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造船삼국지] 영광이여 다시 한 번

무역 1조 달러 시대 ②

“그냥 준다면 몰라도 그렇게 아양을 떨 수야 없지” 그런 생각이었다. 나이 칠십에 무슨 훈장이냐는 생각도 있었다. 더구나 연말에 나는 할 일이 많았다.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전화에 처음에는 짜증도 났었다. 하지만 차츰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의 열성이 내게 전염되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로 마음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무역 1조 달러 달성이라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1964년 가을 남대문 옆 상공회의소를 지날 때마다 그 지붕에서 빛나던 수출 1억 달러 카운트다운 네온사인을 가슴 조이며 지켜보던 우리였다. 1억 달러가 달성되던 그해 11월 말 나라는 온통 축제였다. 그런데 이번엔 수출입 합쳐 1조 달러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아홉 나라 밖에 올라서지 못한 그 봉우리에 이 작고 늦게 시작한 나라가 우뚝 선다는 것이다. 거기에 조선공업이 큰 기여를 하였고 그와 관련된 던컨이 최고의 훈장을 탄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그날의 축제를 설명하면서 내가 아홉 명의 영웅 중 한 사람 역할을 해줘야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건 어떤 역할이건 나는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보통 때 같으면 거절했을 일을 나는 다 받아들였다. 나는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무역협회에서 백스크린에 넣을 영상을 만들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내 사무실에서였다. 30초 남짓 영상을 찍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단지 “한 해에 200일 이상을 해외에 머물면서 세계는 제 집이었고 일터였습니다. 지금 세계 1위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한국의 조선 산업은 국민의 자랑거리이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 효자산업이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좀 엄숙한 표정으로도 찍고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찍었다. 아주 여러 번 찍었다.

KBS에서도 영상을 만들어갔다. 시상식 날 9시뉴스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역시 던컨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의 인간적인 면을, 한국과 한국 사람을 좋아하던 모습을 이야기했으나 그들은 그가 컨테이너 운반선 입찰과정에서 상대방 가격을 우리에게 몰래 알려준 일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좋았고 반가웠다.

<사진제공=황화상사>

12월12일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동네 목욕탕부터 다녀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발은 전날 해두었다. 월요일에는 이발관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나 내일 좋은 일 하러 가거든. 예쁘게 깎아줘요.” 그리고 잠이 들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이발관 주인이 “예술품 완성되었습니다” 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을 언제나 예술가로 불렀다. 잠이 덜 깬 눈으로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 얼굴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하얗던 옆머리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썹까지 새치가 사라졌다. 주인은 히죽거렸다.

“중요한 일이 있으신 것 같아서 약간만 손질을 했습니다. 염색한 것은 아니고요. 한 보름은 갈 겁니다.” 월요일, 목욕 후 반짝거리는 새까만 머리로 출근을 하였다. 행사는 오후 6시부터 시작이었지만 4시까지 와서 사전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것이 3시로 당겨졌다. 오후 3시 무역회관 행사장에 도착했다. 참석자들에게 비표를 나누어주는 데스크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무역협회 담당자들이 더 빨랐다. “황사장님이시죠? 영상물을 하도 많이 봐서 낯이 익습니다. 저기 편한 곳에 가 계시죠. 저희들이 비표와 준비물들 찾아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1960년대 가발 섬유, 1970년대 조선 자동차

그래서 좀 멀찍이 서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번잡한 일들을 여유를 갖고 바라다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의 참석은 모든 사람을 긴장시키고 부산을 떨게 하지만 어찌 보면 묘한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곧 연습이 시작되었다. ‘무역세대 소통 한마당’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아홉 명의 늙은 영웅들이 세 명씩 입장한다. 1960년대의 가발, 섬유산업 등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먼저 행진해 들어가고, 1970년대의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 영웅이 들어가고, 이어 최근의 정보통신산업 역군이 따라 들어가는 순서였다.

행사를 이끄는 여자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몇 번을 붉은 카펫 위를 걸었고 배경 영상에서 영국 돼지처럼 통통하게 클로즈업 된 내 얼굴을 보았다. 비장한 목소리로 “200일 이상을 해외에 머물면서…”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 밑에 ‘지난 40년간 국내 최고 선박 세일즈맨으로 세계무대를 누벼온 선박수출 영업의 선구자, 황화상사 황성혁 대표이사’란 자막이 붙어 있었다.

오며가며 행사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들의 노고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미 있는 행사에 아름다운 진행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번에 하위급 훈장이어서 미안합니다. 다음 기회에는 좀 더 나은 것을 마련하겠습니다.” 나는 펄쩍 뛰었다. “일흔 넘은 노인에게 석탑훈장이면 너무 고맙지요. 게다가 대기업에서 떠난 지 20년도 넘은 개인입니다. 또 내가 던컨에게 금탑산업훈장을 타도록 도왔고 자신도 석탑을 탔으니 이보다 더 큰 훈장이 어디 있겠어요. 다 좋은 나라에 태어난 덕이고 생각 깊은 분들 만난 덕이지요.”

연습하는 동안 잠깐 짬을 내어 앤드류 던칸을 만났다. 아버지 잭 던컨을 많이 닮았지만 훨씬 더 내성적이었다. “당신이 던칸이지?” 그는 약간 멈칫하며 의심스런 눈길을 내게 보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훨씬 밝고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반색을 했다.

“아, 당신이 Mr. Jock이군요.” 내가 처음 발을 디딘 외국이 스코틀랜드여서 처음 내 영어에는 스코틀랜드 억양이 있었고 내 영국 친구들은 그곳 사람들의 별칭인 Jock라는 별명을 내게 붙여 놓았었다. 내 책에도 그 이야기가 나와 있었고 그녀가 그것을 읽었던 것이다.

“바로 나요.” 나는 그들 옆에 앉았다. “당신 아버지는 아들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딸 이야기는 자주 했지만.” “그래요. 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아니었어요.”

그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수줍게 털어놓았다.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배를 탔어요. 그래서 집에서 떠나 있었죠. 지금은 포트 글래스고에 있는 항만청에 근무하고 있지요.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그의 아버지 잭 던컨을 마지막 만난 것은 1980년 말 런던에서였다. 그 한 달 뒤쯤 그의 부음을 들었다. 그 뒤로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이번에 한국정부는 맨체스터 경찰청에까지 조회를 해서 아들 앤드류 던컨을 찾아냈다고 했다. 내가 앉았던 자리는 시간이 되면 대통령이 앉을 자리여서 나는 내 책 한 권에 서명을 해서 남겨 놓고 일어났다.

“오늘 당신이 주인공이야. 마음껏 즐기세요.” 그의 부인이 대답을 도맡아 했다. “또 봐요.”

*<무역 1조 달러 시대 ③>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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