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인도기행] ④ 타지마할에 앞서 들러야 할 곳들


1998. 11. 9. (월) Agra

깊은 잠에서 깨어나며 라비 메호트라(Ravi Mehrotra)씨의 결혼식을 생각했다. 오랜 전 일 같았다. 이 곳이 타지마할(Taji Mahal)이 위치한 아그라(Agra)이며, 우리가 정한 일정에 따라 인도의 역사와 생활과 문화를 접하는 첫째 날이란 설렘으로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和는 벌써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내도 꿈속에 그리던 곳이었다. 和의 배탈은 좀 나아졌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를 톨톨 털어 끓여 먹었다.

9시 네루 수상을 닮은 세트(Seth)라는 인도 국립관광공사 지정 안내사가 호텔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0대 초반의 경험 많고 말수도 적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차에 타고는 내가 “여기서 타지마할까지는 얼마나 걸리죠”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타지마할에는 가지 않아요” 아니 타지마할에 가지 않는다니. 우리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직 타지마할에서 하루 종일 지내며 구석구석을 보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그라 주변의 유적을 보고 내일 아침 일찍 아그라를 보는 일정입니다.” 딱 한마디였다.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베이비 타지마할(Baby Taji Mahal)’이라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Itimad-ud-Daula)’의 무덤이 첫번째 방문지였다. 무굴(Mogul) 왕국의 전성기를 열어나간 악바르(Akbar)왕의 아들인 자한기르(Jahangir)의 왕비이며 실질적인 국가의 통치자였던 누르마할(Nur Mahal)이 국무총리였던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건설한 무덤이었다. 줌머(Jumma) 강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온통 흰 대리석에 옥돌 무늬를 박아 놓았다. 페르시아의 양식이 무굴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진화되는 과정의 건물이라 했다. 왕비가 그녀 가족의 위세를 다해 축조한 건축물이어서 정원과 물 그리고 분수까지가 하나의 완벽한 조화를 갖춘 값비싼 유물이었다. 그때 자리잡아가던 무굴 왕조의 국력을 국민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작업 같기도 했다.

세트(Seth)는 온갖 겸손을 다 떨면서도, 관광의 시간표, 지나가는 길에 대해서는 폭군적으로 군림했다. 어느 곳에서는 몇 분 머물고, 정확하게 무엇과 무엇을 보아야 하고, 심지어는 사진 찍는 장소까지 정해줬다. 물론 그 장소는 사진 찍기에 기가 막히도록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습기가 낮은 따뜻한 햇볕 아래서 대리석 건축과 정원은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관광객도 적어 한적한 고궁에 산책이나 나온 듯 和와 함께 묘역을 한 바퀴 돌며 그곳에서 500년을 함께한 맛있는 인도의 공기를 즐겼다. 흰 대리석과 대칭적 구조물에 약간 지루해졌을 때 세트(Seth)는 마치 우리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기라도 했다는 듯 조용조용히 앞장서 자동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움직이지 않아 ‘붉은 요새(Red Fort)’로 들어섰다. 16세기 중엽에 악바르(Akbar)왕이 지었으나 뒷날 그의 손자 샤 자한(Shah Jahan)이 많이 고쳤다는 왕성이었다. ‘베이비 타지마할’이 작은묘역이라면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대한 활동공간이었다. 건축구조도 달랐지만 건축자재도 달랐다. 묘역은 흰색 대리석이었지만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흔한 사암(Sand Stone)이었다. 높이 7~8미터 됨직한 높은 이중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성문은 그 위압적인 성벽 사이를 한참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자한기르 마할(Jahangir Mahal)이라는 궁전은 궁형(Arch)이 많이 적용되지 않은 약간 산만한 초기 무굴의 건축양식이었다. 줌머 강변의 전망 좋은 거주 공간과 성벽이 혼재하는 공간에는 악바르 왕의 무굴 초기 덜 정돈된 건축물과 샤 자한의 아주 세련된 후기 무굴양식의 건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궁전의 테라스에 앉았다. 내일 방문할 타지마할이 좀 원망하는 듯한 모습으로 넓고 얕은 강 저쪽에서 아스라히 앉아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세트(Seth)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타지마할에 대해 안달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붉은 성벽 사이로, 궁전 안의 정원과 분수 사이로 어정거리며 강변 테라스에 앉아 타지마할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 동안 세트(Seth)는 어느새 우리를 자동차로 이끌어갔다.

호텔로 돌아와 인도 특유의 점심을 골라먹었다. 和의 배탈도 나아져서 처음으로 탄두르 치킨과 난을 시켜먹었다. 벌겋게 달궈놓은 도가니 속에 양념을 한 닭을 매달아 뼈 속까지 익힌 인도 특유의 맛갈나는 음식이었다. 거기에 바짝 말랐지만 고소한 빵 ‘난’과 함께 먹는 맛은 아주 좋았다. “맛있다 맛있다” 그 동안 굶었던 아내도 맛있게 먹었다.

2시 정각 세트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이제 빠테뿌르 시크리(Patepur Sikri)로 갑니다.” 거의 30분 이상 차를 타고 갔다. 악바르 왕조의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나타낸 무굴 초기 도시라고 했다. 악바르 왕의 후계자인 자한기르의 탄생을 정확하게 예언한 살림 치슈티(Salim Chishti)를 위해 4년 동안에 지은 도시라고 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레드포트(Red Fort)로 수도를 옮기게 되어 폐허가 되었다고 했다.

악바르왕의 집무실, 접견실들이 잡다하게 설명되었으나 아침에 벌써 두 군데나 비슷한 곳을 들른 나그네의 눈에는 별로 특별한 게 없었다. 아름다운 대리석 석관들이 있었고 곳곳에 성루와 정원, 조그만 인공 호수들이 있었다. 아내가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세트는 어느새 사진기를 손으로 막고 그녀를 ‘촬영장’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대부분 위가 궁형으로 되어있는 문 뒤에서 찍었다. 거기서 보면 트인 공간에서 보는 것보다 대상이 더 도드라져 보이고 사진틀 속에든 선택된 풍경으로 되는 것이었다.

그 넓은 도시 같은 궁전을 돌아 보는동안 장장용(Jiang Jang Yong) 부부와 가는 곳마다 마주치며 목례를 나누었다. 라비 메로트라(Ravi Mehrotra)씨가 상해에서 연 인도음식점의 현지 사장으로 이번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우리처럼 아그라를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메로트라씨는 상하이의 인도음식점이 그의 생애에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했었다. 중국에서 외래 음식점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장 사장의 부드러운 인품이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여겨졌다. 돌아오는 길 세트는 강변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 보는 타지마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멀리 석양에 비친 붉으스레한 타지마할은 꿈처럼 떠 있었다.

5시 반쯤 호텔로 돌아왔다. Seth가 간단히 이야기하였다. “내일은 6시15분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타지마할은 여기서 가깝습니다. 11시5분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4시간 동안 타지마할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주무십시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는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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