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씨가 한 잔에 담길 때까지 3년 9개월

2 – 한 톨의 커피씨앗에서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가 나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커피나무의 일생에서 종자(種子, Seed)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생두(Green bean)도 아니고 원두(Roasted bean)는 더더욱 아닙니다. 일련의 커피열매 가공과정에서 한 알의 커피알갱이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파치먼트 상태일 때까지입니다. 파치먼트의 껍질이 벗겨지면 커피알갱이는 생명력을 잃게 되고, 따라서 그 순간부터 ‘Seed(씨)’가 아니라 ‘Bean(콩)’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지요.

매치스틱 단계의 커피씨앗과 싹 <사진= 박영순 제공>

파치먼트를 바로 밭에 파종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묘판(Seed bad)이나 폴리백(Poly bag)에 심어 싹을 틔웁니다. 파치먼트를 심고 30~60일 지나면 새순이 나오는데요, 이 때 모양이 성냥개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매치스틱 스테이지(Matchstick stag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두 달 가량 더 지나면 두 개의 떡잎(Butterfly stage)이 나오고, 다시 3개월이 지나면 비로소 첫 번째 잎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밭이 아니라 묘포(Nursery)에서 진행되는 과정인데요, 파종에서부터 적어도 6개월이 걸렸네요.

잎이 생기면서 묘목의 성장엔 가속도가 붙습니다. 2~3개월이 더 지나면 키가 30~50cm로 자라나고 잎도 6~10쌍이 생겨 밭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묘판에서 건강하게 자라난 것만을 선별해 밭으로 옮겨 심는데요, 이처럼 일단 묘판에 심은 뒤 튼튼한 것만을 가려내 밭에서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겠죠. 밭으로 옮긴 뒤 2년쯤 지나면 꽃을 피우는데, 이때 나무는 1.5~2m 자란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꽃을 피운 첫해는 수확할 정도로 열매가 알차게 자라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 이듬해부터 수확을 하는데요. 파치먼트를 심어 수확할 때까지 적어도 3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커피는 열매를 수확했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열매에서 파치먼트만을 빼내 그 안에 들어있는 생두만을 골라내는 가공(Processing)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공방법은 습식법과 건식법이 있습니다. 어느 방법이건 과육을 없애는 펄핑(Pulping)과 파치먼트에 묻어있는 점액질(Mucilage)을 발효나 기계장치로 제거하는 과정, 정제된 파치먼트의 수분함유율이 12%가 되도록 건조하는 작업 등을 거치게 됩니다. 가공과정은 길어야 보름 정도이고, 파치먼트를 탈곡해 생두로 만들어 로스팅한 원두를 만든 다음에도 2~3일 이산화탄소를 날려보낸 뒤 그라인딩을 하는 게 좋습니다. 종합해보니 커피 씨앗을 심어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까지 빨라도 3년 9개월은 기다려야 겠네요.

커피꽃과 덜 익은 커피체리 <사진= 박영순 제공>

▶keyword search = “Seed to cup coffee”
“Transformation of the juicy cherries of a handsome tropical bush into one of the world’s favorite beverages is brought about by a series of steps that is as much about moving the beans from one place to another as it is about processing the ruby-like fruits. Coffee, grown in tropical regions of the world, must be carefully husbanded, then picked, removed from the cherries, dried and bagged before it is even ready to leave the producing country. It is consolidated and shipped, and later it is roasted, blended, distributed, and eventually ground and brewed. A very sophisticated network that reaches to the farthest corners of the planet has grown up to supply this drug, and it all begins down on the farm, with the plant itself.” (Gregory Dicum & Nina Luttinger, 1999, The Coffee Book: Anatomy of an Industry from Crop to the Last Drop, The New Press. p 38-39)

2. 멋진 열대의 덤불에서 자란 즙이 풍성한 커피열매가 세계적인 음료가 되려면 일련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루비처럼 빛나는 커피열매가 이리 저리 옮겨지는 가공과정을 거쳐 생두로 된다. 열대지역에서 자란 커피는 매우 조심스럽게 교배하고 수확하며 건조시켜야 하고 산지를 떠나기 직전에 포대에 담아야 한다. 산지의 커피생두들은 한 데 모아져 배에 실린다. 장차 이들 생두는 로스팅, 블렌딩을 거쳐 소비지로 널리 퍼지고 결국 그라인딩을 거쳐 커피로 추출된다. 소비자와 커피농장을 연결하는 정교한 유통망을 통해 지구 구석구석 커피가 공급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