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페스트리셰프의 이유 있는 철학 “오븐에서 갓 내온 빵보다 맛있는 빵이 있나요?”

원종훈 셰프

미국 뉴저지에 오픈 ‘라 타바티에르’(La Tabatiere), 5개월만에 현지인 줄서는 랜드마크-제빵학도 순례코스로

[아시아엔=글·사진 세라박 뉴욕특파원] 뉴욕 도심에서 승용차를 타고 남쪽 뉴저지로 35분가량 가면 “빵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의 한국인 페스트리셰프(Pastry Chefs) 원종훈(사진)씨의 소문을 듣게 된다. 지난해 12월 ‘라 타바티에(La Tabatiere)’가 문을 연지 5개월도 안 돼, 주변은 멀리서 차를 타고 빵맛을 보러온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서는 풍경이 자주 연출된다. ‘밥의 나라’ 한국 출신의 셰프가 ‘빵의 나라’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러 베이커리를 제치고 이런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민들은 “라 타바티에가 생긴 뒤로 빵이 익어가는 고소한 향기에 잠을 깨 동화 같은 아침을 맞고 있다”며 반기고 있다. 이쯤 되면 원 셰프의 빵은 단순한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빵을 굽는 향기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을 추억에 젖게 하는 그는 빵으로 감성을 보듬는 예술가가 아닐까? 2일 아침 늘 그랬듯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내온 빵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그를 라 타바티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셰프의 빵맛이 환상적이라고들 합니다. 특히 ‘Soy bread’나 다른 ‘enriched dough’이 자아내는 고소하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텍스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이렇게 맛있는 빵을 구어 내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Enriched dough = 물, 이스트, 소금, 밀가루만 들어가는 lean dough에 설탕이나 버터, 계란을 더한 발효반죽 빵.)
“Enriched dough는 부드러운 식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식빵을 만들 때 많이 쓰는 방법인데, 빵의 노화를 늦출 수 있고 식감도 훨씬 부드러워서 이곳 사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원 셰프의 빵을 맛보면 겉보기에는 프랑스 제과와 빵인데 맛은 한국의 섬세하고 담백하며 정감이 있는 특색이 살아있습니다. 어느 빵을 먹어도 하나하나가 다 맛있습니다. 메뉴는 어떻게 구성한 것인가요.
“개인적으로 프렌치 베이커리에서 즐겨 먹던 아이템들입니다. 크루아상, 까늘레, 브리오쉬 등 기본적인 아이템들이고, 그렇기에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빵집들과 차별화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지요. 레시피를 만드는 일은 늘 힘듭니다. 이 지역의 물과 주방온도, 밀가루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합니다. 지금도 변수를 통제하면서 최상의 포인트를 찾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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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그것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요.
“바게트는 프렌치 브레드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빵이죠. 의외로 맛있는 바게트를 만드는 베이커리들이 많지 않아요. 반죽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바게트를 굽는 오븐의 온도와 스팀의 성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Poolish, biga, sourdough 등의 다양한 pre-ferment 방법을 테스트해서 레시피를 완성했습니다. 또 바게트와 하드계열의 빵을 굽기에 적합한 오븐을 찾기 위해 오픈을 두 달가량 연기하기도 했지요.”

빵 이외에도 셰프의 대표작을 3개 정도 꼽아주세요.
“Canele, Croissant, Apple tart입니다” (*Canele=속은 부드럽게 구워진 커스터드에 겉은 진하게 캐러멜화한 작지만 풍미가 알찬 프랑스식 페스트리. *Croissant= 도우와 버터를 겹겹이 쌓아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구워낸 고소하고 살살 녹는 식감의 프랑스 페스트리. *Apple Tart= 레일 모양의 층이 있는 고소한 타르트 위에 사과를 올린 달콤하고 고소한 페스트리.)

라 타바티에라는 무슨 의미인지요.
“파우치처럼 오븐 안에서 위로 부풀어 오르는 모양을 일컫는 말입니다. 프렌치 하드계열의 빵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타바티에라고 정했습니다.”

특별히 이곳을 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일하던 맨해튼에는 맛있는 커피와 베이커리들이 즐비한데, 휴일에 제가 머무는 뉴저지에는 딱히 맛있는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뉴저지에도 맨해튼 도심 못지않게 누구나 ‘이곳이야’라며 떠올릴 수 있는 베이커리를 만들고 싶어서 이 곳 클로스터 지역에 오픈을 하게 됐습니다.”

제과제빵을 하기 전에 다른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미국에는 카운슬링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베이킹은 취미로 했었고요. 처음 미국에 도착하니 예전에 먹던 빵과 케이크들이 그리웠습니다. 미국에는 집마다 오븐이 있으니 시간이 나면 빵과 케이크를 만들었지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공부하는 시간보다 빵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그리고 1년 정도 정말 제빵을 전공할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결국 가족들을 설득하고 CIA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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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가 원 셰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이것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 준 것이지요. 수업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딱 한번 수업을 못 갔는데, 첫째 딸이 태어난 날이었지요. 이제야 털어놓는 것인데, 분만을 기다리면서도 ‘오늘 초콜릿수업에서 마지판을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메이크업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었지요.”

CIA 교수님들도 원 셰프의 열정과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원 셰프의 많은 일화가 한국 학생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데요.
“초콜릿, 설탕공예, 제빵, 제과 등 모든 분야가 제겐 재미있었기 때문에 예쁘게 봐 주신 것 같습니다. 설탕공예와 웨이딩케이크 수업도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제빵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고요. 가장 잘했던 분야는 제과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손이 사실 짧고 못생겼는데, 학교에서 만든 사진들을 보여주니 가족들이 어떻게 그런 손으로 이런 걸 만들었냐며 웃곤 했었지요.”

한식레스토랑 최초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정식당에서 페스트리셰프의 자리를 놓고 나왔을 때 주변에서 말리진 않았는지요.
“시기가 되었다고 느꼈어요. 너무 좋은 자리였고, 정식당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기에 저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일수록 화려한 파인다이닝의 디저트 보다 심플하고 투박하지만 클래식한 프렌치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나보다는 다른 친구가 맡아서 해주는 게 정식당을 위해서도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났지만 아직도 정식당은 제게는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정식당을 나와 빵을 배우려고 발타자에서 약 6개월간 일을 했지요. 그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비자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는 곳을 선택하기 힘듭니다. 자신을 받아주고 신분유지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정식당을 떠나 비즈니스를 준비하면서 마지막으로 배워보고 싶었던 곳에서 일 해봐야겠다는 맘으로 지원한 곳이 발타자였습니다. 규모가 큰 곳이어서 브레드 쉐이퍼, 믹싱보조로 일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진 못했지만, 빵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지요. 라 타바티에의 메뉴에 하드계열 브레드를 넣은 것은 이때 경험 때문입니다. 또 발타자에 매일 찾아오는 다양한 손님들을 보면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손님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한인이 밀집한 지역이 아니라 미국인 주거지인 클로스터에 라 타바티에를 연 용기를 낸 계기가 된 것이지요.”

IA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원 셰프가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품으로도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정식당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JUNGSIK’이 뉴욕에 오픈하고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후배들이 손님으로. 직원으로 다녀갔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도 후배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었지요. 가끔 찾아와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CIA학생들은 후배다보니 맘이 가는 것이 티가 나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후배를 만나는 걸 좋아합니다. 경험이 많은 선배에게 배울 점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요. 경험이 적은 후배들에게서 존경할 만한 부분을 발견할 땐 감동이 몰려옵니다. 표현은 못하지만 맘속으로 존경하는 몇몇 후배들이 있어요.”

<아시아엔> 독자들 중에 셰프의 맛있는 빵을 집에서 손수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실 텐데요. 비결을 들려주세요.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과 시간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공정과 시간만 잘 지킨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어요. 오븐에서 갓 꺼낸 빵은 모두 맛있습니다. 집에서 정성들여 반죽해 오븐으로 구워낸 것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들려주세요.
“비즈니스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목표는 딱히 없습니다. 베이커리를 창업한 후 배우고 있는 한 가지는 나의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게 비즈니스라는 사실이지요. 라 타바티에가 지역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게 제일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충실히 만들어 가다보면 다음 목표가 보이겠지요.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저의 소박한 바람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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