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꿈②] 현정은의 재도약으로 한국경제 디딤돌 됐으면
[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전 현대중공업 전무] 2003년 정몽헌 회장의 타계 후 범현대그룹과의 괴리는?심화되었으나 유가족들의 ‘현대그룹’이라는 이름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집착은 범현대그룹으로부터 그들을 더욱 소외시켰고 협조 분위기는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다.
실질적인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금강산 사업이 여의치 않아지고 산하에 있던 실속 있는 주력산업을 차례로 매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유가족들이 현대그룹이라는 명칭을 내놓고 형제들과 화해하는 날을 고대했었다. 범현대그룹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사 형편을 편하게 하고, 정주영 회장이 이룩한 현대그룹의 명성을 온전히 지키며, 현대상선의 창립 이념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대그룹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현대상선은 그룹 화물의 수송에서 소외 되었고, 방대한 현대그룹의 재정적 지원을 잃었고, 심지어 현대상선 자신이 현대중공업을 외면하고 다른 조선소에서 배를 지었다.
원래 해운회사 가문의 출신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상선은 한국 해운산업의 전통을 지켜 내었다. IMF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 2000년대 초반 불어온 해운업계의 호황은 현대상선에 순풍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산업화로 촉발된 세계 물동량 증가의 물결을 타고 초대형 콘테이너 선대가 도입되었고 세계 양대 해운동맹에 가입하여 해운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Lehman Brothers의 파산은 그 모든 축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호황은 세계 해운업계에 엄청난 가수요를 창출해 선박의 공급초과를 불러왔다. 호황기에 비싼 값으로 발주된 신조선들이 쏟아져 나왔고 화물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던 용선료는 끝없이 폭락하였다. 전 세계의 해운회사들이 줄을 이어 도산하기 시작했다.
많은 해운회사들이 도산하였지만 현대상선은 한동안 버텨내었다. 창사 이래 유지된 장기계약 덕택이었다. 국영기업들과의 가스, 석탄, 철광석 등의 장기 용선계약에 따라 평상시라면 편안하게 회사가 운영될 물량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황기에 빌려온 배들의 초고가 용선료가 문제였다. 빌린 배마다 하루하루 쌓이는 손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었다.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빌린 돈의 이자를 갚느라 전재산이 녹아나듯, 엄청나게 치솟은 용선료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회사를 가라 앉혔다. 그룹이 거느리고 있던 알짜배기 회사를 팔았다. 값나가는 것은 무엇이건 차례차례 팔아 치울 수밖에 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천연액화가스(LNG)운반선, 장기 계약으로 용선료를 꼬박꼬박 챙겨오던 살물선(Bulk Carrier)도 팔아 넘겼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숨돌릴 틈을 주었으나 언 발에 미지근한 물 붓기 식이었다.
한국처럼 은행의 입장이 미묘한 곳도 세상에 없다. 기업과 은행 간의 대출업무가 은행이 다른 쪽에 은혜를 베푸는 시혜행위로 착각되고 있다.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서로 장사가 되면 계약을 맺는 것이고, 동업자가 되면 사업적 책임과 권한을 나누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은 일방적이다. 책임은 무시되고 권한만 휘두른다. 사업을 시작할 때나 기업이 잘될 때는 은행은 오히려 저자세로 아양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이 한번 어려워지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Lehman Brothers 사태 이후 잘 나가던 중소 조선소들은 은행의 추상같은 KIKO계약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계 어느 나라 은행도 그처럼 가혹하지 않았다. 은행은 현대상선을 완전히 발가벗겼다. 세계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의 파산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LNG선, 자동차 운반선, 살물선 등을 팔아넘긴 현대상선은 콘테이너 전용선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대상선의 파산이 미국의 US Line 이후 최대의 콘테이너 선사의 파산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 콘테이너 선대의 규모가 50만 TEU를 넘어서는 회사로 현대상선은 세계굴지의 콘테이너선사가 되어 있었다. 현대상선의 대외적인 인상이 더욱 악화된 것은 사장의 수명이 1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장으로 취임해서 명함 돌릴 만하면 어느새 다른 사장이 나타나곤 했다.
현정은 회장의 회사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은행은 여신을 계속하기 위해 세가지 조건을 걸었다. △용선료 재협상 △빚의 출자전환 △해운동맹 가입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합의된 사항에 대한 재협상(Reneg)이라는 것은 신용있는 회사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파렴치한 행위로 고려되고 있다. 재협상을 위해 현대 상선의 온갖 자존심은 포기되었다. 용선료를 깎아주는 것만큼 추후 갚겠다는 지불보증 수표를 써주었고, 회사의 주식까지 나누어 주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회사가 정상화 되었을 때 상대방은 떼돈 방석에 앉을 것이 뻔한 모양세가 되었다. 빚의 출자전환도 받아들였다. 오직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버린 현 회장은 회사를 고스란히 은행에 바친 형태가 되었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 뿐 아니라 그룹의 주력업체들마저 다 잃었다. 빚의 출자전환으로 부채비율이 400% 이하로 떨어지게 되고 정부의 선박펀드 지원 조건을 충족시키게 되어 융통성을 갖고 선대를 확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이미 1만 TEU이상의 초대형 콘테이너선 16척을 운용하고 있는 현대상선은 덴마크의 Maersk Line과 스위스의 MSC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콘테이너 해운 동맹인 2M에 가입이 결정되었다.
2M은 유럽과 대서양 운영에는 강점을 갖고 있으나 태평양쪽에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현대상선이 부채의 족쇄로부터 풀려나 선대운용에 융통성을 가짐에 따라 2M은 태평양쪽에 강점을 지닌 현대상선을 파트너로 받아들인 것이다. 홍콩, 일본 등의 선사로부터 견제를 받아온 현대상선으로서는 아주 잘된 일이었다. 현대상선은 이제 누가 맡아도 잘되지 않을 수 없는 회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은행의 관리 하에 있던 회사들의 암담한 경영실적 때문이다. 조선소는 조선소답게 경영되지 못했고 해운회사는 세계 해운업계에 떳떳하지 못했다.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시장의 흐름에 리듬을 맞춰 그 물결을 제대로 거느릴 역량을 보일 수 있을지, 정확한 시기에 적절한 수준의 투자를 해서 적절한 부문에 올바른 선대를 투입할
수 있을지, 물류의 기미를 알고 경험 많은 직원들을 제대로 거느릴 수 있는 경륜을 지닌 경영자를 선택할 수 있을지. 그 경영자가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재량권을 허용할 것인지, 시장의 기미에 맞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임자에게 적절한 값으로 매각할 능력은 갖출 수 있을지. 그동안 인사의 불균형, 투자의 실기, 매각의 실패 등 너무 자주 실망스런 모습만 보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걱정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기원한다.
정주영회장의 꿈을 생각한다. 그 동안 아세아상선과 현대상선의 성장에 기여한 많은 경영자들 관리자들의 고뇌와 땀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 일어서는 현대상선이 우리 경제의 재도약의 확실한 본보기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