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아시아 커피로드’를 뚫다···아시아 10개국에 커피가 전파된 사연

신선한 생두에서 발아가 시작되는 모습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커피의 역사에서 아시아는 매우 큰 지분을 갖고 있다. 커피의 유래에 대한 3대 전설 가운데 ‘칼디’를 제외한 ‘오마르’와 ‘마호메트’의 전설이 서아시아(West Asia)를 배경으로 한다. 커피가 발견된 곳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를 경작한 것은 아라비아반도 남단인 예멘(Yemen)이다. 6~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라비아 반도의 커피 이야기는 모두 예멘을 뿌리로 두고 있다.

커피는 여기에서부터 무슬림(Muslim)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거쳐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터키로 퍼졌다. 17세기 초에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베니스를 통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로 진출했다. 한편으로, 커피는 순례자를 통해 인도에 전해지면서 마침내 커피반출 금지라는 ‘1000년의 금기(禁忌)’가 깨진다. 예멘은 커피를 전세계에 공급하는 허브였다. 아시아에 커피가 전해진 과정을 추적했다

커피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난 모습

커피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난 모습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서 처음 재배
커피의 기원에 대한 기록으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문헌은 압달 카디르(Abd-al-Kadir)가 1587년에 쓴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이 문헌에서 칼디(Kaldi)와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칼디에 대해선 시기를 적지 않고 이집트 북부 또는 아비시니아 지방(지금의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라고 소개하면서, 그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원 원장이 효능을 알게 되고는 수도사들에게 커피열매를 달인 즙을 마셔 밤새 기도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이슬람권에서 칼디의 전설은 ‘불면(不眠)의 수도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마르에 대해선 1258년이라고 시기를 못 박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커피열매를 달여 마신 사연을 적었다.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커피열매를 알게 됐다는 이른바 ‘마호메트 기원설’에 대해서는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커피에 대한 언급과 기록을 종합할 때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등장해 인류가 먹기 시작한 것은 6~8세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커피는 예멘을 통해 이슬람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급속히 확산된다.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게 만드는 커피의 효능은 무슬림들로서는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무슬림들이 얼마나 커피를 마셨던지, 예멘은 아예 커피를 경작하기에 이른다. 메카, 메디나, 이집트, 터키 등 이슬람권에서 커피 주문량이 쇄도했다. 예멘의 한 항구이름인 모카가 지금까지도 커피를 일컫는 상징이 됐을 정도이니 당시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16세기 예멘에서 커피가 대중화하고 메카, 메디나, 이집트, 이스탄불을 거쳐 17세기 초에는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퍼졌다고 적었다.

아라비카 종의 커피나무

아라비카 종의 커피나무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인도의 바바 부단, 천년의 금기 깨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를 죽음에서 구했다고 전해진 커피는 7세기부터 1천년간 아라비아반도에 갇혀 있었다. 무슬림들이 신성시 여김과 동시에 인기 높은 기호식품으로 엄청난 부를 약속하는 귀중한 원자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670년쯤 수피(Sufi) 교인이자 학자였던 바바 부단(Baba Budan)이 메카를 순례하고 귀국하면서 예멘에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 인도로 가져갔다. 바바 부단은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 심어 재배하는데 성공했다. 바바 부단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되기 시작했다.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스리랑카, 세계 커피 50% 생산
네덜란드가 스리랑카(실론)섬을 식민통치(1658~1796)할 때 자국의 식물원에 있던 커피나무를 옮겨 심은 것에서 유래했다. 네덜란드는 앞서 1616년 직물상인 피테르 반 데르 부뢰크(Pieter van der Broeck)가 예멘에서 묘목을 몰래 암스테르담으로 가져가 키웠다.

이어 영국이 1796년 실론섬을 네덜란드로부터 이양받아 커피를 대량 재배하면서, 실론은 1860년대에는 전세계 커피의 50%를 차지하는 최대생산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1869년 실론에서 커피 녹병(Leaf Rust)이 창궐하면서 커피나무가 전멸했다. 그 후로 실론은 차나무를 재배해 차의 왕국이 됐다.

인도네시아 1만8000개 섬만큼이나 다양한 커피
네덜란드인이 1696년 아라비카종 커피를 인도네시아에 전했다. 인도 말라바르(Malabar)의 총독이 바타비아(Batavia, 현 자카르타) 총독에게 커피묘목 한 그루를 보낸 해이기도 하다. 첫번째 묘목은 재배에 실패했으나, 1699년 전해진 묘목은 잘 자라 1711년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커피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커피를 재배한 지 3세기가 지나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커피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2013년 수출량은 대략 44만6000톤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는 커피 대부분이 로부스타이지만, 아라비카 종의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1만8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그만큼 다양한 향미의 커피가 생산된다. 그러나 수마트라(Sumatra), 자바(Java), 술라웨시(Sulawesi), 파푸아(Papua) 등 몇 개의 큰 섬뿐 아니라 아라비카 재배가 가능한 고지대가 많다.

잘 익은 커피열매

잘 익은 커피열매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로부스타 커피의 왕국 베트남
베트남은 1884년 전 국토가 프랑스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커피나무가 전해진다. 186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라섬 동쪽 해상에 있는 프랑스령 레위니옹(부르봉)섬에서 아라비카 나무를 가져다 통킹(Tonking)지역에 심었다. 베트남에서 커피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주요 수출품이 됐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의 거대한 커피산지들을 따라잡고 세계 두번째 커피산지로 올라섰다. 베트남전쟁과 내부적으로 1986년까지 진행된 농업의 집산화(Collectivisation of agriculture)를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명성을 얻지 못했다. 생산되는 커피 대부분이 로부스타 품종이기 때문이다. 로부스타는 향미가 좋지 않아 인스턴트커피나 블렌드용으로 사용된다. 고급향미를 추구하는 스페셜티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괄시를 받는다.

태국, 양귀비 재배 악명 커피로 극복
태국 커피는 대부분 북부 치앙라이주에 있는 도이창(Doi Chaang)에서 생산된다. ‘코끼리 산’이라는 의미의 지명답게 해발이 1200~1550m에 달하는 거대한 고산지대다. 라오스와 미얀마와 접경을 이루며, 양귀비 재배로 악명 높던 ‘황금의 삼각지(Golden Triangle)’였다.

UN이 1972년 빈곤한 농가에 커피나무 70주를 10달러에 보급하면서 양귀비를 대체하도록 유도했다. 1991년에는 태국 국왕이 자금을 지원한 ‘로얄프로젝트재단’이 설립돼 커피재배 교육 및 지도사업을 펼쳤으며, 2007년에는 민간비영리단체(NPO)인 도이창 커피농장이 설립돼 커피생두의 가공과 유통을 도왔다. 이 덕분에 아라비카 커피의 생산량이 4000톤으로 많지는 않지만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의 본산 중국에 이는 커피 물결
중국의 커피재배 역사는 18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이 대만의 기후가 남미와 비슷한 것에 착안해 예멘에서 커피나무 100그루를 가져다 심은 것이 중국 커피의 원조가 됐다. 중국대륙에서 커피가 처음 재배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면서다. 프랑스의 한 전도사가 보이차로 유명한 고산지대 운남성에 커피나무를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1950, 1960년대 커피재배가 활발해 연간 생산량이 2만6000톤까지 달했다가 1979년에는 100여톤까지 떨어졌다. 1980년대 중국 경제발전에 따라 커피생산도 빠르게 회복돼 2013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8만톤에 달했다.

운남에서는 아라비카 종이 생산되는데 독특한 맛으로 커피애호가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다. 광동성과 해남성에서는 로부스타가 주로 재배되며, 복건성과 광서성에서도 소량이지만 커피가 생산된다. 중국을 상징하는 차밭이 점차 커피나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유기농 커피의 나라 네팔
네팔에게 유기농 커피란, 환경보호 의미보다는 재배자의 어려운 형편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 히라 기리(Hira Giri)라는 승려가 미얀마의 신두 지방에서 커피씨앗을 가져와 굴미(Gulmi) 지역에 심으면서 퍼진 것으로 전해진다. 옛날 우리네 집마당이나 동네 어귀에 심었던 대추나무처럼 개별적으로 커피를 키우기 시작했으며, 소규모나마 농장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중반이다. 생산된 커피가 외부로 유출돼 국제 시장에서 네팔커피란 말이 나온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최근의 일이다.

네팔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 가난한 형편이다. 국제사회가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경 100km 볼라벤 커피고원 지닌 라오스
1893년 프랑스가 라오스를 침략해 지배하는 과정에서 커피나무도 전해졌다. 특히 남부 참파삭주 해발 1260m에 펼쳐진 반경 100km 규모의 볼라벤 고원(Bolaven Plateau)은 아라비카 커피나무 재배 최적지로 꼽힌다. 고원의 도시 팍송(Paksong)을 중심으로 250여 마을에 2만여 농가가 커피를 생산한다. 낮은 지역에서는 로부스타 품종도 생산된다. 라오스는 바다를 접하지 않고 있어 태국의 항구를 이용해 커피를 수출한다. 볼라벤 고원에서는 인도네시아처럼 긴꼬리 사향고양이 배설물을 가공하는 루왁커피가 특이한 맛을 내기로 유명하다.

미얀마 군부 정권, 커피로 세계와 소통?
미얀마는 3번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1885년 결국 영국 식민지가 됐다. 이때 영국 선교사들이 커피를 전했는데, 커피를 본격적으로 재배, 생산한 것은 1930년대다. 로마가톨릭 선교사들이 미얀마의 샨(Shan) 주와 핀울린(Pyin u Lwin) 지역으로 들어가 아라비카 품종 재배법을 가르쳤다. 1936년 연간 커피생산량이 268톤이던 것이 2005년에는 3600톤으로 늘어났다. 대체로 아라비카 종(60%)은 북쪽 고지대, 로부스타 품종(40%)은 남쪽 저지대에서 생산된다.

미얀마는 평균 해발이 1000~1500m에 배수가 좋은 붉은 충적토양으로 커피 재배에 좋다.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2012년부터 개방정책을 펴면서 미얀마커피가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데, 품질이 좋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0년 전 커피품종 맛 간직한 동티모르
200여년 전 포르투갈이 동티모르를 식민지배하는 과정에서 커피가 전해졌다. 서티모르를 지배하던 네덜란드에게서 커피묘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이 없는데도 커피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한때 동티모르의 어려운 형편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인위적인 재배를 하지 않고 야생의 것을 수확하기 때문에 200년 전 품종 그대로의 맛을 간직한 커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인도네시아 남부, 호주 대륙의 북부에 인접한 작은 섬나라인 이곳은 인구의 30%가 학살되는 아픔 속에서 2002년 독립을 얻어냈다. 강원도 만한 이 나라에서 독립 초기 수출이 가능한 농산물은 커피가 유일했다. 2004년 동티모르 대통령이 세계의 NGO를 향해 도움을 요청할 때 커피의 구매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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