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현대 정주영 회장이 생각날까? “임자 해봤어?”

정주영 회장이 그립고 그의 명언이 다시 듣고 싶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8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무역보복에 정부·기업·국민이 한마음으로 대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남북 평화경제를 실현해 일본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이번 일을 겪으며 평화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일본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으로,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대일 메시지는 지난달 2일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공식 제외한 직후 긴급 국무회의에서 일본을 고강도로 비판한 지 사흘 만에 나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는 남북 및 북미 관계에 굴곡이 있다고 해서 쉽게 비관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라며 “긴 세월의 대립·불신이 있었던 만큼 끈질긴 의지를 가지고 서로 신뢰를 회복해 나아가야 가능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평화경제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미래라는 확신을 갖고 남북이 함께 노력해 나갈 때, 비핵화와 함께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그 토대 위에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메시지를 듣고 혹자는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 말처럼 번영의 꿈도 꾸지 말아야 할까?

20일자 조선일보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윤희영의 News English] ‘한국이 인도·태평양 열쇠를 쥐고 있다’는 글이다.

이 문제에 가장 근사한 해답을 준 것이 라몬 파르도 브뤼셀자유대학교 한국학 석좌교수가 미국 정치매체 <더 힐>에 기고한 ‘한국이 인도·태평양 열쇠를 쥐고 있다’는 글이다. 세계열강의 각축장에 끼여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 따르면, 국제법상 인정된 국가 수는 현재 242개국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전략에 모든 외교적 역량을 쏟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전적으로 이 미국의 전략을 지지하고 있고, 인도도 원칙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4개국만으로 ‘FOIP’를 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 전략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유라시아의 주도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다. 그런데 이 전략과 부딪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서양과 동양이 부딪치는 각축장이기도 하지만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한국이 세계평화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세계종교는 문명충돌에서 탄생한다. 황화문명과 인더스 문명이 충돌하는 네팔에서 불교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집트문명과 로마문명이 충돌하는 이스라엘에서 기독교가 탄생하였다.

동아일보 1929년 4월2일자에 인도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의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가 실렸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림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펴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이 시는 ‘동방의 등촉’(燈燭) ‘동방의 불꽃’으로도 번역되었다. 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한국 방문을 요청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여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이 시는 타고르가 한국을 소재로 쓴 두 편의 작품 중 하나로, 일제 식민 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싸워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격려의 송시(頌詩)다.

한국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강인하고도 유연한 민족성을 ‘동방의 등불’로 표현하여 당시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격려와 위안을 주었다. 특히 한국의 독립 쟁취에 대한 시인의 강렬한 기원을 진취적이고 희망적 어조로 노래하여 3·1운동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일깨워준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시련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 공연히 해보지도 않고 일본에 사죄부터 하라고 하는 얼빠진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민다.

그 옛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명언이 떠오른다. “임자 해보기나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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