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② “피라미드, 폐쇄된 돌덩이 속의 쾌적함”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1994년 6월11일(토)

아내는 일찍 일어났다. 하루를 준비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도 깊은 잠에서 조금씩 깨어났다. 벌써 일곱 시였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부페 식당이었다. 닥치는 대로 먹어 두었다. “조반은 왕처럼” “점심은 부자가 먹듯이”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라는 건강 지킴이 명언을 우리는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이었다. 특히 다음에 어떤 식사가 기다릴지 모르는 여행 중에는 우선 주어진 음식을 많이 먹어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체득하고 있었다.

오전 8시 50분 아마니와 로비에서 만났다. 우리 둘과 이십대 후반의 여인 3명이 동행이었다.

첫 방문지는 이집트 국립박물관이었다. 전에 한번 들른 적이 있었으나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첫인상은 어수선하다는 것이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루부르박물관 등에 소장된 이집트 유물들은 귀족처럼 깨끗하고 품위있게 모셔져 있었지만, 이 이집트의 위대한 유산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좀 산만하게 먼지 속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나마 이 박물관이라도 있어 이 보물들의 국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관계자들에 대한 경의를 남겨 두었다. 또 안내자를 따라다니며 보면 볼수록 유물들의 아름다움과 깊은 역사적 의미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

1층은 고대 Egypt (기원전 2600년대) 유물들이 많았다. 단단한 규석이나 오석으로 된 왕들의 조상과 함께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목각들, 흙으로 빚은 조각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2층은 투텐카몬 (Tuten Khamon)의 유품들이 압도하고 있었다. 너무 휘황찬란해서 다른 유품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른 넓은 두 개의 방은 미이라로 채워져 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미이라에는 각각 X-Ray 투시 사진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뇌와 내장이 척출되었는지 설명되고 있었다. 죽은 뒤에도 안식하지 못하고 먼지와 소음에 노출되어 있는 그 고귀한 분들의 주검이 딱했고, 아무렇게나 다룬 주검 자체가 보기 싫어 안내자가 반도 지나가기 전 나는 방을 나와버렸다. 그 거대한 역사를, 그 역사의 발자취를 한 시간 반 만에 돌아 보았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로 가자는 것이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끌려 다니는 코 꿴 소처럼 끌려 나왔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Sala Al-Din Citadal 혹은 Mohamed Ali Mosque으로 불리는 회교 사원이었다. 19세기 중엽에 지은 건물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동화 속에 나오는 아라비아 왕자님 궁궐 같았다. 밖에서 볼 때 꽉꽉 닫힌 구조였는데 성곽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서정적인 장식들이 넓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집트의 깊은 종교적인 전통과 건축기술 그리고 그 사회가 가진 경제적 여유가 이런 건물을 만드는구나 하였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드러낸 여인들은 무엇이건 뒤집어써서 어깨를 가려야 했다. 한쪽에서는 종교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그 어두운 평화스런 공간에서 안내자는 낮은 목소리로 사원의 유래를 설명했지만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어두워서 답답했다. 안내자가 일어서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살라 알딘 사원

오후 1시 파피루스 가게에 들렀다. 앉자마자 청량음료가 나왔고 제품설명을 들어야 했다. 전혀 흥미가 없었고 살 의사도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협조자가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여인들이었다. 그 중 두 명은 에콰도르에서 온 초등학교 교사였다. 우리에게 아들이 두 명 있다고 하자 서슴치 않고 그들을 며느리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장난 삼아 하는 이야기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해졌다. 파피루스 장사꾼의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들의 자기소개를 계속하며 며느리타령이었다. 예쁜 여인들이 밝은 자태로 며느리를 자원하는 재잘거림을 듣는다는 것이 제법 신선한 즐거움이 되었다.

피라미드 내부 통로

3시에 드디어 기자의 피라미드(Gizeh Pyramid)를 방문. 기원전 26세기경 건조되었다고 하니 4500여년 전에 지은 건축물이다. 큰 두 개의 피라미드는 그 높이가 150미터, 밑바닥 정사각형 한 변의 길이가 230미터라 했다. 옆에 있는 작은 것은 높이 65미터라고 했다. 네모나게 돌을 깎아 쌓아 올린 뒤 화장석으로 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꼭대기에는 황금으로 만든 피라미드 석이 놓여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화장석은 거의 떨어져 나가고 돌들은 풍화되고 보물들은 약탈당해 꺼칠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한 덩어리의 무게가 2톤에서 5톤이나 나가는 사각형으로 깎은 돌로 전체무게 5900만 톤의 피라미드를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석관

무덤 방으로 올라가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Yes였다. 가파른 좁은 통로를 올라 긴 회랑을 지나니 그 끝에 파라오의 무덤 방이 있었다. 피라미드의 무게중심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지구의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고 시간적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곳에 생물을 놓아 두어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 방에는 무거운 화광암 석관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그 텅빈 방의 벽에는 이집트 고분 발굴의 권위자, 이태리인의 이름이 엉성한 필기체로 저주처럼 적혀 있었다. 몇 세기 전 처음 이 방으로 찾아 들어갔던 사람들의 기록에도 보물은 이미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따라서 이방은 도굴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가짜 방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럼 진짜 왕의 방은 어디 있을까. 이 무지막지하게 크고 넓은 돌 무덤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고 하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폐쇄된 돌덩어리 속 좁은 질식할 것 같은 공간은 오히려 쾌적했다. 자연 통풍이 되고 있는 것일까.

피라미드의 그 압도적인 크기와 무게로부터 벗어나 스핑크스 앞에 섰다. 죽은 사람들의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60미터 길이에 20미터 높이를 지녔다는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무덤의 주인인 카프레 왕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피라미드가 다듬은 돌들로 쌓아 올린 것인데 비해 스핑크스는 거대한 하나의 자연석을 깎아 만들었다고 했다. 사막에 부는 거친 모래 바람과 뜨거운 태양열, 그리고 사람들의 인위적인 훼손으로 수호신의 모습도 많이 훼손되어, 옛날 그 성물이 얼마나 수호신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었었는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얼굴이 깎인 멍청한 돌덩어리였다. 5000여 년 전 그 거대한 돌들을 옮기고 다듬고 제자리에 놓고 쌓아 올렸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건설 당시 피라미드까지 물길이 들어와서 무거운 돌의 수송에는 물의 힘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스핑크스의 옆으로 피라미드와 연결되는 장의절차를 위한 통로에도 들어가 보았다. 복잡한 장의절차가 설명되었으나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 모래 위에서 지내고 나자 안내원은 우리를 그의 차에 싣고 쏜살같이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이집트 향수가게였다. 관광해야 할 곳에 한 시간 머물면 가게에 가서 30분은 보내야 했다. 너무하다 싶었지만 우선 시원한 펩시콜라 한잔씩은 공짜로 주니 시원한 가게에서 편히 앉아 판매원의 판촉활동을 보아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며느리 지원자들의 재롱때문에 가게 방문이 마냥 따분하지만은 않았다.

오늘의 일정이 끝날 때쯤 해서 안내원은 내일의 일정을 설명했다. 내일은 알렉산드리아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아내와 의논 후 곧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는 가지 않는다. 카이로에 남아서 박물관을 더 보겠다.” 알렉산드리아에 하루 종일 끌려 다니며 옛 시가지나 보고 다니는 것 보다는 투탄카몬과 더 긴 시간을 같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Nile Cruise를 위해 몸과 마음을 가누어 둘 필요도 있었다. 안내자는 못마땅하게 그러라고 했지만 며누리 지원자들의 섭섭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카이로 여행이 끝나면 귀국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서로 엉성하게 주소를 주고 받고는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오니 여섯 시였다

셰라톤 호텔은 나일강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의 남쪽에 기자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어 호텔방에서 피라미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자는 말했지만 모래 바람 때문인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호텔 밖 작은 다리를 지나면 Cairo Tower가 있는 Gezira 섬이 있고 거기서 다리 하나를 더 지나면 Cairo Museum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잠깐 쉰 뒤 밖으로 나섰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일강. 카세르 엘 나일교 에서

우선 나일강을 보고 싶었다. 천천히 작은 다리를 지나서 Opera House를 지나 Tahrir 다리에 섰다.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물을 지닌 강이 흐르는 듯 아닌 듯 거기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6,671km 라고 적혀 있었다. 탄자니아로부터 발원한 뒤 빅토리아호를 거쳐 수단, 에디오피아를 지나며 수많은 지류를 흡수해서 그 유역면적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것은 사막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수량을 유지하고 적절한 시기에 범람하여 유역을 비옥하게 했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류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지치지도 않고 그 푸른 물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집트의 역사를 생각하며 인류의 삶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하였다.

“형님(Brother).”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순하게 생긴 작달막한 이십대 후반의 사내였다. 나는 웃어 보였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 “남쪽, 북쪽?” “남쪽.” 그는 어눌한 영어로 우리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이집트에 대한 인상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가졌고 또 앞으로도 그러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그 친구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이 근처에 한국식당이 있나?”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하나 생각난다면서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데 찾아갈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는 어느새 가방을 열고는 도굴품의 모조품들을 이것저것 꺼내더니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고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물건을 살 줄도 모르고 아예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자네는 참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구만. 그런데 우리는 빠듯한 일정으로 빠듯한 예산으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이번엔 살 수가 없겠어. 언제 다음날 올 때 하나 사 줄께.” 그 친구는 그러라고 하더니 미련없이 사라졌다.

그를 보내고 우리는 한참 동안 강물을 내려다 보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고단하기도 하고 식당을 찾아 다닐 자신이 없어 방에서 룸 서비스로 간단히 저녁을 챙기고 목욕 후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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