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삼국지 황성혁의 몽환적 유럽탐방기①] “거기 정주영이 있었다”
<아시아엔>에 ‘조선삼국지’를 연재하고 있는 황성혁 황화상사 대표가 2013년 6월,?젊음을 불태운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그는 자신의 4박5일 이곳 탐방을?‘몽환적(夢幻的) 문화기행’이라고 이름붙였다. 이번 연재는 (1)2013년 6월6일 오슬로 노르웨이조선해양박람회를 마치고?영국으로의 행로 (2)6월7일 에딘버러 (3)6월8일 레이크 디스트릭 (4)6월9일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 및 6월10일 그리니치 등 5일간의 여정 순으로 게재된다. <편집자>
[아사아엔=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2013년 6월6일 목요일. 오슬로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노르웨이 조선해양박람회(Norshipping)는 7일까지 계속되지만 이날 저녁 ‘한국의 밤’ 행사를 마치고 이튿날 아침 떠나기로 했다.
금년 Norshipping은 조선 해운경기의 침체를 반영하듯 활기가 없었다. 항상 큰 면적을 차지하던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다. 노르웨이가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민주개혁을 요구하며 ‘08헌장’ 작성을 주도한 류샤오보에게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데 대한 불만을 품고 중국이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시상 당시 중국은 11년 징역형을 받고 수감중인 류샤오보 가족들까지 가택연금을 시켜, 수상자석은 텅빈 채 상장과 메달만 놓여있었다. 사실 류샤오보 사건은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 때려준 일인지도 몰랐다. 조선소들마다 핑계만 있으면 규모를 줄이고 싶은 형편이었다.
일본관도 초라했고 한국관도 예년처럼 흥청거리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된 사상 초유의 활황으로 너무 많은 선박들이 건조되어 세계의 선복과잉은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전통적인 해운회사들은 보유 중인 선박화물도 확보하기 어려운 시황이었다. 조선소는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덜 쓰는 연료효율 높은 설계를 계속 개발하여 수주 경쟁에 나섰으나 선가는 계속 떨어졌다. 간간히 성사되는 계약도 전통적인 해운회사가 발주하는 것이 아니고 낮은 선가를 겨냥한 투자자본에 의해 주도됐다.
이번 여행은 남성해운의 김영치 회장 부부와 함께 하였다. 아침에는 뮌헨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오슬로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지만 뮌헨의 삶과 그의 눈을 통해 본 세계는 언제나 감동이었다. 노르웨이 정부는 해마다 투자를 늘려 전시관을 늘리고 전시환경을 개선하고 있었다. 지난 4일 아침에는 두 부부가 비겔란트(Bigeland) 공원을 들렀다. 정부가 10만평이 넘는 자연미 넘치는 프로크너(Frogner) 공원을 제공하여 조각가의 창조력을 있는대로 뽐내도록 한 조각공원이다. 마치 처음 오는 것처럼 새롭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이 겪는 모든 희로애락과 증오, 사랑, 용서의 파란만장한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곳이다.
공공기관이 예술창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가가 인류에게 무엇으로 보답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본다. 북유럽의 유월은 야외 나들이 하기에 더없이 쾌적하다.올해 Norshipping은 ‘Next Generation Shipping’(차세대 해운)을 주제로 구성되었다. 점점 더 구체화되고 엄격해지는 환경보호에 적응하고 연료효율을 높이자는 것이 선박설계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나와 김 회장은 전시장을 돌아보며 평형수 처리시설, 배기가스로부터의 탈황설비 등을 보려했으나 눈에 띄는 전시물이 없었다.
오전 11시부터 I-Tech의 제품소개 세미나가 스웨덴관에서 있었다. 이번 전시회 중 우리 회사가 직접 관련하여 노력을 기울인 모임이었다. I-Tech는 스웨덴의 고텐베르크(Gothenberg)에 있는 대학 연구진이 설립하여, 선박 밑바닥에 적용될 획기적 성능의 페인트인 셀렉토프(Selectope)를 개발한 회사이다. 그동안 공동으로 시장을 개발하면서 우리도 약간의 투자를 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이미 스웨덴의 자동차 재벌인 SAAB투자사가 대주주가 되어있었고 우리에게도 투자제의가 있어 흔쾌히 동참한 것이다. 배 밑바닥 페인트는 특히 따개비가 부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는 것이다. 따개비가 배 밑 바닥에 붙기 시작하면 배의 저항을 40%나 증가시켜 연료 소비율이 크게 증가되고 탄산가스 배출량도 그만큼 많아져서, 전 세계가 따개비 부착을 막기 위한 적절한 페인트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지금까지는 산화아연이나 산화구리를 함유한 페인트를 사용해서 그 독성으로 유충(Larva)을 죽여 따개비의 접근을 막으려 했으나 따개비는 페인트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번식하였다. 게다가 페인트의 독성은 따개비의 유충을 죽일 뿐아니라 수중생태계까지 파괴하기 때문에 사용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 맞추어 I-Tech의 Selektope이 소개된 것이다. 이는 화학약품으로서 독성을 갖지 않고, 유독 따개비의 유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발산함으로써 “다른 데 가서 놀아라” 하고 쫓는 역할만 한다. 자연히 다른 페인트 제품에 비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배 밑바닥을 놀랄만큼 깨끗이 유지해 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개비의 유충은 0.2mm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인데 자체에 두개의 발을 가지고 서식할 표면을 건드려 보아 조건이 맞으면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자양분을 섭취해서 시멘트를 분비하여 따개비를 만들고 10cm 크기까지 자라는 것이다. 이 제품 개발의 중요성을 인지해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남성해운 등이 세미나에 관련 임원들을 파견하였고, Jo Tanker 등 유럽 선주들도 참여했다. 세미나는 대성공이었다.
Norshipping 전체 전시장의 분위기가 무덤덤했듯이 ‘한국의밤’도 활기 없이 일찍 끝났다. 항상 북적이고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참석자도 많지 않았고 밤 아홉시도 되기 전에 모두 흩어졌다. ‘한국의 밤’이 열린 그랜드호텔 밖은 그때까지 한낮이었다. 래디슨 블루 플라자 호텔로 걸어가다가 중국집 진보반점(珍?飯店)에 들러 배를 채웠다.
우리는 내일이면 스코틀랜드로 넘어간다. 거기는?40여년 전 대한민국 조선의 선구자들이 조선기술을 배운 곳이며 고 정주영 회장과의 추억이 아련히 남아있는 곳이다. 영국은 우리나라가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잴 수 없는 문화적 깊이를 지닌?나라다. 나는?40년을 널뛰듯 오가며 추억을 씹어보고 수백년 영국의 문화유적과 작가들 생활상을 맘껏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