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인도기행] ⑧ ‘부다가야’…깨달음의 장소

1998. 11. 11. (수)

8시15분 바라나시(Vanarashi)를 떠나 부다가야(Bodhi Gaya)로 향했다. 성지 중의 성지. 부처님이 부처님이 되신 곳이었다.?이번 여행의 궁극적 목적지였다. 멀고 먼 길이었다.

신작로 한가운데 소 한 마리가 점잖게 서서 여유롭게 어정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차들이 숨을 죽이고 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가 그의 일을 마치고 천천히 움직인 뒤 그 많은 세속에 바쁜 자동차들이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낡은 화물차들이 줄을 지어 바쁠 것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싱(Singh)은 화물차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려 했지만 내가 말렸다. 버스는 지붕에 많은 사람들을 얹은 채 달리고 있었다. 차 속에 자리가 없어서라기보다 지붕에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지붕으로 올라 가는 것 같았다. 버스 속의 좁은 공간에서 시달리는 것보다 먼지를 뒤집어 쓰는 것이 더 시원하다는 것일까. 여덟 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나는 싱(Singh)이 편하도록 마음을 썼다. 화장실도 들르고 가끔 노점에 들러 차도 마시고 고적이 있으면 이곳 저곳 들르기도 했다. 해탈의 장소를 가기 전 사바세계를 있는 대로 경험하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16시45분 부다가야(Bodhi Gaya)에 도착해서 아스혹(Ashok) 호텔에 짐을 풀었다. 부처님께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우선 몸은 씻어야 했다. 바나라시에서 오는 동안 묻은 모든 먼지를 털어내고, 아니 인도에 도착해서부터 몸에 쌓인 땀과 냄새를 닦아 내고,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몸과 마음 속에 절은 오욕을 말끔히 씻어낸 뒤 부다가야 대탑을 찾아 나섰다. 마하 보디 사원(Maha Bodhi Temple)에 도착한 것은 17시30분이었다.

성지에 들어가기 전 대탑은 담 너머로 까마득히 솟아 있었다. 탑을 보자 和는 합장을 하고 절부터 했다. 절에 들어서면 우선 신발을 벗어야 했다. 50m 높이의 탑은 절 한가운데 있었다.

우선 돌고 싶은 대로 맨발로 탑돌이를 하였다. 아내는 지치지도 않고 무언가를 빌고 있었지만 내 머리에는 아무것도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내가 여기 있구나. 내가 여기 왔구나”만 불경 외듯 반복하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보좌(金剛寶座)를 찾았다. 오래된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가 자리잡고 있었다. 부처님은 거기서 깨달으셨다. “나는 알았다. 있는 대로 알았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기원전 589년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였다. 부처님이 그 위에서 성불하셨을 때 그 바위가 우리의 무릎 높이로 솟아올랐다고 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참배자들이 금 조각들을 눌러 붙여 지금은 그 돌이 거대한 황금덩어리 같았다.

보리수는 부처님 시절 보리수의 삼대 후손이라 하였다. 그 보리수의 가지를 받아 스리랑카에서 번성시켰고, 부다가야의 보리수가 수를 다한 뒤 스리랑카의 가지를 전지해서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밑둥치가 내 몸의 두 배쯤 되어 보였다. 금강보좌와 보리수를 아울러 장중한 울타리가 쳐졌고 제한된 숫자만큼의 참배객들만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금강보좌 앞에 섰다. 보좌 위에는 황금색 보료가 깔려 있었고 촛불과 붉은 연꽃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들어가면 서서 삼배를 하고 나오는데 우리는 그 울타리의 한쪽 구석으로 가서 108배를 천천히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 틈에서 우리는 눈 딱 감고 108배를 계속했다. 금강보좌를 관리하던 조그맣고 새카만 40대 관리인은 우리를 쫓아내기 보다 보호하는 편이었다. 그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막으며 우리가 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의 주된 일은 보리수 뿌리에 쌓아 올린 자그마한 흙 동산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빗자루로 정성스레 쓸어 보리수에서 떨어지는 모든 것을 모으고 있었다. 울타리 밖에는 떨어 진 보리수잎을 가져가지 말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108배를 끝내고 일어나 그에게 1불 정도되는 돈을 주었다. 그는 합장을 하고 우리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에서 보리수의 꽃술과 열매를 한 주먹 꺼내 和의 손가방에 넣어 주었다.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자리를 내줘야 했고 또 다른 곳도 둘러 보아야 했다.

부다가야 절에는 그 절의 둘레를 돌 수 있도록 경배로(敬拜路)가 두어길 높이로 마련되어 있었다. 절을 보호하고 있는 성 위에 길을 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합장을 하고 그 길을 돌았다. 한쪽으로는 티베트에서 온 스님들이 천천히 절을 하고 있었다. 티베트에서부터 삼보일배를 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절을 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충분한 매트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온몸을 땅에 대고 대탑을 향해 절을 계속하고 있었다. 천천히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부다가야를 방문한 그 행복을 절을 함으로서 지켜내려는 것 같았다.

경배로를 돌다가 사끄라 인공호수로 내려섰다.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호수의 한가운데 광배 대신 윗몸을 활짝 펼친 코브라를 등 뒤에 거느린 채 부처님이 조용히 앉아 있었고 몇 그루의 붉은 연꽃이 미소처럼 피어 있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7시 반이었다. 저녁을 8시에 먹고 또 우리는 망설였다. “한번 더 가볼까.” “아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갈까.” 쉬기로 했다. 고단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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