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세계 최정상 요리대학 ‘뉴욕CIA’ 칼린 에익 교수①
[아시아엔=세라박 뉴욕특파원] 세계 최고의 요리대학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뉴욕본교에서 지난 7일 진행된 ‘CIA향미전문가 자격증’(FMC, Flavor Master Certificate) 과정의 와인테이스팅 시간. 교육을 이끈 칼린 본 에익(Carleen Von Eikh) 교수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한 모금 마시고 이같이 묘사했다. 교육장 이곳저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여린 녹색이 감도는 것은 양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Young)한 와인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소비뇽 블랑은 허브나 딜(Dill)과 같은 향신료의 뉘앙스가 인상적인데, 여기서는 아직 산미가 우세하게 치고 올라온다. 좀 더 두었다가 즐겨도 좋겠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몸에 스며든 와인과 마치 감정을 교류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 같다. 초록색 병에 담긴 리슬링(Riesling) 와인이 수강생들 앞에 놓은 잔에 따라지자 술렁였다. 프랑스와 독일이 접한 알자스 지역에서 꽃을 피운 품종으로, 세계 최고급 화이트 와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와인이어서인지 수강생들 얼굴에는 긴장감마저 흐르는 듯했다.
에익 교수는 와인의 색상 확인(See)-와인의 눈물(Leg) 관찰을 위한 스월(Swirl, 잔 안의 와인 돌리기)-향기 감별(Smell)-향미 확인을 위한 시핑(Sipping, 한 모금 마시기)-촉감과 여운을 판단하기 위한 세이버링(Savoring, 맛 즐기기) 등의 다섯 단계를 물 흐르듯 능수능란하게 거치면서 와인의 면모를 구석구석 파악해 나갔다.
“가솔린 향과 더불어 감미로운 복숭아 느낌이 드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앞서 맛을 본 소비뇽 블랑보다는 혀에서의 밸런스가 좋고, 드라이(Dry) 하지만 분명 단 느낌이 있다. 여기에 발효과정에서 발생한 탄산이 아주 조금 남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쁜 여성들의 싱크로 수영(Synchronized swimming)처럼 여럿이 하나로 조합된 복합미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는 리슬링을 마신 소감을 “큰 복숭아 과수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고 압축해 표현했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급 화이트 와인을 상징하는 부르고뉴 원산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 차례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표현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에익 교수를 바라보는 수강생들 모습은 소풍을 앞둔 아이보다 더 설레는 듯 했다.
에익 교수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와인에 빠져들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와 뉴욕의 국제와인센터(The International Wine Center, IWC) 등 최정상의 양대 와인 교육기관에서 차례로 와인을 탐구하면서 소믈리에와 와인평론가로 인생행로를 바꿨다.
그가 세계 최고 명성의 CIA에서 와인을 가르치게 된 것은 여러 경쟁력을 지녔기 때문이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림 그리듯 향미를 표현하는 능력’임이 분명했다.
“와인을 마실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함께 기억하세요. 지금 손에 쥐어 진 샤르도네가 저를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 빛 물결이 내려다보이는 항구로 데려갑니다.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조용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네요.”
오크 숙성된 샤르도네 와인에서는 멀리 들리는 첼로의 선율처럼 은은하게 바닐라향이 피어나왔다. 샤르도네를 숙성한 나무통은 프랑스 오크가 틀림없다. 미국 오크라면 코코넛 향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산미는 리슬링이 철이 들었다고 할까?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원숙미가 흐르는 듯했다고 할까? 행여 마시는 사람이 아프기나 할까 싶어 혀에 스며드는 듯 감미롭기까지 했다.
테이스팅 대상이 레드 와인으로 바뀌면서 에익 교수가 그려내는 그림도 풍경화에서 인물화로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향미가 강건한 레드와인들은 인간의 관능에 보다 구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은 대부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품종이 바로 이곳이 원산지인 피노누아(Pinot Noir)다. 2012년산 부르고뉴 피노누아 와인을 따르는 에익 교수의 얼굴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레드 와인을 평가할 때는 먼저 붉은색을 연상케 하는지 더 어두운 쪽을 떠올리게 하는지 고민한다. 이 와인은 아주 잘 익은 라즈베리 같다. 코코넛의 향미가 뒤를 받쳐주는 걸 보니 미국 오크에서 숙성한 것으로 보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