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가 정력을 떨어뜨린다?
17세기 영국서 ‘커피 대신 맥주만 판매해달라’ 청원도…
[아시아엔=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커피가 남성성(Masculinity)을 위축시킨다는 340여 년 묵은 오해가 풀릴 것인가?
텍사스대학 연구팀이 얼마 전 커피를 하루 2~3잔 마시는 남성이 마시지 않는 남성들보다 발기불능 비율이 42%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하자 떠오른 생각이다. 앞서 2013년에 카페인 커피를 마신 사람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 측에 비해 전신의 혈류량이 30%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기대했던 바이다.
“커피가 정력에 나쁘다”는 항간의 소문은, 그 뿌리가 1674년 영국에 닿아 있다. 당시 여성들은 커피음용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서(Women?s Petition Against Coffee)를 런던시에 제출했다. 남성들은 “모함이다”며 ‘여성 청원서에 대한 남성의 답변(The Men?s Answer to the Petition Against Coffee)’이라는 성명으로 대응했다.
여성들은 남자들을 ‘사막처럼 메마르게 하고 쇠약하게 하는 음료(A drying, enfeebling liquor)’로 커피를 묘사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의 대책을 호소했다. 청원서에는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남편들이 수분을 빼앗기는 바람에 잠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불만도 적혀 있다. 여성들은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강인하다고 칭송받던 영국남자들이 커피 때문에 침대에서 참새처럼 나약해졌다”며 “남편들이 단지 턱수염만으로 남자임을 증명하려 해선 안 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커피로 인해 줄어든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여성들은 60세 미만 남성들에게 맥주 판매만 허용해 달라는 문구도 넣었다. 이 대목 때문에 청원서를 커피에게 손님을 빼앗긴 주류 업계의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다.
영국 국왕 찰스 2세(Chalres II, 1630~1685)는 기다렸다는 듯 커피하우스 폐쇄령을 내리고 커피음용을 금지시켰다. 단지 여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다. 지식인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서민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기록된 청교도혁명(1640∼1660년)에서 부친인 찰스 1세가 처형당하는 일을 겪은 그에게 ‘시민의 계몽’은 트라우마로 작용할 만했다.
커피금지령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지식인들이 먼저 나서 부당성을 외쳤는데, 그 시작이 여성청원서에 대한 반대 성명이다. 남성들은 성명에서 “커피는 무해하고 치유효과가 있는 음료(Coffee is a harmless and healing liquor)”라고 선언한다. 커피의 긍정적인 면모를 역사 인물과 사건에 은유한 멋진 대목들이 즐비한데, 요지는 아래의 문구이다.
“맥주는 남자를 염소처럼 음란하게 만들지만, 커피는 정신을 집중시키고 안정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발기를 더욱 왕성하게 하며 사정도 풍성해진다.”
(Ale that enfeeble nature, makes a man as salatious as a Goat, whereas Coffee collects and settles the Spirits, makes the erection more Vigorous, the Ejaculation more full.)
여성들의 진지한(?) 청원은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누리며 커피하우스에서 밤새 세상을 논했던 남성들에게 눌려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커피는 되레 면죄부를 얻었다. 여성을 앞세워 ‘계몽의 주역’인 커피를 금하려 했던 정부의 전략도 수포로 돌아갔다.
커피가 남성의 정력을 떨어뜨린다는 ‘모함’은 3세기를 넘기면서 과학적으로 풀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력증진을 위해 커피를 마실 일은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덕목을 명심해야 한다. 더욱이 카페인은 넘치면 해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