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나일강기행] ① “일생을 꿈꿔 온 여정”

*’황성혁의 조선(造船)삼국지’와 ‘인도기행’, ‘조선사(造船史)’를 연재했던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가 이번에는 이집트 ‘나일강’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흘러 내리며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나일강은 20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시아엔(The AsiaN)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포세도니아 (Posidonia) 박람회에서

1994년 6월10일(금)

저녁 7시50분 아테네 공항에서 카이로행 OA325기에 올랐다. 6월 5일부터 아테네에서 포세도니아(Posidonia) 박람회를 끝낸 다음이었다. 세계 2대 조선해운 박람회 중의 하나로 짝수 해에는 아테네에서, 홀수 해에는 오슬로에서 열렸다. 오슬로의 Norshipping이 개인적인 만남을 주로 하는 것인가 하면, 아테네의 것은 에게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넘치는 태양의 열기에 맞게 파티와 축제가 중심이었다. 한국 조선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자리에 오르면서 한국 기업들의 참여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도 한국 참여자에게 모아졌다.

가능한 한 많은 축제에 참석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능한 한 많은 전시품을 구경하여, 먼 길을 온 본전을 뽑고자 했었다. 명함 두통이 텅 비고 일년 동안 마실 포도주를 며칠 사이에 소비한 뒤 Posidonia는 끝났다.

포세도니아 (Posidonia) 박람회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 아내의 동행을 허락 받는 것도 한 절차가 되었다. 큰 회사의 중역으로 재직할 일 때는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혼자 다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작은 사무실을 스스로 꾸려 나가는 경우, 외국 나갈 때 아내의 동행이 필수였다. 관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산한 남편 곁에 서서 외국인들 만나고 발이 부르트도록 전시장을 따라다닌다는 것이 아내에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해마다 치르는 연례적 행사여서 새로운 맛도 떨어졌다. 그때마다 아내는 한마디 시비를 건다. “그 다음은 어딘데.” 포세도니아 행사를 끝낸 뒤 어디를 갈 것이냐는 것이다. 나는 큰맘 먹고 약속을 했다. “이번에 나일강 크루즈(Nile Cruise)를 해 볼까”

Nile Cruise는 영국사람들로부터 두고두고 추천된 여정이었다. 그것을 그들은 “일생의 꿈의 여정 (Voyage of life time dream)”이라고 불렀다. 이집트 국영관광공사에 알아 보았더니 개인당 800불이라고 했다. 카이로 도착해서부터 떠날 때까지의 7박7일간의 여정이었다. 큰맘 먹고 결정을 하였다. 대기업에 몸담고 있을 때 세계에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으시대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개미들이 땅만 보고 기어 다니듯 업무만 따라 다니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회의에서 회의로 뛰어 다니는 숨막히는 일정이었다. 전혀 여행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다짐을 했었다. “아내와 함께 다닐 때를 위해 진짜 여행은 미루어 두자.” 대기업을 떠난 뒤 누리는 가장 큰 호사가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이 되었다.

이집트는 그 동안 몇 번 왕래를 하였으나 하루 이틀 업무여행이었고 피라미드도 제대로 가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갔던 것이 1979년 10월 말이었다. 런던 지점장으로서 한국에서 온 은행관계자들과 이집트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도착하던 다음날 런던으로 귀임하여야 했다. 박대통령이 서거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출국 수속대에 섰는데 점잖게 생긴 여권담당자가 “남쪽이요, 북쪽이요”라고 물었다. 여권만 열어 보면 알수 있는 일인데 가는데 마다 심술부리듯 꼭 물었다. 나는 의례적으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남.” 그는 스탬프를 쾅 찍으며 “그분은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He was good man).”이라고 말했다. 느닷없이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외국관리의 입에서 불쑥 나온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엉켜있던 막막한 감정의 한쪽 구석을 툭 틔워 주었던 것 같다. 이집트를 생각할 때마다 그 관리의 말이 기억되었다.

밤 10시50분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늦은 시간에 우리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한 젊은이가 웃으며 서 있었다. 아마니(Amany) 라는 이름이었다. 역시 관광이 외화벌이의 큰 몫을 하는 나라의 관광업 엘리트답게 내일의 일정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바로 호텔로 떠났다. 이집트의 외화벌이의 삼분의 일이 관광 수입이고 삼분의 일이 외국에 나간 일군들의 송금, 나머지 삼분의 일이 스웨즈 운하 수입과 자원 수출 대금 등이라고 하였다. Cairo Sheraton에 도착했을 때 자정이 훨씬 넘었다. 내일 아침 8시 50분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카이로 근처 관광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목욕하고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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