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제안] ‘STX 유럽’ 매각 서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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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전 현대중공업 전무, <넘지 못할 벽은 없다> 저자] 21세기 들어서면서 한국 조선산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STX조선의 부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재능이 뛰어난 한 개인의 성취였다. 강덕수 회장은 그의 탁월한 회계관리 능력으로 대동조선을 인수했고, 빚 투성이의 회사를 재정적으로 안정된 조선소로 변화시켰고, 진행 중이던 조선소 건설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그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것은 황금으로 변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렇듯 시장도 그의 편이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중국특수에 의한 조선시장이 활성화되고 선박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STX조선이 명가의 반열에 들어서고 선가도 치솟아 해마다 큰 이익이 쌓여갔다. STX그룹은 정신 없이 팽창해 갔다.

조선소 쪽만 보더라도 그룹의 성장은 눈부셨다. 중국 대련에 어마어마한 조선소를 지었고 중국에 대한 투자가 그렇듯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했고 투자 규모는 폭증했다. 그리고 유럽의 AKER그룹을 인수하게 된다. AKER그룹은 Norway, Finland, France에 가장 전통이 깊고 기술축적이 잘 된, 그러나 동시에 사양화되어 가던, 유럽의 파산 직전 조선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강 회장의 꿈은 확고했다. 전통적으로 대형 유람선 건조를 독점하고 있고, 북해의 극심한 얼음바다를 뚫어내는 쇄빙선 건조에 발군의 실적을 보유하고 있던 조선소들의 기술과 경험을 얻어서 내일의 먹거리를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몰락할 때 늘 그렇듯 그룹의 조직이 단단해지기 전 시장의 붕괴에 직면하였다. 2008년의 Lehman Brothers의 파산은 조선시장의 몰락을 가져왔고, STX는 그 장대한 꿈의 싹이 트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AKER그룹을 15억불 정도의 금액에 인수한 후 STX EUROPE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하의 조선소들도 STX Norway, STX Finland, STX France로 재편성했다. 모두 1백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세계 최고의 건조실적과 기술력을 지닌 호화유람선의 강자들이었다.

그러나 STX그룹이 경영난을 겪기 시작하면서 STX Norway와 STX Finland는 일찌기 헐값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제 남은 것은 STX France 뿐이다. 이 조선소는 STX가 66.6%의 지분을 갖고 프랑스 정부가 나머지를 가진 프랑스 유일한 대형 조선소이다. 1970년대 초기 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유조선 건조를 시작했을 때 증기기관 엔진을 공급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유람선을 지은 바 있고 France의 항공모함, 잠수함 등 방산분야도 책임지고 있는 회사다.

현재의 유람선 시장의 활황을 반영하듯 조선소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2026년까지 작업량이 꽉 차있는 상황이다.

STX 유럽의 마지막 남은 자산 STX France가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의해 매각을 위한 국제입찰에 들어갔다. 세계의 유람선 건조업자들에 의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Fincantieri, 네덜란드의 Damen, France의 해군함정 건조전문 DCNS 조선소와 아시아의 큰손 등이 입찰에 참여하였으나 Fincantieri가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었다.

세계 유람선 건조는 Fincantieri, 독일의 Meier Werft, STX France 3개의 조선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이미 STX 핀랜드를 인수한 Meier Werft에 이어 Fincatieri가 STX 프랑스를 인수한다면 유람선 시장은 이들 두 조선소가 이끄는 이두마차 체제로 재편된다. 지난 2014년 1차 입찰에 참여하여 인수가격 문제로 탈락되었던 Fincantieri는 유람선 시장의 활황에 맞춰 인수전에 임하고 있다.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자 이행보증금을 입금시키고 발 빠르게 실사작업을 시작하였다. 실사작업 후 조선소 매각가격을 확정, 2월 중순까지 계약서에 서명하고 4월 안으로 인수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Fincantieri의 입장으로 알려졌다. 상당히 서둔다는 인상을 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 황금알 낳는 거위를 다른 손이 건드리기 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당연한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이 거래에 대해 제동을 걸 움직임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 최대의 조선소가 이태리 업체의 운영체제로 들어간다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일 뿐 아니라 방산기술의 해외 유출이라는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소한 50% 이상의 지분은 확보해야 한다는 의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것은 서울지방법원의 행보에도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세계 조선해양시장은 2008년 이래로 악화되고 있고 2016년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해로 기록되었다. 2016년 전 세계 선박발주량은 1115만 CGT(480척)로 2015년의 25% 수준으로 떨어졌고 현대 조선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1월에서 11월에 이르는 기간에 조선업계가 거둔 누적 수주금액은 약 309억불로 탱커 41억불, 벌커 29억불, 컨테이너선 19억불, 가스선 17억불 등 유래 없이 초라한 실적을 기록하였는데, 유람선만 놀랍게도 153억불을 넘어서 총 선박 수주액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또한 세계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때 일반상선들이 세계시장을 휩쓸 때 한쪽 변방에서 그 생존을 위해 숨죽이고 있던 유럽의 조선공업이 호화유람선을 발판으로 이제 시장을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강덕수 회장의 꿈은 제대로 때만 만났다면 환상적인 각본이었다. 세계 상선시장이 아시아로 넘어오던 시절 유람선시장까지 한국으로 가져왔다면 한국의 조선 백년대계의 꿈은 탄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상선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STX유럽은 오히려 옛날 세계 해양패권을 이끌던 유럽의 자존심으로 남게 되었다.

강 회장의 꿈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국부의 유출을 낳았다. 진해조선소의 실패는 한국에서의 성공과 실패라고 밀어놓자. 중국에 쏟아넣은 상상하기도 싫은 엄청난 투자는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경험했듯 완전히 녹아 버렸다. STX Europe라는 신기루에 실은 또 하나의 참담한 손실은 우리의 애간장을 태운다.

단순할 것같던 STX 프랑스 매각절차가 프랑스 정부의 개입으로 좀 복잡해졌다. 우리도 이 상황을 이용하여 과정을 좀더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Fincantieri의 입찰금액은 약 1억불 남짓으로 알려지고 있다. 15억불이라는 국부가 투입되어 모두 녹아 없어지고 남은 것은 STX France 하나뿐인데 그것의 매각가격이 단지 1억불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깊은 고민을 한 뒤 내린 결정이겠지만 이것을 1억불에 팔아야 넘겨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더 받아낼 방법은 없을까.

현재 시장 상황에서 황금알을 낳는 이 거위는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다. 유럽의 최고 권위자들을 참여시켜 이 입찰을 보다 나은 국부 회수의 방향으로 돌릴 수는 없을까. 혹은 이제 불붙은 시장으로부터 이익이 보장되는 이 시점에서 이 조선소를 팔지 않고 66.6%의 지분을 확보한 채 시장으로부터 얻어지는 수확을 오랜 기간 향유하는 것은 어떨까. 매각을 다그치는 것은 골치 아픈 STX그룹의 문제를 속히 눈앞에서 지워내기 위해 서두르는 졸속은 아닌가.

정부, 은행, 법원이 좀 더 넓고 긴 안목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숙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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