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우유로 ‘묵은 커피’ 숨기려는 자들은 가라!

필자가 질이 좋지 않은 커피의 향미를 숨기고 속이려는 '농간'을 거부하자는 의미로 바로 커피를 바로 입으로 추출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질이 좋지 않은 커피의 향미를 숨기고 속이려는 ‘농간’을 거부하자는 의미로 바로 커피를 바로 입으로 추출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사진=CCA>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전문기자]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따뜻한 커피를 더욱 감미롭게 즐기기 위해 우유가 가미된 메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향미적으로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우유다. 물론 단맛을 부여하는 설탕도 둘째가라면 서럽겠지만, ‘우유와 커피의 만남’만큼 극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커피에 우유를 넣어 쓴맛을 보다 부드럽게 즐기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시초였다. 이후 중국인들이 차에 우유를 섞어 마시는 것을 따라했다가 카페라떼 또는 카페오레의 맛을 깨우치게 됐다다. 커피의 자극적인 향미를 줄이려는 고육책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진정한 커피애호가들에겐 우유의 향미를 감상하면서 커피와 라떼의 하모니를 즐기는 것도 큰 행복이겠다.

커피는 애초 향미를 즐기는 기호식품은 아니었다. 에티오피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커피가 발견된 6~7세기, 커피는 부족의 전사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며 먹던 비상식량이었다. 지금처럼 커피씨앗을 볶아 물로 추출해 마셨던 것이 아니고, 앵두처럼 생긴 커피열매의 과육을 동물기름과 섞어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들어 씹어 먹었다. 그러던 것이 각성효과가 발견돼 예멘을 거쳐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해졌다. 15세기쯤부터는 무슬림들이 밤새워 기도하기 위해 커피씨를 볶아 가루를 낸 뒤 물에 끊여 마셨다.

맛을 추구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커피가루를 종이필터에 걸러 마시고, 이때쯤 에스프레소 머신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커피의 풍미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문화가 꽃을 피우면서, 커피는 전세계적으로도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가 됐다.

커피가 세계적 음료가 된 데에는 효능 뿐 아니라 향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효능으로 치자면 우유가 커피에 처질 이유가 없다. 바나나맛, 딸기맛, 아몬드맛 등 인공물질을 가미해 억지로 향을 낼게 아니라 우유 자체에서 비롯되는 향미성분을 파악하고, 그 향미를 통해 우유의 신선함과 맛을 평가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소비자들과 더 친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 와인이나 커피처럼 좋은 우유, 신선한 우유를 구별해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을 캠페인처럼 벌여도 좋겠다.

사실 우유는 수박보다 더 씹어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수박의 고형분은 4%(나머지 96%는 물)에 불과하지만, 우유의 고형분은 12%에 달한다. 씹어 먹을 게 수박보다 3배나 많다. 그런데도 수박맛은 알아도 우유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우유의 맛은 젖소품종에 따라 다르고, 계절적으로도 가을-겨울에 나오는 우유가 고형성분이 좀 더 농후하다. 우유는 사실 맛보다는 마우스필(Mouthfeel)이라고 할 만큼,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매력적이다. 우유를 고소하다고 느끼는 것은 살균과정에서 열을 받아 생기는 2차적인 맛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베타 락토글로불린(β-lactoglobulin)의 설프히드릴(Sulfhydryl,-SH)기가 적절히 열을 받으면 고소한 맛을 내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한계값 이하의 농도로 존재한 카보닐(Carbonyl), 에스테르(Ester), 질소화합물, 탄화수소들이 복합된 향을 형성한다.

따라서 우유 향미평가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얼마나 들어있는가’에 중점을 두면 좋겠다. 지방성분의 산패로 비롯되는 뷰티릭(Butyric,버터 같은)한 리포라이즈드 향미(Lypolized flavor), 미생물에 의해 발생하는 신맛-효모냄새 등의 마이크로벌 향미(Microbal flavor), 산화에 의해 발생하는 종이맛-쇳내 등 옥시다이즈드 향미(Oxidized flavor), 외양간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해 젖소의 폐를 통해 전이되는 풀맛-비릿내-이끼맛의 트랜스미티드 향미(Transmited flavor)를 구별해야 보다 건강하고 향미 좋은 우유를 즐길 수 있다.

항간에는 “진정한 커피애호가라면 원두커피 그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지만, 그 말을 이렇게 바꾸면 더 멋지겠다. “당신이 진정 커피를 사랑한다면 우유와 어우러지는 향미의 향연 속에서 커피의 본질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해야 우유를 섞어 오래 묵은 커피의 결점을 교묘하게 숨기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거부할 수 있다. 커피의 향미를 정직하게 평가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커피테이스터로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은 커피만 유통될 수 있도록 ‘향미 지킴이’로 나서주기를 소망한다.

커피테이스터들이 진지하게 향미를 평가하는 것은 산간 오지에서 심혈을 기울여 자식처럼 키워낸 재배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커피테이스터들이 진지하게 향미를 평가하는 것은 산간 오지에서 심혈을 기울여 자식처럼 키워낸 재배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사진=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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