 조선해양 계약이었다. 이러한 정부보조는 공식 확인된 것이고 훨씬 더 많은 보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선박 품질이나 조선소의 약점을 관대한 금융제공으로 극복하려는 중국정부의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실감하게 된다.
2011년 70엔대를 기록했던 엔/달러 환율이, 일본정부가 작심하고 조정한 결과 120엔 수준을 유지하여 일본 조선공업은 그동안 70% 정도의 경쟁력을 편안하게 얻게 되었다. 그 덕으로 금년 들어 9월까지 중국이나 한국의 전년대비 수주량이 줄어든 반면 일본은 자그마치 81% 급증했다. 이에 더하여 일본정부는 2015년 자국 신조선 건조량을 2000만 GT, 2018년에는 2200만 GT로 늘리기 위한 기반 조성작업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수의 부족이다. 현재 6만5000명 수준의 숙련 엔지니어 고용규모를 7만1000명까지 확대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인재확보 사업 일환으로 조선업 등 해양개발 산업에 관련된 전문기술자 수를 2013년 약 560명에서 2020년에는 2400명까지 늘리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세계 조선을 이끌고 있는 조선 3국 중 한국은 가장 열악한 입장에 있다. 정부의 강력한 금융보조정책이나 정부의 강력한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환율조정에 따른 경쟁력 강화혜택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최근 원유가까지 하락하여 어려움을 더 하고 있다. OPEC는 산유국의 이익을 대변해서 원유값을 올리기 위한 산유량 조절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는 산유량을 줄여 원유값을 올리는데 반대해서 원유값은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6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것이 끝이 아니며 80년대 사우디가 그들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택했던 배럴당 36달러 선, 혹은 80년대 기준가 12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농담처럼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산유원가가 10달러가 되지 않는 사우디가 원가가 70달러에 가까운 미국의 셰일(Shale)유전을 주저앉히기 위해 택한 치킨게임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이란이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사우디와 미국의 공동작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모든 산유국 입장이 같은 것은 아니어서 원유가가 마냥 곤두박질 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불똥이 엉뚱하게도 한국의 조선산업에 튀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처한 한국조선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데 있다. 한국은 경쟁력을 상실한 일반상선 건조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그래서 경쟁국들과의 기술력 격차를 늘려 고기술, 고부가 가치선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원유가 폭락은 한국의 이같은 전략마저 무산시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첫째 심해유전 개발장비들이다. 지상 채굴자원이 거의 메말라가는 상황에서 유전개발은 점점 더 깊은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심해유전은 원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유지되어야 채산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처럼 원유가가 60달러 선에서 맴도는 경우 채산이 맞지 않아 이미 설치된 시설들의 조업을 단축할 수밖에 없고, 신규 발주가 중단될 뿐아니라, 현재 조선소에 발주되어 제작 중인 시설들의 인도를 계속 지연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 한국 조선소는 또한 소위 ‘에코 디자인’으로 다른 나라의 조선기술을 앞지르고 있었다. 연료소모량을 1g이라도 줄이는 설계를 개발하여 연료효율이 낮은 낡은 배를 폐선시키고 선박 신조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유가가 폭락하면서 새 배에 대한 유혹이 줄어들게 되었다. 큰 돈을 들여 새로운 배를 짓기보다, 연료를 약간 더 쓰더라도 낡은 배를 쓰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한국 조선산업은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운반선으로 최소한의 작업량은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많은 대형 도크를 채울 수가 없고 많은 인력이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여기서 역발상의 필요성을 느낀다.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벌크선을 우리가 지어보자는 것이다. 가령 경험 많고 국제적인 신망을 얻고 있는 최소한의 효율적인 경영진 10여명과 500~600명의 조선 기술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선주 몇명을 팀으로 초빙하여 남아도는 드라이 도크 하나를 임대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1년에 7~8척의 가장 인기 있는 명품 벌크선을 건조하는 것이다. 거기는 고급 설계실이 없고, 찬란한 영업조직도 없으며, 웅장한 노조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설계를 사와서 단단하고 효율적인 배를 짓는 것이다. 성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중고선 판매가치도 월등한 배를 생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간접경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정말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하게 되면 가격, 품질, 납기 등 일본과 중국을 한껏 앞지를 있는 배를 지을 수 있다. 벌커가 성공하면 탱커는 왜 성공할 수 없겠는가. 이 얼마나 신나는 세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