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造船삼국지] 특명 “잭 던컨을 찾아라”

AsiaN에 [황성혁의 造船삼국지]를 연재하고 있는 황성혁 황화상사 대표가 2011년 12월12일 한국이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연 것을 계기로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가 당일 함께 수훈한 故 잭 던컨, 이탈디자인 지오르게토 주지아로 대표,?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등에 대한 인상을 보내왔다. AsiaN은 이를 4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2월12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고 있는 황성혁 대표<사진=황화상사 제공>

무역 1조 달러 시대 ①

2011년, 작년은 바쁜 한 해였다.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가 침체되어 모든 조선소들이 일감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출중한 성과를 올리고 있던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도 수주는 만족스런 수준에 이르렀지만 이익률이 크게 떨어졌고, 해운회사들은 모두 적자로 전환되었다. 일본과 중국의 많은 조선소들은 문 닫기 직전으로 몰리고, 한국의 중소 조선소들도 생존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틈새시장을 잘 관리해온 덕으로 우리는 바쁘고 알찬 한해를 보내고 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는 특히 바빴다. 12월9일 오후 3시, 나는 울산 가는 KTX 기차를 탔다. 그리스 선주가 짓고 있는 배의 착공식(Keel Laying Ceremony)을 보고 선주대표들, 조선소 간부들과 저녁을 같이하며 단합대회를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선박시장은 살얼음판 같다. 가격이 싸다 싶어 계약을 하면 계약하기 무섭게 선가는 더욱 떨어졌고 금융은 점점 어려워졌다. 선주는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조선소에 하자를 걸어 계약을 취소하고 떠날 생각만 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그 선주는 그때까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지만 전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선박의 건조공정이나 설계진행의 고비마다 마찰이 없도록, 불필요한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했다. 선박중개업을 시작한 뒤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기차가 서울역을 빠져 나가고 역내방송이 객실 내에서의 전화기 사용에 관해 주의를 알리기 무섭게 내 ‘고전적인’ 휴대전화기는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주요 일간지와 2개의 경제지가 다투어 가며 전화를 걸어 왔다. 모두 며칠 뒤인 12일 있을 ‘무역 1조 달러 달성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타기로 되어 있는 잭 던컨(Jack Duncan)에 관한 질문이었다.

내가 십여 년 전에 썼던 한국 조선공업 초창기의 이야기 <넘지 못할 벽은 없다>로 시작되었다. 그 책의 서른 개 이야기 중 하나인 ‘잭 던컨’ 이야기를 읽은 뒤 좀 더 덧붙일 이야기를 찾으러 걸어온 전화들이었다. 하나같이 그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했기에 한국의 무역 1조 달러 달성이라는 거대한 금자탑 앞에서 찬란한 금탑산업훈장을 타게 되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한국과 한국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초기 한국조선공업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자신감을 심어준 사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자들은 이미 책을 읽었고 시상기관으로부터 그의 공적을 들은 뒤여서 기사는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작성되어 있었다.

넘지 못할 벽은 없다

대부분의 기사는 그가 “현대중공업의 기술고문으로 초빙되어 초창기 조선공업의 발전을 도왔다”는 것으로 이미 작성되어 있었다. 그가 현대의 기술고문이 아니고 단지 아랍연합해운 (UASC) 회사의 기술담당 이사였다는 사실을 설명해 보아야 그들의 귀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결국 “그런 직급이 낮은 사람, 특히 돌아가신 유공자를 찾아 그 후손에게 훈장을 준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옛 친구에게 보이는 우정과 관대함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이고, 세계의 모든 조선 관계자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야기를 끝냈다. 그들도 토요일판 신문의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조급했다. 시작도 급했지만 이야기의 종결도 서둘렀다. 마지막 경제지와의 인터뷰까지 끝냈을 때 내 휴대용 전화기 배터리는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그것은 8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현대중공업의 홍보담당이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은 한국의 조선공업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외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무역의 날’에 외국인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주려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줄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현대중공업의 초대사장이었던 컷 쇼(Curt Shou)와 첫 선주인 조지 리바노스(Georges Livanos) 회장이 거론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조선소 시작과 함께 했던 외국의 기술자들로 옮겨가더니 결국 잭 던컨과 턴벌(Turnbull)로 좁혀졌고, 그 모든 것은 잭 던컨을 확정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명의 전 현대중공업 사장도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는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데 이것 하나는 모르겠다는 어조로 던컨의 옛 이야기와 그의 근황이나 가족의 소재를 지금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현대중공업만이 아니었다. 조선공업협회와 무역협회에서도 같은 전화가 계속되었고 무역의 날이 가까워지면서 지식경제부 관계자들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모두 더 높은 곳으로부터 재촉을 받고 있었다. 수십 번의 전화를 받았다. 백 번이 넘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질문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들도 좀 겸연쩍어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라 확실히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계속 전화를 드립니다”라고들 했다. 위가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같은 변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한국 조선업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즐겁게 협조하겠다는 것이 나의 확실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우리들의 든든한 친구였던 던컨에 관한 일이어서 일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졌다.

담당자는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사장님도 서훈이 내정되어 있습니다. 서훈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만 거의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다. 훈장을 타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가까운 사람을 여럿 보아왔었다. 스스로 과장된 공적서를 꾸미고 주변 관련기관으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등 자신도 분주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상당히 번거롭게 했었다. 나는 공적서 한 줄 쓴 적도 없었고 그렇게 설치는 것이 낯간지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역 1조 달러 시대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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