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경영자들 낙담케 한 ‘서울대 가장 높은 어른’의 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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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전 현대중공업 전무] 지난 여름 모교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낡은 학과 건물을 헐고 연구실과 참신한 설계의 인재양성관을 짓는 기공식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정말 어려운 일을 하는 교수들과 관련자들을 격려도 하고, 조선산업의 앞날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싶어 흔쾌히 초청에 응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조선공업의 어려움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 어려운 산업을 지키고 앞날을 이끌어 나갈 인재양성에 묵묵히 전념하는 학교 관계자들이 존경스러웠다. 기공식에는 대학교의 가장 높은 어른으로부터 대학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조선소에서도 여러 고급 중역들이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 자그마한 모임이 어려운 시기를 마감 짓는 행사가 되기를, 새로운 좋은 시대를 이끌 마중물이 되기를 모두 간절히 기원하였다.

기공식이 끝나고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헤드테이블에는 대학교의 큰 어른을 포함한 학교의 중요한 분들과 조선소의 중역들이 같이했다. 테이블은 즐겁다기보다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특히 테이블의 윗자리에 앉은 대학교의 큰 어른의 찌푸린 얼굴이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기공식에서도 밝은 얼굴은 아니었는데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조선소의 경영자라는 사람들이 조선공업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우선 조선소 중역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려운 시장상황에서 시끄러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조선산업의 건강을 지켜 가는 사람들이었다. 기도하듯 조심스럽게 치르는 잔치에 덕담 한마디 없이 시정잡배들과 부화뇌동하는 그 어투가 너무나 불편했다.

“그러는 당신은 뭘 했단 말이오”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당장 일어서서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는 그를 위한 자리가 아니고 우리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식사가 시작되고 내게 건배사를 해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나는 작심하고 좀 길고 상세하게 조선산업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1970년대 시작된 한국 조선공업은 1990년대 세계 최고의 조선국의 자리에 올랐다. 조선인들의 불굴의 의지와 밤낮을 가리지 않은 노력의 덕이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호황을 누렸다. 조선소들은 큰 이익을 창출했고 그것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였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었다. 세상의 난다 긴다 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월가의 경영자들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 정부의 최고 정책 입안자들도 예측치 못한 급작스런 파국이었다. 그것은 선박금융의 몰락을 가져왔고 조선해운 시장을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일본과 중국의 조선산업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조선산업은 살아 남았다.

한국조선소들이 독자적인 기술과 경영능력을 발휘해서 해양 원유생산 시장을 개척했고 그 시장을 독점했다. 시장이 안정될 만하자 거기에도 예측되지 않았던 함정이 들어났다. 산유국들간의 주도권 쟁탈전의 영향으로 바렐당 120불씩 하던 원유가격이 40불선으로 폭락했다. 한국에 발주했던 해양 원유 개발업자들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저유가 시대에 비싼 해양 원유 생산시설을 가져가봐야 생산비를 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업체들은 열심히 좋은 시설을 만들어 놓았지만 발주자들의 market claim에 의한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정이 지연되고 심지어는 인도가 거부되었다. 그것이 현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고집이 센 해양개발업자까지도 한국조선소를 마냥 괴롭힐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주요 조선소들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면 그들 자신도 결국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선은 이제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고 중국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자립할 능력이 없다. 세계 해양 산업이 의지할 곳은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한 결론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 연구실과 인재양성관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좋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그들이 한국 조선의 만년대계를 이끌어 나갈 동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모인 것이다. 나는 조선산업의 밝은 미래를 위해 모든 참가자들과 건배하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조선소 관계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학관계자들도 한국의 조선산업이 정말 파탄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점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큰 어른의 얼굴은 무엇 때문인지 전혀 펴지지가 않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그의 명함을 내게 건넸다. 나도 나의 명함을 주었다. 그는 내 명함을 앞뒤로 살폈다. 한문으로 된 앞면과 영어로 된 뒷면을 살폈으나 그 명함에는 내가 뭣 하는 놈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 넓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나를 소개하였다.

“저는 선박 브로커입니다.” 그의 얼굴은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일그러졌다. ‘브로커군. 그래 브로커란 말이지. 말만 번지레하게 하는 브로커란 말이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에게 브로커란 협잡꾼, 사기꾼으로 정의되어 있겠지. 도무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남의 말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세계의 해운업자와 조선소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선박 브로커이고, 선박 거래의 시작과 끝이 건실한 브로커의 손에서 이루어지며, 세계의 모든 정보가 브로커를 통해 종합 정리되고, 대학 졸업생들의 가장 큰 꿈이 선박 브로커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분에게 설명해야 이해될 것 같지 않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그는 그의 식사를 마치고 끝내 테이블에 남은 사람들에게 목례 한번 남기지 않고 먼저 자리를 떴다.

행사가 끝난 뒤 한동안 마음이 울적했다. 그분이 남긴 언짢은 인상 때문이었다. 어느새 전통처럼 되어버렸다. 이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우선 손가락질이 시작된다.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고민과 고생은 외면되고 우선 있는 대로 목소리부터 높여 질타를 시작한다. 일이 일어난 원인이나 그 배경에 대한 배려 없이 삿대질부터 시작한다.

마치 영혼이 없는 좀비들의 집단 같다. 앞선 사람 손짓이나 고함소리에 따라,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생각지 않고 몰려다니는 사회가 되어간다. 심장이 없는 사람들, 뇌가 빠져 버린 사람들 같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는 경찰을 공격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중얼거린다.?“이놈들아 내가 네 아비 뻘이 되는 사람이야, 이놈들아.”?그들은 그들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무 죄 없는 그들의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분명한 목적도 없이 주저하지 않고 앞 사람 따라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다.

젊을 때 스코틀랜드 조선소에서 현장 훈련을 받았다. 집앞에서 버스를 타면 조선소까지 30분쯤 걸렸다. 아침 출근길, 버스가 버스차고 정류장에 도착하면 운전기사와 차장은 차를 세워 놓고 커피와 빵을 가져다 버스 속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그 동안 출근길의 손님들은 모두 신문을 펴들고 그날의 뉴스를 보거나 그날 하루의 설계를 하는 듯했다. 즐겁게 아침을 마친 뒤 기사는 시동을 걸고 다시 차를 몰아갔고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바쁜 아침 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도 출근길의 지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생활을 받아 들였다. 승객은 기사를, 기사는 승객을 동류로 서로 이해하는 모습은 내게 경이로웠다. 조금만 늦게 출발하거나 불편한 일이 일어나면 마치 천지 개벽이라도 되는 듯 욕설이 쏟아지고 삿대질이 시작되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평화스런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비행장에서 기차역에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연발착으로 가장 시끄러운 승객은 한국인들이다.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이유가 있음에도 이유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우선 삿대질하고 고함지르기부터 시작된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없다. 오직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질타가 있을 뿐이다. 이런 모습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경원되면서 선호되는 업종이라 할까. 그들의 언행은 어디서나 잘 드러나고, 또 그들 스스로 드러나고자 해서 언제나 눈에 띈다. 너무 눈에 들어나 그들이 마치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뭉쳐진 덩어리 같다. 상대방에게 삿대질하고 고함 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마치 남의 흠집을 발견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가 되며, 오직 상대방에 흠집을 내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의 전부인 것 같은 안쓰러운 모습이다. 그러자니 “내 눈의 대들보는 보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만 보이는 꼴”이 된다.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때묻고 어리석고 흉하고 추해 보이는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잘 입은 옷에 묻은 하나의 검불이 트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이 본분인 국회의원에게 법은 아무렇게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는 휴지가 된다. 그들의 생성 기반인 다수결은 그들이 거부하는 첫 번째 덕목이 된다. 그들은 잘 되는 사람을 참아내지 못하며 이긴 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잘난척하고 그들의 승리를 추구한다. 일의 본질은 외면하고 잔꾀만 부리다 보니 얼굴에서 영혼이 사라지고 목소리는 생기를 잃는다. 국가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사리와 패거리의 이해로 뒤덮인 그들의 영혼 빠진 비굴한 얼굴이 한국을 대표하는 모습이 되었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고 선언한 지도자다운 정치가를 한때 우리도 갖고 있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되는 가치와, 그것을 지켜 낼 방법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국가와 민족이고, 지고의 국가 체제를 지켜내는 방법이 법과 질서이며, 그러한 사회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사소한 상대방의 실수에는 눈 감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에게 진흙 던지는 것이 스스로 진흙을 뒤집어 쓰는 행위이며 결국 우리 사회를 바깥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지켜져야 될 지고의 가치가 무너지고, 절멸되어야 할 사악한 것들이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 우리는 그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존재였던가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지난 한세기 동안 역사상 세계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격랑을 지나왔다. 무능한 왕조는 지난 세기 초 드디어 이웃나라에 나라를 내주었다. 나라를 잃고 동포를 팔아 먹은 세상이었다. 국토는 쑥대 밭이 되고 동포의 정신은 피폐되었다. 주위 세력들의 도움으로 그 질곡에서 겨우 풀려나자마자, 주변 세력의 노름에 따라 나라는 반쪽으로 나뉘고 참혹한 동족상잔이 자행되었다. 외침에 의한 전쟁은 그것이 참혹하더라도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장래에 대한 희망의 씨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상처는 깊고도 넓었다.

가난과 무력감이 이 나라를 지배했다. 그렇게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무력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지난 세기 중반 60년대에 들어 우리민족은 기적의 횃불을 들었다. 무력감을 몰아내기에 충분한 자신감과 힘을 분출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를 스스로 창출하였다.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일을 단 삼십년 동안에 이루었다. 세계 최빈국이 살만한 나라가 되었고, 불가능 하리라던 민주주의도 보란 듯이 성취하였다.

그 위대한 성공의 가장 빛나는 한 자락이 조선산업이었다. 민족의 확고한 창의와 노력으로 이룩된 성공은 세계의 귀감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성과 맞는 산업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세계최고로 만들었고 지켜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도할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잡아 나가는 단계에서 고비를 맞았다. 어려움에 맞닥뜨리자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협력하기보다 관련자에 대한 폄하와 질타가 터져 나왔다. 오늘을 이루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던 사람들, 이 산업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부정적 목소리가 높고 크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조선 산업은 지금 좀 어렵다고 폄하될 그런 산업이 아니며, 지금 큰 파도의 골짜기에 있을 뿐이며 곧 꼭대기로 오르는 것은 자연적 추세라는 것이다.

이 국가와 우리 사회체제는 우리가 흠집 없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우리 민족을 위한 보루이다. 사소한 과정상의 오류로 이 소중한 사회의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미래를 향한 투철한 안목과 흔들림 없는 사명감으로 기초를 공고히 해야 한다. 침체되고 때묻은 기성사회에 기대할 수 없다. 특히 미래에 대한 통찰력도 없고 동족에 대한 사랑을 잃은 증오로 뭉쳐진 좀비들 정치권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그것은 교육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새로운 기술, 경영기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으나, 사랑하는 법, 감싸 안는 법, 용서하는 법, 이해하는 법, 더불어 사는 법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경영자들이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라며 삿대질하기 전에 “그동안 애 많이 썼지요, 이제 곧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시오. 우리 함께 만들어 냅시다” 하며 어깨를 감싸는 자세를 가르치는 교육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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