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왁커피의 숨겨진 비밀···인도네시아선 강제사육 대신 ‘반려견형 재배’ 싹 터

[아시아엔=세라 박 <아시아엔> 뉴욕특파원, 커피비평가협회(CCA) 뉴욕본부장]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인들은 기원전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를 벗어나 서남아시아 예멘에 전해져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600~700년이다. 여기서 다시 1000년이 지나서야 커피가 아라비아반도를 벗어나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만약 네덜란드 상인과 인도의 순례자가 없었다면, 커피는 여전히 아라비아반도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아시아 커피는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버티고 있는 중남미에 양적으로 밀려 면모가 위축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커피 전파의 역사에서 아시아가 갖는 의미는 제법 크다. 맛과 관련해서도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친 루왁커피는 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적 산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 커피 전파의 역사와 함께 루왁커피의 기원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커피는 적도를 중심에 두고 남북으로 1000마일(1609㎞) 이내에서만 자란다. 커피가 원산지인 아프리카를 벗어나 밖으로 전파되는 속도는 매우 더뎠다. 15세기가 돼서야 예멘에서 커피가 재배됐고 16세기 들어서 시리아와 터키, 페르시아, 이집트로 퍼졌다. 이슬람교도에게 커피는 ‘알콜 대용품’이었다. 코란에 의해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무슬림에게 에너지를 주는 커피는 술을 대신할 만한 만족스러운 존재였다.

▶아시아 커피의 시작=커피 반출을 막는 아라비아로부터 이를 유럽으로 전파시킨 국가는 네덜란드다. 1616년 네덜란드의 직물상인 피테르 반 데르 부뢰크(Pieter van der Broeck)가 모카에서 묘목을 몰래 암스테르담으로 가져가 식물원에 심었다. 네덜란드는 이 커피나무를 1658년에 식민지인 실론(스리랑카)에서 옮겨 심었다. 네덜란드는 인도 남부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도 커피를 재배해 유럽에 공급했다. 네덜란드는 17세기에는 일본에 커피를 전했다. 1888년, 도쿄에서는 유럽식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인도에 커피를 전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은 순례자 바바 부단(Baba Budan)이다. 그는 힌두인과 무슬림에게서 모두 존경을 받는 수피(Sufi) 교인이었다. 바바 부단은 성스러운 숫자인 ‘7’에 의미를 부여해 1679년 메카 순례여행 중 예멘에 들렀다가 커피씨앗 일곱 알을 몰래 숨겨 인도로 가져와 심어 재배에 성공했다.

▶‘루왁커피’ 전성시대=흔히 ‘루왁커피’라고 일컫는 것은 ‘코피루왁’(kopi luwak)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코피’는 ‘커피’,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영어로 시벳?Civet)를 의미한다. 코피루왁 또는 시벳커피는 모두 긴꼬리 사향고양이가 소화를 시키지 못한 커피씨앗을 정제해 만든 커피다.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발효되는 커피라 하면 단연 코피루왁이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희소성 탓에 돈이 된다고 하니, 베트남은 족제비(Weasel) 배설물에서 골라낸 ‘위즐커피’와 다람쥐에게 커피열매를 먹이고 받아낸 ‘다람쥐똥커피’를 내놓았다. 예멘에는 ‘원숭이똥커피’, 필리핀에서는 토종 사향고양이가 만들어내는 알라미드(Alamid) 커피가 있다. 여기에 태국과 인도에서는 코끼리까지 가세하면서 루왁커피 대량생산시대를 열 태세다. 코끼리가 한 번에 배설하는 양이 200kg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야생 코피루왁을 채집하는 농민들이 반년 동안 열심히 산속을 뒤지며 모아야 할 분량을 단숨에 해결하는 규모다. 에티오피아의 염소커피, 베트남의 당나귀커피, 서인도제도의 박쥐커피까지 있다는 전언이다.

▶루왁커피는 식민시대의 산물?=루왁커피가 인도네시아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시기는 적어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며 자바 섬에 커피나무를 경작케 한 1696년 이후다. 이 무렵 유럽은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이슬람의 커피에 세례를 주며 음용을 허용(1605년) 지 근 1세기가 지난 시점으로, 유럽에서는 물량이 달릴 정도로 커피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1969년은 유럽의 모든 나라를 거쳐 미국에도 보스턴과 뉴욕에 잇따라 커피전문점이 상륙한 해이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마침내 커피시장이 열리는 상황에서, 장사에 능한 네덜란드로서는 인도네시아에 커피 밭을 만들어 단단히 한 밑천 잡아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 뒤 런던에만 커피하우스가 2000여개에 달했다.

커피 붐을 내다본 네덜란드로서는 신이 났다. 커피를 더 달라는 유럽국가들의 아우성에 인도네시아 커피를 한 톨 남김없이 톡톡 털어 담아내도 부족했다. 수확하자마자 전량 유럽으로 실어나르기 바쁜 지경이다 보니 커피를 재배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로서는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당시 이미 커피에 매료된 상황에서 커피생두조차 구경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커피를 맛볼 유일한 길이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이었던 것이다.

▶사향고양이 ‘시벳’=사향고양이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인기척이 있으면 아예 모습을 감춘다. 더욱이 야행성이어서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처음엔 어떤 동물의 배설물인지 모르고, 커피 생두를 찾다가 고육책으로 말라비틀어진 배설물로 커피에 대한 한을 풀었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루왁커피의 향미가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자신들이 키워낸 커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윽하고 우아한 맛과 향이 우러났다. 세월이 흘러 재배한 커피가 남아돌 정도가 됐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루왁의 풍미에 매료돼 산속을 누볐다. 이렇게 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루왁이 뱃속에서 커피체리의 과육을 자연스레 제거해준 덕분에 힘들게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던 것이다. 코피루왁에 ‘게으름의 커피’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루왁커피의 이런 면모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까지 널리 전해져 인기를 끌자 가격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갈수록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물량이 속속 바닥나자 사향고양이를 가두고 억지로 커피열매를 먹이며 배설물을 받아내는 참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생과 사육의 차이=많은 사람들이 사육해 만든 코피루왁과 야생 코피루왁의 맛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람의 관능으로 이를 구별해 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야생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장치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 정부나 커피전문가 단체들이 발급한다는 인증서일 수 있다는 희망도 접어두는 게 현명하다. 2015년 9월 현재,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거래되는 코피루왁의 가격은 생두 1kg에 8만원 선이다. 한 도매상은 야생과 사육 코피루왁을 구별해 값을 알려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생두 상태만 보고 야생인지, 사육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채집자들이 야생이라며 갖고 오지만 우리도 믿지 않고, 그들도 꼭 믿어달라는 눈치가 아닙니다. 야생이든 사육이든 같은 값을 쳐주니까, 서로 다툴 필요도 없지요.”

사육을 엄단할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미국화학협회가 “코피루왁은 구연산(citric acid)과 말산(malic acid)의 함량이 높고, 이노시톨과 피로글루탐산 비율(Ratio of Inositol to Pyroglutamic Acid)이 높다”는 오사카대학의 연구결과를 전했다. 그동안 진짜 코피루왁 여부는 숙련된 전문가나 아로마감별장치(Aroma-Sniffing devices)를 통한 ‘관능분석’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를 가늠하는 성분이 커피에 들어있는 1천여 가지의 화학성분 가운데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권위가 실리지 못해왔다.

인도네시아 야생 루왁커피가 수확한 커피생두에서 보이는 카르노신(carnosine), 세린(serine), 알리닌(alanine)을 함유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고됐다. 야생 루왁커피가 사육한 코피루왁커피에 비해 유리아미노산의 총량이 많은 반면 카페인은 적은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혹사시키고는 ‘야생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빚어낸 커피향미의 하모니’라고 속이는 뻔뻔한 상술이 통하지 않을 날도 멀지 않았다.

▶루왁커피는 ‘그리움’=잡식성인 루왁은 이른바 디저트로 잘 익은 커피열매만 가려내 먹는다. 따라서 배설되는 커피의 향미는, 루왁이 무엇을 먹고 커피열매를 후식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따라서 코피루왁을 채집하고 때나 장소에 따라 향미의 향연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자연의 맛과 멋이 루왁이 갇힌 창살 아래에서 이루어질 리 없다. 자유를 빼앗고 억지로 입을 벌려 먹이고 배설하게 해서 만드는 커피라면 ‘저주의 커피’와 다름없다.

사육 루왁커피에 대해 동물학대라는 비난이 들끓자, 인도네시아 일각에서 사향고양이를 ‘반려견’처럼 키우며 코피루왁을 생산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 넓고 깨끗한 사육장에서 사향고양이를 키우면서, 억지로 커피열매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음식을 주며 건강하게 자라게 돌보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지속돼 성공적으로 안착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루왁커피를 맛보는 진정한 의미는 그리움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야생의 한 구석에서 살며시 맺은 커피열매를 사향고양이를 통해 맛보고 싶어하는 원초적 그리움이다. 바로 ‘코피루왁(kopi luwa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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