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조선삼국지] 기나긴 터널 들어선 조선산업 어떻게 벗어날까?

공급과잉의 덫에 걸린 세계조선 시황은 길고 긴 터널에 갇힌 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클락슨 보고서에 의하면 금년 들어 9월말까지 전세계 조선업계 신조선 수주 실적은 1388척(9202만 DWT 재화중량, 3080만 CGT 환산용적총톤수, 352억달러)로 집계되어 DWT기준 전년대비 32%, 금액기준 21% 감소하였다. 중국이 같은 기간 691척(4400만 DWT, 1320만 CGT), 한국 238척(2500만 DWT, 850만 CGT), 일본이 285척(1640만 DWT, 570만 CGT)를 수주해 전년비 각각 31%, 34%, 31% 감소하였다.

이 정도를 유지한 것도, 금년 들어 큰 폭으로 증가한 가스운반선(130척, 133억달러)의 덕이었다. 가스운반선을 빼면 일반 상선의 전년비 수주실적은 더 큰 폭으로 감소되었음을 의미한다. 작년에 LPG가스 운반선이 활기를 띄었으나 금년은 15~18만 CBM급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LNG Carrier)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천연가스는 지금까지 중동이나 북해의 원유 채굴 과정에서 생산되어 세계의 수요를 충당해 왔었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가스 채굴 기술이 개선되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고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되자, 에너지 수입국이던 미국이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전환되었고, 2017년 말부터 선적이 시작될 미국 천연가스가 세계 해운업계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LNG 수송선의 발주가 늘어나 한국의 3대 조선소는 각기 약 30여척의 대형 LNG운반선 계약을 확보하였고 우선 급한 일감은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터널의 끝을 알리는 불빛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9월 한달간 국가별 신규 선박 수주량을 보면 중국 92만 CGT, 일본 55만 CGT, 한국 42만 CGT를 기록하였고, 조선삼국은 9월 세계시장 점유율 45.3%, 23.1% 및 20.7%를 각각 차지하여 세계 조선시장의 93%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4월, 6월에 이어 올해 세번째로 일본보다 낮은 수주량을 보였다. 한국의 조선소들이 기본적인 일감을 확보하였고, 선가가 개선될 때까지 공격적 영업활동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하지만,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세계 제일의 조선국 지위를 유지하던 몇년 전과 비교하면 시장의 흐름의 변화를 뼈저리게 감지할 수 있다.?

시장 침체로 인한 주문 감소에 더하여, 한국조선소들은 2010~12년 기간에 수주한 낮은 선가의 선박을 건조하면서 수익성의 급격한 악화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근대 조선산업이 시작된 뒤 지난 40여 년간 경영상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으나, 대체로 순탄했던 경영성과 덕으로 조선소들은 흑자에 익숙해져, 적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더 충격이 컸다.

삼성중공업은 연초 그룹 차원의 감사팀에 의해 적자경영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실사를 받아 중공업 간부들의 심신이 고달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직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바깥에서 보기엔 물컵 속의 잔물결처럼 조용히 지나갔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통해 기술력의 한계를 뚫어 낼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중공업의 2분기 1조원이 넘는 손실은 중공업 자체나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손실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고 또 그 손실을 보전할 만한 유보 현금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으나, 그 손실이 마치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처럼 업계를 흔들어 놓았다. 경영진부터 요동쳤다. 중역들 30%를 내보냈고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의 최고경영진을 하루 아침에 바꾸었다. 영업의 형태가 다른 현대미포의 영업과 설계조직을 현대중공업으로 흡수시켰다. 현대의 치유방법은 너무 바깥으로 드러나서 우선 선주와 협력업체에 큰 충격을 주며 시작되었다.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조직을 추스르는데 그러한 충격요법이 필수적이라면 시장이 침체된 현시점이 적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우중공업이라고 손실의 충격으로부터 피해갈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경영의 지배주체가 개인소유가 아닌 채권단 은행이어서 충격을 다루는 방법이 훨씬 객관적이고 덜 충격적이었다.

중국의 조선공업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조선산업은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난다. 중국 당국은 조선소를 백색명단(White List)과 흑색명단(Black List) 두 그룹으로 나누었고, 51개의 조선소를 White List에 포함시켜 앞으로의 정부 지원정책의 수혜대상으로 삼았다. 2010년 3000여 곳으로 추산되던 조선소의 수가 중국정부의 구조조정으로 300여곳으로 크게 줄었으나, 그들마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정부주도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전체의 구조조정을 해보자는 시도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많은 중소 조선소들을 10여개의 초대형 조선소로 통합해서 국내 총생산량의 75% 이상을 생산해보자는 의도인 것 같다. 한편 중국 당국은 국조국수(國造國輸) 정책의 일환으로 수십 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국내 조선소로 하여금 건조하게 하는 등 국내 조선산업의 진작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먼 안목으로 보면 이미 과잉 선복으로 허덕이는 세계 전체 해운산업에 큰 짐만 하나 더 안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2012년 시작된 아베노믹스의 엔저정책은 일본 조선업계의 가격경쟁력 회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00년대 중반에 누렸던 세계 최대조선국의 명예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인감이 있으나, 한국과 중국에 빼앗긴 시장의 일부를 되찾아 왔고, 그 호황을 연장하기 위해 해외 생산규모를 늘리고 친환경 선박 기술력 제고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Tsuneishi조선은 일찌기 필리핀에 진출해 그룹의 주력 조선 기지로 급성장시켰다. 필리핀 조선소의 생산능력을 현재 20척에서 2016년까지 30척까지 확대하는 한편 2017년경 필리핀에 신규 조선소의 추가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소재 조선소도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Mitsui조선은 18만 DWT급 친환경 벌커를 개발하여 수주에 성공하고 있고 Kawasaki중공업(KHI)은 중국 내 합작투자 회사인 NACKS사(Nantong COSCO Kawasaki Shipbuilding)를 통해 LNG추진 자동차 운반선, 액화수소 운반선 등 첨단 기술을 사용한 선박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의 수송을 위한 LNG수송선 건조를 위해 Mitsubishi와 Imabari가 합작회사 MI LNG사를 설립했고 KHI, Mitsui 및 JMU(Japan Marine United)사 등도 공동전선을 계획하고 있다. Namura조선은 Sasebo조선을 합병하여 대형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20년’ 동안 투자를 등한히 한 결과, 인재 확보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본 국내에서의 조선산업은 아베노믹스의 혜택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울산을 위시해서 조선소가 위치한 도시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곳으로 자리잡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삶의 때깔이 달라 보인다. 조선소의 번영과 함께 나눈 풍요로움의 덕이다. 그런데 조선소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철딱서니 없다는 말을 들어도 변명하기가 옹색할 것 같다. 해운산업의 침체와 엔저 등 경쟁력의 약화로 그들 자신의 삶의 버팀목인 조선소가 생존을 위해 백척간두에 서있음을 뻔히 눈으로 확인하면서 파업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진흙바닥에서 맨손으로 조선소를 일구던 시절을, 연간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되지 않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오늘의 풍요를 이루기 위해 지나온 간난의 시절을,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의 수모를 받으며 세계시장을 개척하던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풍요가 하늘에서 하루 아침에 떨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시키면서 지키고 키워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초심을 잊는 순간 우리의 삶은 쉽사리 지난날 그 어려웠던 시절의 나락으로 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산업은 더 이상 변방의 삼류산업이 아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사소한 방심이나 실수도 감추어지지 않고 세계에 노출되어 앞으로의 시장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40여년간 많은 불황과 호황의 부침을 거쳐왔고 그 험한 물결을 슬기롭게 헤쳐왔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어려움은 우리가 반드시 헤쳐가야 할 많은 장애의 하나일 뿐이다. 모두가 몸담고 있는 이 성스런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경영자와 노조, 정책수립자 그리고 모든 관련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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