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페어링] 영덕대게와 어울리는 케냐 응초로이보로

상쾌한 커피 감미와 대게 특유 맛 상승작용···샴페인 같은 깔끔함이 잡미 말끔하게

[아시아엔=박영순 커피전문기자] 커피를 와인처럼 음식과 함께 즐기려는 움직임이 있다. 생선요리에는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와인, 소고기스테이크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레드와인과 같은 식으로 음식마다 맛이 어울리는 와인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맞춘다고 해서 프랑스말로 ‘마리아주(Mariage)’라고 하는데, ‘와인과 음식의 향미적 결합’쯤으로 풀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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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CA>

‘커피 페어링(Coffee Pairing)’이 마리아주에 해당한다. 커피를 식후에 마시는 게 아니라 식탁에 올려 마치 와인처럼 음식과 함께 먹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리아주란 고기를 목 뒤로 넘긴 뒤 입안을 헹구어 내듯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입안에 고기와 와인을 함께 넣고 씹으면서 그 과정에서 연출되는 향미를 즐기는 것이다. 와인의 고기의 육질을 연하게 하면서 질감을 좋게 하고, 타닌의 쓴맛이 고기의 잡미를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향미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커피 페어링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입에 넣은 상태에서 커피를 넣어 향미의 하모니를 즐기자! 그러나 당혹스럽다. 후식으로만 즐기던 커피를 음식과 입안에서 만나게 하다니… 더욱이 그 음식이 요즘 제철 만난 대게(Snow Crab)라면 사정이 더 복잡해진다.

유명한 광고카피인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말이 나온 지 어느새 15년 됐다. 그러나 게맛이 이러저러 하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 않다. 게맛을 알아야, 그와 어울리는 커피를 짝지을 수 있다.

대게의 맛은 ‘담백(淡白)하다’ ‘짭조름하다’ ‘비릿하다’ ‘(수산물로서)게 특유의 향이 있다’는 등 4가지 표현으로 압축된다.

담백하다는 게 “아무런 맛이 없다”는 뜻이라며 맛 표현 어휘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국어사전에도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는 풀이를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대게가 담백하게 느껴지는 것은 게살의 지방함량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느끼함과 비린내가 적다. 생선의 비린내는 생선살에 상당량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이 산화하면서 드러나는 이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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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은 아미노산의 역할이 크다. 포도당, 과당 등 탄수화물만이 단맛을 부여하는 게 아니다. 아미노산 중에서 단맛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유리 아미노산이 글리신(Glycine), 알라닌(Alanine)인데, 상쾌한 감미를 낸다고 평가받는 이들 물질이 대게의 속살에 많이 들어있다.

단맛 덕분에 혀에서 감지되는 촉감도 부드럽다. 혀에 달라붙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아미노산의 단맛은 조미료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또 대게에는 다시다 국물과 같은 감칠맛(우마미)을 내는 글루탐산(Glutamic acid)이 풍성하다. 이쯤 되면 대게의 속살은 그 자체가 가히 ‘게살 다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퇴계 이황도 눈처럼 하얗다고 표현한 게살에는, 특히 대게의 속살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Taurine) 성분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기능적으로는 인체에서 쓸개즙 분비를 촉진해 간의 해독력을 강화하고 피로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박카스와 같은 건강음료의 핵심성분이기도 하다. 맛의 측면에서 타우린은 황을 함유하고 있어 복합미를 높여준다. 이 성분 때문에 게살에서 홍어의 느낌의 난다거나 화하게 휘발하는 듯한 특유의 향이 난다는 표현이 나온다.

맛의 민감도에 따라, 요리법에 따라 대게살에서 흙의 뉘앙스가 풍기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게가 수심 200~800m의 진흙이나 모래밭에 서식한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찐 대게의 향미를 아래와 같이 묘사해도 큰 실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감칠맛이 길게 이어진다. 유리 아미노산에서 비롯된 단맛 덕분에 마우스필이 부드럽다. 살에 배어있는 바닷물과 풍부한 미네랄 덕분에 짭조름하면서도 선명한 부각된 맛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짠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다양한 향미를 각각 부각시켜주고 하모니의 풍성함을 더욱 상승시켜준다. 타우린의 황 성분을 연상케 하는 미세하지만 톡 쏘는 듯한 느낌이 게살을 씹을 때마다 산뜻함을 전해준다.”

그럼 이런 맛과 어울리는 커피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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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니에리(Nyeri) 카운티에서 생산되는 ‘응초로이보로(NCHOROIBORO) 커피’가 제격이다. 케냐마운틴의 비옥한 경사지역에서 자란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해 2차례에 걸쳐 48시간 동안 수조에서 발효한 깨끗한 커피이다. 1800m 고지대에서 자란 덕분에 단맛과 경쾌함을 주는 산미가 일품이다.

커피의 향미를 나타내는 지표인 ‘CCA 포인트’가 89점이다. 80점을 넘으면 프리미엄커피에 속한다. 한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만을 모은 마이크로랏인 동시에 품질은 스페셜티커피로서 상쾌한 감미가 대게의 향미적 특성과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더불어 응초로이보로의 여운에서 살아나는 샴페인과 같은 활달한 산미가 자칫 언짢게 이어질 수 있는 대게 특유의 향미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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