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삼국지 황성혁의 몽환적 유럽탐방기②]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을 만나다
[아시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2013년 6월7일, 필자 일행은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좀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Norshipping 후 영국을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예전 살던 곳을 둘러보는 추억의 여행이 되고, 김 회장 부부에게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는 것이 적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탐구여행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여행 일정을 짜고 자동차와 운전기사 겸 가이드를 부탁해 두었다. 아침을 일찍 먹고 호텔을 나섰다.
KL1142편으로 오슬로를 출발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12시25분 KL1281편으로 암스텔담 출발하니 잠시 후인 12시50분에 에딘버러(Edinburgh)에 도착했다. 공항에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할인매장 창고 지붕에 TESCO라는 커다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2008년 4월 위더비(Witherby) 출판사에서 필자의 책 <Let There Be A Yard>를 출판하겠다고 해서 에딘버러에 왔었다. 창립 후 300여년 된 명망 있는 출판사를 갓 인수한 젊은 실업가 이안 맥닐(Ian MacNeil)은 말했다.
“처음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을 출판한다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그러나 인도 출장 가는 길에 미스터 황의 원고를 읽고 푹 빠졌다. 단숨에 다 읽었다. 그리고 최단 시일 내에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그날 출판에 관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TESCO지붕을 보며 말했다. “나는 10년 안에 저만큼 큰 건물의 책 물류센터를 만들어 내겠다.” 책의 초판이 불티나게 팔리자 그는 ‘출판사의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고, 1년 동안 다툰 끝에 나는 판권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오늘까지 계속 책을 찍어내고 있다.
그의 유통센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매리어트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에딘버러 탐험에 나섰다. 우선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 휴양지인 홀리루드 궁전으로 향했다. 지난 1981년, 3년 반 동안의 영국지점 시절을 끝낼 즈음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간 적이 있었다. 궁전 입구의 카페에서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운 뒤 스코틀랜드의 화창한 6월을 즐겼다. 북구의 어디를 가나 6월은 낙원이었다. 역사유물과 현재의 거주시설이 혼재하여, 화려하지 않으나 품위 있는 궁전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된 매리여왕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음산한 날은 매리여왕의 원혼이라도 나올 듯 으스스하겠다. 궁전 안에 폐허처럼 벽만 남은 보기 좋은 유적이 있었다. 궁전에 속한 예배당이었으나 신교도들이 점령하여 있던 중 천정이 무너져내려 벽만 남았는데, 오히려 고풍스런 명소가 되어 죽기 전에 보아두어야 할 1001개의 유적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홀리루드 궁전에서 우리는 매일 오후 1시면 시민을 위해 시간을 알리는 총도 보고 왕관도 둘러보았다. 옛 국가 최고 회의장이었다는 그레이트홀(Great Hall)과 국립전쟁기념관에서 스코틀랜드 패배의 역사도 읽었다. 성벽에 기대어 동북방향 애버딘 쪽 바다도 보았다.
대포들은 모두 그쪽으로 향해져 있었다. 적은 대부분 그쪽으로부터 접근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보고 싶었으나 결국 못 본 것이 하나 있었다.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 혹은 Stone of Scone). 영국 왕의 대관식때 반드시 왕좌 밑에 놓여야 한다는, 그래서 새로운 왕을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영국의 영물이라고 했다. 평범한 사암(Sand Stone)으로 만들었으나, 스코틀랜드 자존심의 상징이라고 했다. 1292년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된 이후 잉들랜드가 강압적으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 놓았다.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때까지 사용되었고 1996년 화해의 상징으로 에딘버러성으로 옮겨다 놓았다. 하도 집적대는 손들이 많아 지금은 꼭꼭 숨겨 대중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요즈음 스카치 위스키 중 가장 귀한 ‘로얄 살루트 38’에 ‘Stone of Destiny’라는 이름을 붙여 한 병에 200만원인가 3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고 했다. 에딘버러성을 대충보고 로얄 마일(Royal Mile)로 나섰다. 옛 번성하던 에딘버러시의 간선도로다. 이 도로의 동쪽 끝은 에딘버러 캐슬(Edinburgh Castle)이고 서쪽 끝은 홀리로트 궁전이 자리잡고 있다. 나오자마자 존 녹스(John Knox)의 생가를 만난다.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을 이끈, 하나님의 나팔수(God’s Trumpet)라고 불리던 그는 매리여왕의 추상같은 권위에 도전했으나 사형을 면했고 완고한 기존 교회에 맞섰으나 화형을 피했다. 그리고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에 결국 성공해서 장로교를 설립하였다. 그의 생가는 조촐하였으나 그의 생애를 간결하게 정리해 놓았다. 길로 향한 창가에서 그는 모여든 군중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나는 타락한 적도, 남을 속인 일도, 나를 위해 이익을 취한 적도 없었다.” 그것이 기성 질서에 맞서면서도 살아남았고 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생가 근처에 녹스가 봉사한 세인트 자일스(St Gile)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거리의 양 옆은 스코트랜드 특산품 상점 들이 줄을 짓고 있다. 셰틀랜드(Shetland) 양모로 만든 옷과 목도리 모자 등이 주종이었다. 어딜 가나 상점은 엉겅퀴 꽃(Thistle)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고산지대에서 피는 들꽃, 스코트랜드의 국화다. 잉글랜드의 화사한 장미에 비해 보라색 소박한 꽃은 스코트랜드를 상징하는 깊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거리는 아담 스미스, 월터 스코트, 코난 도일 등 스코틀랜드를 빛낸 위인들의 동상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동상 아래에 거리의 예술인들이 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술사, 화가, 악가 등 여러 종류의 예술가들이 6월의 저녁 햇살 아래서 관객들의 기호보다 자신의 좋아하는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전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허가를 받아야 하고 공연시간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일곱 시가 넘었지만 해는 중천에 남아 있었다.
로얄 마일에서 꼭 한곳 들러 볼 곳이 있었다. Elephant House 찻집이었다. 로얄 마일에서 북쪽, 시내 쪽으로 잠깐 내려가면 온통 시뻘건 색으로 도색한 찻집이 나왔다. 1995년 열었다는데 ‘해리포터의 탄생지’(The birth place of Harry Porter)라는 문구가 간판 아래 적혀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 예약하지 않고는 자리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운이 좋게도 빈자리가 있어 창가 자리를 얻어 앉을 수 있었다. 간단한 음식과 온갖 종류의 차와 쿠키들을 팔고 있었다. 미혼모인 조앤 롤링이 아침부터 유모차를 끌고 와 에딘버러성이 올려다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차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글을 썼다고 했다.
작가의 장래성을 알아본 주인의 혜안이었을까, 혹은 작가를 존중하는 영국의 전통 탓이었을까. 주인은 롤링이 글쓰기 좋은 자리를 항상 마련해 주었고 그녀가 편안하게 글을 쓰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롤링은 이제 그녀가 항상 올려다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환상적인 고성을 몇 개씩 살 수 있는 돈을 벌었고, 그 찻집 주인은 가게가 터져나가도록 손님 벼락을 맞고 있었다. 그 평범하지만 널다란 찻집에 늙은이 넷이 앉아 카모마일과 영국의 전통차 몇 잔을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은 그러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영국의 전통이라는 것을 음미하였다. 저녁은 한식을 들기로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한식을 구경도 못했으니 김치가 그립기도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에딘버러성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972년 Scot Lithgow 조선소에 훈련 갔을 때 참관했던 Edinburgh Festival을 생각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평화와 문화의 복원을 염원하며 1947년 시작된 축제라 했다. 8월 한달간 전세계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꿈의 무대가 Edinburgh 일원에서 열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Edinburgh성의 입구에서 벌어지는 군악대(Military Tattoo)였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Bag Pipe)를 연주하며 진행하는 고적대의 연주는 특유의 조명과 함께 인상 깊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군악대 연주가 끝나면 조명이 하나씩 꺼진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 속 정적이 한동안 계속된다. 문득 지붕 위 한구석에 조명이 비친다. 한 명의 나팔수(Lone Piper)가 Amazing Grace를 연주한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옆에 친구가 물었다. “왜 울어?” “몰라, 다른 사람도 다 울잖아.” 그러는 그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Amazing Grace가 끝나면서 조명이 하나씩 서서히 꺼지고 천지는 다시 어두운 정적으로 잦아들었다.
나는 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성이 있고 코난 도일의 생가가 있고 성 앤드류 골프장이 있고 그라함 벨(Graham Bell) 생가 등 수많은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에딘버러는 여기까지다. 긴긴 하루였다. 길고 깊은 행복이 가슴에 쌓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