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인도기행] ⑤ ‘타지마할’…완벽한 균형, 단 하나만 빼고

1998. 11.10. (화) 아그라(Agra)-사르나트(Sarnath)

5시 반 짐을 꾸리고 내려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로비에서 꾸물럭거리고 있는데 세트(Seth)가 정확히 6시15분에 나타났다.

6시 반 타지마할(Taji Mahal)에 도착. 머리속이 하얘졌다. 和도 넋을 놓고 있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지어진 건물이며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전에 혼자 온 적이 있었다. 출장 길에 뉴델리에서 자동차로 왔다가 그날로 돌아가는 강행군이었다. “이것이 타지마할l이로구나” 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눈으로 보기보다 마음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이 기적 같은 인간의 성취를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다.

출입문 위에는 하늘로 자라나는 듯한 11개의 버섯모양 대리석 궁형 정자가 있었다. 출입문의 안과 밖은 해탈낙원과 사바세계 같았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세상의 잡다와 단절된다. 궁상맞은 흥정도 요란스런 다툼도 아부도 오만도 없다. 갑자기 활짝 열린 아침 연무 속에 천년이 하루 같은 인도의 아스라한 공기가 거기 있었다.

수줍은 듯 뽀얀 타지마할 모습이 어렴풋이 떠 있었다. 열 몇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왕비 뭄타즈(Mumtaz)를 위해 지은 무덤이라는 것, 세계 여인네들의 꿈이 이런 사랑을 받아보는 것, 죽은 뒤 이런 보답을 받아보는 것 아니겠느냐는 세트(Seth)의 입에 발린 말은 귓가로 건성 지나갔다. 내게 이것은 샤 자한(Shah Jahan)의 식지 않는 성취욕의 표현으로 보였다. 뭄타즈(Mumtaz)의 요절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핑계가 아니었을까.

한 시간쯤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며 세트(Seth)의 설교를 귓가에서 흘려 보내고 나서 나는 아주 정중하게 제안했다. “Mr. Seth. 이제 충분히 설명은 들었다. 나는 지금부터 타지마할을 내 가슴으로 느끼고 싶다. 당신은 이런 일에 전문가니까 내 말을 이해하겠지. 지금부터 3시간 동안 우리는 마음껏 느끼고 보고 나서 10시15분까지 입구로 나가겠다. 거기서 보자. 괜찮겠지.” 그는 선선히 그러라고 하고는 휘적휘적 우리를 떠나갔다.

우리는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타지마할의 수많은 얼굴을 보았다. 드러난 것보다 감추어져 있는 것, 나무잎들 뒤에 가려져 있는것, 물에 꺼꾸로 비춰진 모습, 그리고 대리석 깊숙이 스며있는 샤 자한(Shah Jahan)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보려 하였다. 나무 뒤에 숨어 앉아 한참을 건너다 보다가, 물가 난간에 앉아 물에 비친 그 순백의 살결을 넋을 잃고 보았다. 그리고 건축물에 눈을 갖다 대고 그 세밀함을 읽었다.

그것은 균형 그 자체였다. 묘역 본관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연못, 편안한 정원 정원, 네 귀퉁이에 세워진 우아한 첨탑들, 옥돌로 상감된 아라베스크식 당초 무늬의 꽃들, 그리고 역시 검은 옥돌로 상감된 장대한 코란 경전이 한치의 오차 없는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마다 조각된 격자무늬의 통풍구조까지 완벽한 대칭이었다. 오래 보고 있으면 그 완벽함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22년간 하루 2만명의 인력이 동원된 공사였다. 페르시아로부터 공장이 불려 오고 이탈리아로부터 대리석을 실어 왔다. 페르시아, 터키, 사마르간트로 이어지는 회교의 건축양식이 힌두의 전통양식과 접목되고 심지어는 헬레니즘과 중국의 영향까지 받아들이며 단 하나의 건축물에서 세계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되었다.

샤 자한(Shah Jahan)은 뭄타즈(Mumtaz)를 위해 궁전을 지은 뒤 강 건너에 또 하나의 검은 타지마할을 지어 그의 사후 안식처로 삼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의 셋째 아들은 ‘전쟁광’ 혹은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아우랑제브(Aurangzeb)였다. 왕국의 영토를 넓히는 전쟁을 하던 중 돌아와 타지마할 하나로 이미 국가 재정을 거덜낸 아버지를 왕좌에서 몰아내고 ‘붉은 요새(Red Fort)’에 유폐시켰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가 거실로부터 타지마할을 건너다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했고 샤 자한(Shah Jahan)이 죽었을 때 아버지의 관을 어머니 옆에 놓아 주었다. 전체 타지마할에서 균형을 깨뜨린 단 하나의 요소로 남게 되었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역설적으로 “타지마할은 내게 실망스러운 존재”라고 했다. “해질녘의 타지마할은 그 대리석들이 적색, 오렌지, 황금색, 에메랄드 그린, 창백한 청색으로 빛난다. 해가 지면 수성과 금성등 온갖 별들이 황홀하게 그 위에 머문다. 그 이름다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으나 나는 그것에 부착된 과도한 수식과 그를 위해 지불된 엄청난 비용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다.”

그의 말을 이해는 하면서도, 나는 인간이 그만큼의 경비를 지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만한 걸작을 남긴 것도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0시15분쯤 세트(Seth)가 우리를 항상 따라다녔다는 것을?있었냐는 듯이 나타났다. 그의 재촉을 무시하고 우리는 관목 숲 뒤에 앉아 타지마할과의 헤어짐을 단 몇 분이라도 늦추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10달러를 주었다. 그는 고맙다거나 섭섭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등을 돌리더니 휑하니 멀어져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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