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열풍 브렛 스미스 ‘카운터컬처커피’ 대표 “좋은 커피는 당신을 돋보이게 한다”
[아시아엔=세라박 CCA 뉴욕지부장]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바람은 199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람(Durham)의 작은 로스터리 랩인 ‘카운터 컬처 커피(Counter Culture Coffee)’에서 시작됐다. 지난 4월18일 카운터 컬처 커피 20주년 행사에 초청받은 세라박 커피비평가협회(CCA) 뉴욕지부장이 현장을 방문해 브렛 스미스(Brett Smith) 대표를 인터뷰했다.
카운터컬처커피가 스타벅시즘(Starbucksism)으로 상징되는 커피 맛의 획일화(Uniformity)와 몰개성화(Deindividuation)에 반기를 들고, ‘스페셜티 커피’를 선언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지난 4월18일 더람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카운터 컬처 창립 20주년 파티엔 미 전역에서 커피애호가들이 몰려들어 멋진 향미의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라이브 밴드의 현란한 연주와 에너지 넘치는 노래는 카운터컬처커피만큼이나 파티에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보슬보슬 비 내리는 선선한 날씨는 좋은 커피를 즐기기 위한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직원들도 기념일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고 훌륭한 커피를 대중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이들의 다양한 커피 제조기술을 보는 것은 정말 즐거웠고, 사람들은 케멕스, 사이펀, 푸어 오버, 에스프레소 등 가지각색으로 추출된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참석자들은 그토록 많은 커피에 전혀 질리지 않았고, 4시간의 파티가 끝난 후에도 파티장을 떠나지 못했다.
카운터컬처커피는 구운 커피콩을 공급하면서 미국 동부 시장을 장악했다. 많은 식당과 빵집, 커피 애호가들은 카운터컬처의 커피를 사고, 어떻게 커피를 추출해야 하는지 올바르게 숙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카운터컬처의 커피를 찾는 것일까? CCA 뉴욕지부장이 카운터 컬처의 창설자이자 대표인 브렛 스미스가 이에 대한 답변과, 20년간의 긴 여정을 들려줬다.
‘카운터 컬처’는 사전적으로는 ‘기성 문화에 대항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의 정신운동’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요, 1995년 설립 당시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을 짓게 됐는지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회사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프레드 헐크(카운터컬처 커피의 공동 창설자)가 오더니, “찾은 것 같아, 카운터컬처커피”라고 말했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십분간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린 히피니깐 우리 커피를 안사면 너희 식당 앞에서 항의할 거야”란 인식을 심어줄까봐요. 그래서 우린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의도로 첫번째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초반에는 맘에 썩 와 닿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카운터 컬처’라는 단어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린 특별하고 다르다. 우린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름을 지었는지 물어보고, 지은 연유를 답해드리면 대부분 좋아합니다. 카운터 컬처란 이름을 갖게되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립 때의 정신과 마음가짐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지요.
“본래 목표는 회사의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목표는 ‘하나의 훌륭한 회사를 만들자’였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선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좋아하고 만족하는 방향으로 도전하며, 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한편으론 공급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공급자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낮은 공급단가를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동업자로 함께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경쟁관계는 우리가 상대를 존중하는 겁니다. 서로 싸우고 관계가 거칠어질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서로 존중해주는 방향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어느 분야에서건 많은 경쟁자들과 협업하고 싶습니다. ‘가장 큰 회사가 되고 싶다’거나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다’가 아닙니다.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제가 없더라도 카운터 컬처가 꾸준히 자라서 제가 만들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하길 바랄 뿐입니다. 1995년도에도 우리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중요시 했습니다. 좋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커피를 이야기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영역이 더 넓어졌죠.”
동양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20년이면 세상이 두 번 바뀌는 셈인데, 20년 전의 커피문화와 지금의 커피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평가해주세요.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당시엔, 커피 가게가 거의 없었습니다. 스타벅스가 500개 분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2만1000개로 늘어났죠. 커피산업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카운터컬처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발전해왔죠. 더욱 투명해지고, 더욱 직접적이며 커피를 기르는 농부들과도 더욱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매우 반길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운터 컬처 커피는 오랫동안 커피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로스팅(Roasting)이나 브루잉(Brewing) 등 프로그램이 다채로운데, 프로그램들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처음 거리에서 시작했을 때, 사람들을 모아 커피를 맛보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로스터를 보고 구워진 커피의 향을 맡았죠. 모두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맛보았습니다. 엄청난 경험을 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음 도시로 진출갈지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이 교육과 훈련과정이 충분히 통할 것이라 믿고 이를 ‘카운터 인텔리전스’로 상표화했습니다. 트레이닝 매뉴얼을 만들고 기초반부터 고급반까지 교육과정을 단계별로 발전시키고 자격증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커피와 문화를 알려주는 좋은 장이 되었죠. 카운터컬처커피는 사람들이 커피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알아가는 공간이 되어왔습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세계적으로 커피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생산농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 카운터 컬처는 커피산지를 찾아가 재배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가격을 높게 지불하는 등 인상 깊은 행보를 보여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공정무역(Fair Trade)의 시작을 알린 것이었는데, 당시를 회고해 주신다면요.
“공정무역과 직거래가 기억나네요. 당시 생산량이 원가 이하로 떨어져서 농부들이 힘들어했습니다. 다행히 공정무역은 농부들이 생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죠. 직거래를 한 동기는 ‘복수가격’이었습니다. 투명성과도 관계가 있고요.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저희는 대가를 지불하는 만큼의 품질을 기대합니다. 이젠 카운터컬처커피뿐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직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직거래를 한다는 인증서가 귀했는데, 지금은 아주 평범한 일이 되었습니다.”
좋은 커피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한 잔의 커피 안에는 생산공정과 거래과정, 품질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속가능한 커피 농업 하에서 좋은 커피가 생산됩니다. 농부는 적절한 양의 커피를 만들고 그 대가를 보상받습니다. 물론 이렇게 생산된 커피의 품질은 매우 훌륭하죠. 저희는 농부들이 보낸 콩을 볶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포장을 하죠. 고객은 콩을 사서 커피를 내립니다. 마지막으로 그 한 잔의 커피를 누군가 즐기는 거죠. 좋은 커피는 당신이 어디에서 커피를 즐기던, 당신을 돋보이게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커피가 많은 식음료 문화와 접목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커피교육이 필요할까요?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대다수는 커피를 즐깁니다. 커피가 없는 식당이 어디 있나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조차도 끊임없이 맥카페와 같은 커피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지난 10년간 맥도날드는 커피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품질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고객들도 계속해서 높은 품질을 요구하지요. 커피를 즐기고 평가하는 것은 어떠한 음식사업이든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창의적이고 흥미로우며 호기심이 많습니다. 음식과 커피를 접목시켜 더욱 창의적인 요리가 나올 수도 있죠.”
커피산업에 종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요.
“르완다에 있을 때,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추진한 르완다농업촉진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995년에 대학살이 일어났고 1만명이 100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상상해보세요. 그래서 폴 카가메 대통령은 르완다를 재건하기 위해 전세계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커피산업 육성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로스터를 찾길 원했고, 카운터컬처커피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물론 모든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사람씩 만나 대화하면서 조그마한 식당의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염소고기도 먹고, 커피도 나누며 르완다 커피산업 발전에 대해 토론했던 날들이 기억납니다. (오늘날 르완다 커피의 품질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가 주요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편집자)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고, 절대 잊지 못할 날입니다.”
끝으로 대표님의 인생에서 커피란 어떤 의미입니까?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놀랄만큼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커피를 통해 축복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죠. 커피 덕분에 르완다의 농부들과 같이 염소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같이 커피를 나눌 수 있었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람들과 좋은 식당에서 커피도 나눴고요. 물론 ‘카운터컬처커피’도 더욱 발전할 수 있었죠. 커피가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준 셈이죠. 하루를 마치고 마시는 커피는 환상적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커피가 가져다 줬습니다. 이 갈색 음료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경험을 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줬습니다. 커피는 제 삶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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