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인도기행] ⑨ ‘브라만은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아’
1998. 11. 12. (목) 부다가야(Bodhi Gaya) ? 네란자라강(Niranjara River)
일찍 일어나 목욕 후 6시에 다시 마하 보디 사원(Maha Bodhi Temple)을 찾았다. 우선 금강보좌부터 찾았다. 사람들이 적어서 공간이 널찍했다. 108배를 하였다. 보리수 관리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1불을 주었다. 그는 보리수 꽃술과 열매를 한웅큼 和의 손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가 달라고 해서 돈을 준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달라고 해서 보리수 열매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무언가를 나누고 싶었다. 금강보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 같았다.
경배 길을 한 바퀴 돌고 사끄라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대탑을 세 바퀴 돌았다. 성불하신 후 남기셨다는 발자국도 보고 오체투지로 절을 계속하는 티베트 스님곁에 서 있기도 했다. 그리고 길가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부처님과 우리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옛날 중생들은 부처님을 뵙는 순간 아라한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 이곳에 오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내 마음은 가벼워졌었다. 여기 발을 딛는 순간 몸까지 깨끗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없이 자주 왔던 곳 같았다. 오래오래 살던 곳 같았다.
절을 나서는 길에 커다란 흰 자연석 하나를 보았다. 거기는 영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브라만은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어느 경전에 쓰여져 있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혁명적 가르침이었다. 힌두교를 기존의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쓰고 있던 인도의 고대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직설적 거부였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 발붙이지 못했던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이집트에서 전래된 종교이다”라고 까지 전해지지 않았던가.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 9시 호텔을 떠났다. 또 떠나는 것이다.
싱(Singh)은 바로 곁에 일본 사람들이 큰 돈을 들여 지은 절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곳에 들른 것을 후회했다. 오직 돈 냄새로 가득한 너무나 시장바닥 같은 곳이었다. 마하 보디 사원(Maha Bodhi Temple) 대탑과 금강보좌로 씻은 마음에 때가 끼일 것 같아 얼른 떠났다.
싱(Singh)은 차를 북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나는 싱(Singh)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싱(Singh) 한번만 더 대탑을 볼 수 없을까” 그는 선선히 차를 돌렸다.
떠나기가 싫었다. 붉은 승복, 노란 승복, 회색 승복의 순례객들과 수많은 중생들이 여러 색깔의 깃발을 앞세우고 성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탑을 한 바퀴 돌고 경배로를 한 바퀴 돌고 금강보좌에 들렀다. 관리인은 아주 부드러운 빗자루로 보리수 밑둥의 언덕을 끊임없이 정성스레 쓸고 있었다. 또 108배를 한다고 할 수는 없어 3배만 하고 관리인에게 10불을 주었다. 그는 보리수의 성스러운 유품을 한 주먹 아내의 손가방에 넣어 주었다. 우리는 합장으로 인사를 나눴다. 떠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진짜 떠날 때가 되었다. 싱(Singh)은 부다가야(Bodhi Gaya) 시내를 떠나 메마른 강 위에 걸린 세멘트 다리 앞에서 차를 세웠다. 네란자라(Niranjara) 강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부처님은 이 강기슭 고행림에서 6년간 고행을 하였다. 씻지 않은 몸에는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이 되었다. 하루 대추 한 알로 견뎠다. 그마저 이틀이건 사흘이건 걸렀다. 머리 살갗은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다. 사지는 마치 갈대풀처럼 말랐고 정신은 몽롱했다. 그때 부처님은 그 고행하던 곳을 박차고 일어나 니란자라 강에 들어가 목욕하고 때를 말끔히 씻어 내었다. 강변에서 그 동네 촌장의 딸 수자따로부터 우유죽 공양을 받고 기력을 회복하여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 정좌했다. 그렇게 성불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혼자 감격을 하고 내려다 보고 있었지만 니란자라 강은 아무 특별한 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뒤에 약간의 숲을 지닌 모래 밭을 들어낸 얕은 개울일 뿐이었다. 보이는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