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삼국지 황성혁의 몽환적 유럽여행기④] 위스키 ‘커티 삭’ 명칭 붙은 또다른 곳은?
[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전 현대중공업 전무]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 조반을 마쳤다. 노보텔호텔에서 10분 정도 걸어 아홉시 반 Cutty Sark에 도착하니 입구에 Cutty Sark Trust의 관리인 Jessica Lewis와 Lucy Cooke 두 여인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Greenwich Maritime Museum 관장인 Kevin Fewster 박사의 자상한 배려가 시작부터 우리를 편안하게 해줬다.
Cutty Sark는 1869년 Scotland에서 건조돼 중국과 영 국 사이의 차(tea) 무역에 취역했다. 그러다가 1883년 수웨즈운하 개통으로 중국항로에서는 증기선에 밀려나 호주의 양모 수송에 투입되었다. 바람의 힘으로 최대 속력 17.5노트로 달렸으니 요즈음의 동력선 속력이 15노트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설계였다. 수많은 해상사고에 배의 많은 부분을 잃었으나 그때마다 복원하여 최장수 범선으로 오랜 동안 선주에게 많은 돈을 벌어주었다. 1957년 수리를 마치고 역사적인 기념물로 일반에 개방됐으나 2007년 5월 화재로 절반 이상의 목재가 타버려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거쳤다. 거의 5000만 달러의 보수비가 들었다. 수많은 개인과 복지기관들이 기금모집에 참여하여 완전 복원을 하고 2012년 일반에 개방됐다.
복원을 마치기 전 330만 달러 정도가 부족했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선박왕 Sammy Ofer가 흔쾌하게 충당해 주어 곳곳에 Ofer 송덕패가 붙어 있다. 선박왕으로서 많지 않은 금액으로 큰 이름을 얻은 처신이다. Cutty Sark은 쇠로 골격을 만들고 나무로 외판을 짠 뒤 흘수 아랫부분을 동판으로 덧붙인 19세기의 전형적인 선박으로 현재 National Historic Ship 1급으로 지정돼 있다.
Cutty Sark라는 이름은 영국여행 이틀째 들렀던 Ayreshire의 시인 Robert Burns와 관련된다. 그의 시 ‘Tam of Shanter’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Tam이 장에 가서 술 한잔 얼큰하게 하고 오는 길에 한밤 중 Alloway Parish Church에서 수상한 술렁거림을 느낀다. 훔쳐보니 마녀들과 도깨비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Tam은 마녀들 중 명랑한 창녀 Nannie의 유령에게 들켰다. Tam의 말이 꽁지 빠지게 도망을 쳐도 Nannie의 유령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Nannie에게 거의 잡힐 때쯤 되어 Tam은 냇가에 다다른다. 유령이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말을 채찍질하여 훌쩍 뛰어넘었다. 말 뒤꽁무니까지 따라왔던 Nannie의 유령은 말꼬리를 잡아채었다. 말은 꼬리가 빠진 채 간신히 Nannie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쳤고, Nannie의 손에는 말의 검은 꼬리가 들려져 있었다. Nannie가 입고 있던 무릎 아래가 잘라진 속옷 같은 치마를 Burns는 Cutty Sark라고 불렀다.
새 배를 지은 선주는 소중한 배의 이름을 Cutty Sark라 명명했고, 말꼬리를 들고 칠칠찮은 속치마만 입은 Nannie의 조각을 배의 수호여인으로 뱃머리에 붙여놓았다. Nannie도 아니고 그녀의 속치마를 배의 이름으로 삼다니. 근엄하고 격식을 따지는 영국 신사들의 해학일까?
금기 사항이 많은 선박에서 특히 생명을 건 원양항해에 투입된 선박에 붙인 그 해학이 이 위대한 선박의 번영과 장수를 불러온 신비스런 영험이 되었을까? 하기야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술인 위스키 중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의 이름도 Cutty Sark이다.
오전 10시45분. 차 한 잔 하고 Queen’s House로 옮겼다. 국립해사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은 박물관 자체와 The Queen’s House, 넓디넓은 Greenwich 공원 그리고 Royal Observatory(왕립천문대)로 이루어져 있다. London으로부터 가깝기도 하고 소장품도 엄청난 데다 넓은 공간을 이용한 여러 가지 특별전시들도 기획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그 수입만으로도 자체 운영이 될 만큼 큰 규모다.
Queen’s House는 여왕의 숙소로 17세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동안 뱃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 해군사관학교로 사용되다가 2012년 올림픽 때는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지금은 바다와 관련된 그림과 바다를 지배했던 영웅들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있다. 스스로 예술가처럼 보이던 Peter van der Merwe라는 네덜란드 이름을 가진 관리인이 우리를 안내했다.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듯 구석구석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높고 아름다운 천정과 우아한 Tulip stair(지지기둥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는 나선형 계단)은 특히 아름다웠다. 현재 걸려있는 수백 점의 그림은 곧 철거되고 Turner의 바다 관련 그림으로 새 전시회를 시작한다고 했다. 곳곳에서 의욕적인 준비작업을 볼 수 있었다.
Queen’s House에서 국립해사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으로 옮겼다. 지난 수 세기 동안 5대양을 지배했던 영국의 긍지가 담긴 곳이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들어서자 멋쟁이 Rory McEvoy가 우리를 맞았다. 전시품이 약 200만점에 이른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해사 관련 보물들이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해운에 관련된 사람이든 아니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분위기다. 우리는 주로 배의 모델과 배의 상세부분들, 배의 부속품들을 보았다. 며칠, 아니 몇 달을 보아도 다 보지 못할 귀한 수집품이다.
점심은 박물관 구내 식당에서 먹었다. 2007년부터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Kevin Fewster 박사가 초대했다. 수석 큐레이터 Sarah Wilde가 동석했다. 젊고 활기찬 Fewster 박사의 관리 아래 박물관이 해마다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초청을 해줬는데 이번에 그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큰 영광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박물관 회원등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자 아직도 볼 것이 남았다고 했다. ‘Visioning universe’라는 주제로 거창한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현묘한 우주의 신비가 특수 촬영된 수많은 사진에 수록되어 있다. 그 사진들은 과학적인 신비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완벽한 가치를 뽐내고 있었다. 현대 최고의 천문학자인 Carl Sagan의 책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코스모스>(Cosmos), <에덴의 용>(The Dragon of Eden) <에필로그>(Billions Billions)를 읽은 뒤라 사소한 사진 한 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오후 2시 좀 지나서 자동차를 타고 Greenwich천문대 (Greenwich Royal Observatory)로 향했다. 공원의 넓은 잔디를 밟으며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올랐어야 제맛이 나는 건데, 저녁 비행기 시간도 빠듯했고 모두들 약간 지치기도 했다. 천문대 입구에는 또 수석 관리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천문대란 이름이 붙어서 멋진 관측장비를 보고 천체를 관측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Greenwich는 이미 천체관측으로서는 그 임무를 끝낸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1675년 창립 이후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그에 따른 항해선박의 위치 확인을 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던 천문대는 산업혁명에 따른 대기오염 때문에 천체관측소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단지 지구의 자전과 우주의 운행을 반영한 정확한 시간을 지구 각지에 알리는 역할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준시간(Greenwich Mean Time)의 정확성이 필요해졌다. 천문대는 마치 시계의 수집 전시장 같았다. 온갖 시계가 다 있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의 전시장 같았다. 시대를 지나면서 그 시대의 최고의 기술을 동원하여 첨단시계를 제작해서 시간 의 편차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왔던 것이다. 거기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양다리를 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으로 우리의 Greenwich 방문도 끝나고 ‘몽환적 문화기행-영국’도 막을 내렸다. 동행한 남성해운의 김영치 회장 부부는 하루 더 묵으며 런던을 탐구하기로 하였다. 호텔에서 차 한잔 나누고 우리는 Healthrow공항으로 향했다. 김 회장과는 그동안 많은 일을 같이 하였다. 서로의 가진 경험과 지혜를 묶어 서로 보완하는 관계였다. 그에 곁들여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도 제법 자주 가진 셈이다. 몇 해를 두고 한 달에 한번 운동을 같이 해왔고 여행도 제법 다녔다. 내가 Laser Class Yacht협회 회장으로서 세계대회를 치렀을 때 제주도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의 안방인 일본에 가서 그의 안내로 기억에 남는 일본 문화탐구도 하였다. 언젠가 그리스의 Posedonia해양박람회에 함께 참석한 뒤 터키를 거의 일주일에 걸쳐 돌아 본 적도 있다.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완벽한 가치를 지닌 터키여행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건강을 유지해서 오래오래 일도 같이하고 여행도 하며 삶을 풍요롭게 나눌 수 있기를 빈다.
Heathrow공항에서는 그리스로 향하게 일정이 잡혀있었다. 유럽을 왔다 가면서 그리스를 들르지 않느냐는 협박성 권유를 Plutofylax해운의 Rosie Pipilis사장으로부터 받고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