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의 인도기행] ⑥ ‘녹야원’의 사슴이야기
1998. 11.10. (화)
11시5분 아그라(Agra)를 떠난 비행기는 카주라호(Khajuraho)에 잠깐 기착한 뒤 12시50분 바나라시(Vanarasi) 공항에 도착했다. 싱(Singh)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바닥 같은 공항과 그 바깥 걸인들의 손을 적절히 물리치며 그는 우리를 그의 차로 안내했다. 차에 10여 분 앉아 있으니 그는 우리의 짐을 찾아와서 창 밖으로 확인시킨 뒤 트렁크에 실었다. 클락스(Clarks)호텔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방을 잡은 뒤 간단한 점심을 끝내자 바로 싱(Singh)이 찾아왔다. 영어를 제대로 하는 운전기사였다. 자동차는 역시 암바사도르(Ambassador, 인도 자동차)였다. 우리가 사흘간 의지할 보호구역이었다. 싱(Singh)도 떠들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안심이 되었다.
녹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싱(Singh)은 먼지 날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아무렇게나 버려진 듯한 팔각형 탑을 가리켰다. 딸린 건물도 없고 아무런 설명문도 없는 아주 밋밋한 붉은 벽돌 건축물이었다. 사르나트(Sarnath)의 차우카이디 스투파(Chaukaidi Stupa)라고 했다. 부처님이 부다 가야에서 성불하신 뒤 세상으로 내려와 최초의 제자를 만난 곳이라 하였다. 싱(Singh)이 제지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황량한 황토언덕 위에 세워진 초라한 탑을 돌았다. 여기가 그곳이구나.
부처님이 수행하시던 중 니란자라 강가에서 어느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받아 마셨다. 너무 수척해 몸이 더 이상 수행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가 그의 왕국을 떠날 때부터 같이 했던 동반 수행자 5명이 부처님이 파계를 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떠났다. 부처님이 성불한 뒤 그 불법을 중생에게 깨우쳐줄 일을 골똘히 생각하며 세상으로 나왔을 때 처음 만난 것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불교가 소중히 여기는 삼보(三寶) 불법승(佛法僧), 즉 부처님, 불법 그리고 스님 중 승가의 시작이었다. 6년간의 수행으로 이룬 불법이지만 가르치는데 45년이 걸린, 성불보다 훨씬 어려운 가르침의 시작이 여기였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여기서 승가의 장구한 흐름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도에서는 길가에 구르는 돌 한 덩어리, 떠도는 티끌 하나 까지도 성스런 인연을 담은 존재일 수밖에 없겠다.
나그네는 한곳에 애착을 둘 수 없다. 떠난다. 곳곳에 또 다른 예기치 못한 설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싱(Singh)은 우리를 사르나트(Sarnath) 고고학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부처님 상만 찾았다. 그의 육신에 관한 어떤 것도 만들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어느새 중생들은 부처님의 육신에, 부처님의 얼굴에, 부처님의 미소에 집착하고 있었다.
엄청난 수집품들이 약간 조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입구에 전시된 아쇼카왕의 네머리 석사자상이 눈에 익었다. 아쇼카 왕은 불교를 인도에 정착시킨 임금이면서 인도 역사상 가장 숭앙받는 군주였다. 아쇼카 왕국의 상징인 네머리 사자상은 오늘날 인도 화폐에서 인도의 상징물 중 가장 인도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5세기경 조성되었다는 불상은 그 앞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발길을 붙들어 두었다. 초전법륜상(初傳法輪像)이라 불리는 불상이었다. 성불하신 뒤의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반신크기의 전법륜이 광배 대신 등뒤에서 돌아가고 다섯명의 수행자가 사슴과 함께 부처님 발밑에서 말씀을 경청하고 있고 천사들이 전법륜에서 피리를 불어오는 균형잡힌 구원의 상이었다.
사르나트(Sarnath)의 녹야원은 고고학 박물관 곁에 있었다. 다섯시 반쯤 도착했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곳이었던가. 우리는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부처님이 다섯 명의 제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그의 불법을 가르치고 그의 불법이 망망한 세상으로 번져 나가도록 그 횃불을 든 곳이었다.
옛날 옛적 황금색 사슴 왕 니그로다가 천여 마리의 사슴과 함께 여기서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바나라시의 브라흐마닷 왕은 사슴고기를 좋아하여 이곳에서 항상 사냥을 하였다. 그때마다 사슴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우왕좌왕하며 서로 상처를 입혔다. 사슴 왕은 사슴들을 모아놓고 의논을 했다. 이토록 우왕좌왕하지 말고 차례를 정해 한 마리씩 당당하게 왕에게 가서 자기를 희생하기로 하였다. 녹야원에는 평화가 왔다. 어느 날 새끼를 밴 암사슴의 차례가 왔다. 니그로다는 암사슴을 대신해서 왕 앞에 나섰다.
“그대의 차례가 아니지 않은가?”
“암사슴은 새끼를 배었으니 나를 잡아 식욕을 채우시오.”
왕은 깊이 감동했다.
“지금부터 모든 사슴을 살려주리라.”
“다른 짐승들은요?”
“살려주리라.”
“하늘을 나는 짐승은요?”
“그들도 살려주리라.”
“물속의 고기들은요?”
“아아 니그로다여, 그대는 사람보다 더 자비롭구나!”
왕은 마침내 육식을 끊고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평화를 내렸다는 것이다. 니그로다는 부처님의 수많은 전생 중 하나였다고 했다. 부처님은 이곳을 다섯 명의 제자에게 최초의 법문을 내리는 곳으로 정했던 것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다메크 스투파가 웅장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내었다. 높이 43m, 지름 36m라고 했다. 초전법륜탑(初傳法輪塔)이라고 번역이 되었다. 처음 법을 전하는 바퀴를 돌린 탑이라는 뜻이다. 붉은 점토 벽돌로 지은 둥근 탑은 장식무늬 돌로 덮여 있었다고 했다. 점토 벽돌 부분은 원형대로 남아 있었으나 이교도들이 파괴해서 아름다운 무늬 돌들은 거의 떨어져 나가고 아주 작은 조각들만 붙어 있었다. 우리는 합장을 하고 끊임없이 탑을 돌았다. 和는 계속 불경을 외우고 있었지만 나는 아름다운 경관과 그 위에 서린 오랜 세월을 깊이깊이 반추하며 텅빈 마음으로 돌고 있었다.
탑돌이를 끝낸 뒤 풀밭으로 내려왔다. 나즈막한 관목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넓은 풀밭에는 붉은 법복을 입은 사람들, 회색 노랑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각각 그들의 동반자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앉아 조용히 부처님을 기리고 있었다. 우리도 한 관목 곁에서 붉은 탑과 초원과 지는 해를 보며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싱(Singh)도 갈 길을 보채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질 때쯤 해서 탑 근처 새로 지은 절에 들어섰다. 약간의 일본 돈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흰 화강암을 벽돌처럼 잘라 지은 절이었다. 황금의자에 금색 부처님을 모신, 꽃이 가득한 법당 안에서 그때까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10불쯤 되는 인도 루피화를 보시함에 넣었다. 어디선지 스님이 나타났다. 오렌지색 인도사리 같은 법복을 걸친 스님은 끊임없이 불경을 외며 和의 팔목에 실을 감아 주었다. 감고 또 감았다. 수십 번도 더 감는 것 같았다. 아내가 재촉을 해서 나도 그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가 팔을 내밀었다. 그는 和의 손목을 풀어 주고 내 팔목을 잡더니 몇 번 실을 감고는 합장한 뒤 가버렸다.
녹야원을 방문했다는 감동으로 구름에 떠 있는 우리를 데리고 싱(Singh)은 호텔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갔다. 비단공장이라고 했다. 나는 싱(Singh)에게 물었다. “꼭 봐야 돼?” 그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스케줄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인도 최고의 비단을 생산한다고 하며, 부처님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생산한 비단옷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녹야원으로 가득 찬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인도의 싸구려 비단이 들어 앉을 자리는 없었다. 대충 한 바퀴 돌아보고 아주 빠른 어조로 그들의 제품을 소개하던 비단판매 담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Thank you very much”를 크게 외치고 걸어 나왔다.
내일은 갠지스강을 새벽에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일찍 잠자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